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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봄의 상징, 꽃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봄의 상징, 꽃

기사승인 2022. 03.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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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꽃이 없는 삭막한 겨울을 보내고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반갑고 귀엽고 화사하기 그지없다. 아직 다 풀리지도 않은 땅을 뚫고, 심지어는 갑자기 내린 찬 눈을 뚫고, 올라와 피어나는 앉은부채, 복수초, 노루귀, 보춘화, 설강화, 크로커스 등의 풀꽃이나 조매(早梅), 생강나무, 산수유, 히어리, 풍년화 등의 나무꽃이 피어난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우선 반갑고 그 화사한 모습에 매혹된다. 이른 봄꽃은 그 색깔과 모양뿐만이 아니라 꽃이 없는 겨울을 보내고 처음으로 맞는다는 사실로도 우리의 마음에 더 큰 감흥을 준다. 무엇이든 처음이거나 새로운 것은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님에도 그렇다. 남녘에서는 동백이나 매화나 납매나 수선화처럼 늦겨울에도 피는 꽃도 있다. 하지만 중부 지방에서는 한겨울 야외에서는 꽃이 피지 못한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날씨가 좀 풀리면 아직 대기가 쌀쌀함에도 봄을 재촉하듯 또는 봄을 반기듯 아름다운 이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 꽃들이니 더 화사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더 사랑스럽고 반가운 것이다. 추위 때문에 한동안 피지 못했던 만큼 꽃 가운데서도 봄꽃이 더 큰 비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꽃이 피어난 것을 보아야 봄이 왔다고 생각한다. 꽃이 핀 것을 보지 않으면 봄이 왔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송나라 스님 대익(戴益)은 〈탐춘(探春)〉이라는 선시(禪詩)에서 온종일 봄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매실나무 밑을 지나가다 그 가지에 매화가 핀 것을 보고서야 거기에 봄이 이미 와있음을 깨닫는다. “돌아오며 때마침 매화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 봄은 그 가지 끝에 이미 넉넉히 와 있었다네(歸來適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分).” 영국 시인 앨저논 스윈번(Algernon Swinburne)은 아예 봄은 꽃으로 시작된다고 노래했다. “녹색의 덤불과 피난처에서 / 꽃송이 송이마다 봄이 시작된다.”

봄이 오고 있거나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령사로도 흔히 꽃이 꼽힌다. 겨울 끝자락이나 이른 봄에 언뜻 얼굴을 어루만지는 훈풍, 양지 바른 곳의 따뜻한 햇볕, 나뭇가지 끝에 부풀어 오른 잎눈과 꽃눈, 눈 대신 내리는 진눈깨비나 비, 얼음에 금 가는 소리, 고드름 녹아떨어지며 부서지는 소리 등 많은 봄의 전령사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봄의 전령사는 역시 꽃이다. 사람들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에서 봄이 오고 있거나 왔음을 제대로 깨닫기 때문이다. 진(晉)나라 사섭(謝燮)이라는 시인은 이른 매화는 “봄을 맞으려 일찍 피었네 / 홀로 추위를 개의치 않고(迎春故早發 獨自不疑寒)”라고 노래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른 봄꽃을 보고서야 봄이 오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봄에 가장 반기는 것도, 그 존재로 봄을 예견하거나 확인하는 것도 꽃이다. 이에 더해 사람들은 봄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꽃이다. 사람들은 봄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꽃을 연상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봄은 곧 꽃으로 등치된다. 사람들에게 꽃은 봄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봄에는 꽃이 피어야 진정한 봄이고 거꾸로 봄이 되었어도 꽃이 피지 않으면 진정한 봄이 아닌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한(漢)나라에서 흉노의 왕에게 조공으로 보낸 궁녀 왕소군의 심정을 대신하여 “호지에 꽃이 없으니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고 읊었다.


봄이 되면 기후를 비롯하여 자연에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겨울 동안 피지 못하던 꽃이 피는 현상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 속에서 피어나는 화사한 꽃은 봄의 가장 뚜렷하고 인상적인 물상으로 여겨지고, 봄은 꽃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봄 하면 꽃을 떠올리게 되고 꽃은 아예 봄의 상징이 되었다. 꽃이 피어야 봄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봄을 맞을 수 있게, 꽃이여, 어서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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