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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節氣) 에세이] 7월 7일 소서(小暑), 무더위의 시작

[이효성의 절기(節氣) 에세이] 7월 7일 소서(小暑), 무더위의 시작

기사승인 2020. 07. 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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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자문위원장, 전 방송통신위원장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속담
햇밀에 애호박 '송송' 국수·수제비 제철 별미
바쁜 일손 거들라고 가벼운 죄인 풀어주기도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소서(小暑·minor heat)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소서라는 말은 작은 더위를 뜻하지만 실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태양의 복사열이 가장 큰 때는 하짓날이다. 하지만 그동안 복사열이 쌓인 데다 고온다습한 고기압이 지배해 소서 절기 무렵부터는 견디기 힘든 무더위가 시작돼 대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소서와 대서는 여름의 날씨가 극에 달하는 절기인 ‘극절기’로 불린다. 황도상에서 소서는 겨울의 극절기인 소한(小寒)의 대척점에 있다.

이 시기는 장마전선이라는 다습한 불연속 전선이 한반도 허리를 가로질러 오랜기간 머물러 습도가 높아지고 많은 비가 내리는 여름 장마철의 한 중간이기도 하다. ‘햇빛촌’의 “낮부터 내린 비는 / 이 저녁 유리창에 / 이슬만 뿌려놓고서 /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 시계소리처럼 내 마음을 / 흔들고 있네”로 시작되는 이정한 작사·작곡의 ‘유리창엔 비’ 라는 가요가 주룩주룩 내리는 이때의 장맛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다. 한반도의 여름은 장맛비를 비롯해 여우비, 소나기, 주룩비, 억수 등 갖가지 비가 많이 와서 비는 여름의 가장 대표적인 물상이기도 하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

모내기의 적기는 하지(夏至) 전후지만 좀 늦어지는 경우라도 소서 무렵까지는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래서 ‘소서 때는 새 각시도 모 심어라’ 거나 ‘소서 때는 지나가는 사람도 달려든다’는 속담이 있다. 이때는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하기도 하고 보리를 베어낸 자리에 콩과 조, 팥을 심어 이모작을 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런 일들을 솔개그늘(조각구름이 만든 솔개의 그림자만큼 작은 그늘)도 아쉬울 정도로 숨 막히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해야 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무렵도 보리 베고 벼 심는 망종(芒種)이나 벼 베고 보리 심는 한로(寒露)만큼이나 바쁜 철이다. 그래서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는 속담은 망종에서 소서 무렵까지를 두고 한 말이다. 옛날 관(官)에서는 소서 무렵이 되면 바쁜 일손을 거들라는 뜻으로 죄가 무거운 이는 관대히 하고 죄가 가벼운 이는 놓아 줬다고 한다.

소서 무궁화 절기
지난 6월 하지 무렵에 피었던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자귀나무(위) 꽃들이 6일 시들고 무궁화(아래)는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 /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자문위원장
소서 전후로 약 한 달 동안 뜨거운 햇볕과 많은 비로 인해 벼를 비롯한 모든 작물이 광합성을 활발히 할 수 있어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고 했다. 노지에서 키운 여름용 과채류가 6월부터 출하되기 시작하지만 하지와 소서 어간이 돼야 더 성숙한 과채류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예컨대 참외, 수박, 호박, 오이, 가지, 토마토, 풋고추, 깻잎, 열무, 도라지, 옥수수를 비롯한 각종 채소와 자두, 복숭아, 풋사과, 블루베리 등의 과일이 나와 미각을 돋운다. 이들 과채류가 많이 시장에 나오는 시기가 하지와 소서 어간이다.

보리와 밀은 망종 무렵에 수확해 탈곡과 정곡을 거치면 소서 무렵에 비로소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무렵에는 햇밀로 만든 밀가루로 연한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은 국수나 수제비를 많이 해 먹는다. 이때 가장 맛이 좋은 제철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옛이야기고 지금 우리가 먹는 하얀 밀가루는 거의 대부분 국내산이 아니고 수입품이다. 아쉽게도 이 무렵의 밀가루 음식에서 햇밀의 신선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

햇밀에 애호박 ‘송송’ 국수·수제비 별미

이 무렵에 꽃이 피는 나무 중에는 회화나무와 애기등, 다릅나무, 솔비나무, 싸리, 칡 등과 같은 콩과의 나무들이 많다. 콩과의 나무들은 입하 어간에 그 꽃이 피는 아까시나무나 등나무에서 보듯이 밀원식물로서 비교적 잎도 늦게 나고 꽃도 늦게 핀다. 특히 옛날 선비들이 좋아해 학자수(學者樹·scholar tree)로도 불리는 회화나무는 입하 어간에야 아까시나무의 잎과 비슷한 모양의 잎이 난다. 소서 어간에 꽃이 피는 나무로는 무궁화와 능소화, 배롱나무, 부용, 으아리, 산수국, 나무수국 등이 있다. 풀꽃으로는 도라지와 나팔꽃, 맨드라미, 참나리, 달맞이꽃, 채송화, 코스모스, 쑥부쟁이, 달개비, 연꽃 등 많은 꽃들이 이 무렵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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