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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경칩(驚蟄), 미물들이 깨어남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경칩(驚蟄), 미물들이 깨어남

기사승인 2021. 03. 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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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절기상 경칩(驚蟄·awakening of insects)이 시작되는 날이다. 경칩은 땅속의 벌레들을 비롯하여 미물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동면에서 또는 가사(假死) 상태에서 깨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면이나 가사 상태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소생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며 소생을 시작했다는 것은 추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만큼 날씨가 따뜻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무렵에는 얼었던 땅도 풀려 땅속의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개구리, 도롱뇽, 뱀 등과 같은 양서류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개시한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는 말처럼, 나무들 또한 겨울잠에서 깨어나 움을 틔우고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로부터 가지로 수액을 운반하는 일이 활발해진다.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단풍나무과의 나무들에서 수액이 먼저 흐르기 시작한다. 이 무렵 밀, 마늘, 양파, 시금치, 우엉 등과 같이 월동기에 생장을 멈추었던 농작물들도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이처럼 경칩부터 소생이 시작되고 봄이 제철을 맞게 되면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성장을 멈추었던 겨울 작물들의 생육을 돕기 위해 경칩 무렵부터 곡우 전까지 서너 차례 웃거름을 주어야 하고, 봄 작물의 파종을 준비하기 위해 논밭을 갈고 그 둑을 정비해야 한다. 예부터 구구소한(九九消寒) 또는 구구경우(九九耕牛)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구구는 동짓날로부터 81일째를 뜻하는데 3월 12일이나 13일로 경칩 한 중간이다. 구구소한은 이때 추위가 가신다는 뜻이고, 구구경우는 이때 소들이 밭을 간다는 뜻이다.

경칩 절기 에세이 111
미물이 깨어난다는 경칩을 앞둔 3일 서울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 이른 봄꽃의 하나인 산수유꽃이 피어 나고 있다. / 이효성 주필
남쪽 지방에서는 경칩 어간에 이른 꽃들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다. 수선화, 눈꽃풀, 크로커스 등의 이른 풀꽃들은 경칩 전부터 그리고 보춘화, 노루귀, 복수초 등의 풀꽃들은 경칩 어간부터 꽃을 피운다. 경칩의 어간에 갯버들, 매실나무, 산수유, 생강나무, 서향, 풍년화 등의 나무들은 잎도 나기 전에 꽃망울부터 터뜨려 경칩 말이나 춘분 초에 만개한다. 봄을 환영하는 듯한 이들 화사한 꽃들을 보면 드디어 소생의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봄이 되어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지만 우리의 눈은 꽃이 핀 것을 보고 봄이 왔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경칩 무렵에 피어나는 초봄의 꽃들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일 뿐만 아니라 봄을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백(李白)은 “호지에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고 말했다. 사실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여름과 가을에도 많은 꽃들이 핀다. 심지어는 동백꽃, 납매화, 수선화처럼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지만 이들 겨울 꽃은 몇 종 되지 않고 남녘에 한정되므로 중부 지방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니 꽃이 없는 추운 겨울을 막 벗어나 아직 대기에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는 때에 꽃망울을 터뜨린 화사한 꽃들이야말로 봄처럼 반가운 나머지 봄 그 자체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이른 봄꽃의 화사함을 즐기려 대체로 경칩 어간인 3월 중순 무렵에 남녘의 몇 곳에서는 매화축제가 열린다. 우선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 마을에서는 ‘광양매화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기간 동안 이곳에서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마을 전체가 온통 하얀 매화로 뒤덮여 눈꽃이 피어난 듯 참으로 그윽하고 아름다운 선경(仙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전남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 보해매실농원의 ‘땅끝매화축제’가, 매실농원들이 자리한 경남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낙동강가의 양지바른 언덕에서는 ‘원동매화축제’가 열린다.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봄은 조개가 맛이 좋은 제철이라는 뜻이다. 봄 조개로는 특히 섬진강과 낙동강 등의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곳에서 자라고 ‘재첩 국’으로 유명한 재첩,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고 어민들의 생계도 큰 몫을 한다고 하여 ‘국민 조개’라 불리는 바지락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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