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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꽃 잔치의 시절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꽃 잔치의 시절

기사승인 2022. 04. 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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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자연은 식물의 세상이다. 식물은 평지는 말할 것도 없고 험준한 산이나 심지어는 바다 속에도 많은 종들이 적응하여 살고 있다. 동물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자연의 일정한 공간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지만 그 범위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인 인간과 개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동물은 그 삶을 기본적으로 식물에 의존한다. 육식동물이라 하더라도 초식동물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의 주인은 식물인 셈이다. 동물은 식물에 기생할 뿐이다. 식물이 번성해야 동물도 번성할 수 있다. 식물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서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일은 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온대지방인 한국의 중부 지방에서 가장 많은 식물들이 꽃을 피워내고 그 꽃들이 가장 화사한 때는 대체로 4월 초순 어간이다. 이 무렵에 많은 화사한 꽃들이 피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무렵은 24절기의 ‘청명(淸明·4월 5~19·20일)’ 절기로 천지가 상쾌하게 맑은 공기로 가득 찬다는 시기다. 게다가 이때는 연중 기온 상승이 가장 급격히 이루어지는 춘분 절기가 막 지난 때여서 기온도 상당히 오르고 해의 고도도
꽤나 높아진 때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너무 춥거나 덥거나 하지 않아 식물들이 생식(生殖)을 위해 꽃을 피우기에도 적당한 시기인 셈이다. 실제로 이 무렵에 연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난다. 그리고 여러 빛깔들의 고운 꽃들이 잔뜩 피어나면 세상은 그로 인해 더욱 더 화사해진다.

이 어간에 피어나는 풀꽃으로는 꽃다지, 광대나물, 괭이눈, 앵초, 양지꽃, 민들레, 제비꽃, 수선화, 할미꽃, 자운영, 백리향, 얼레지, 현호색, 은방울꽃 등을 들 수 있다. 나무꽃으로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복사꽃, 살구꽃, 오얏꽃, 배꽃, 사과꽃, 앵두꽃, 명자꽃, 박태기, 황매화, 버들강아지, 조팝꽃 등이 있다. 이들 꽃들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곤충을 유인해야 하기 때문에 흔히 화려하고 향기롭다. 이 붉거나 노랗거나 하얀 꽃들이 어우러져 한꺼번에 피어나면 세상은 화사한 꽃들로 불을 켠 듯 환하다. 그야말로 백화난만(百花爛漫· 온갖 꽃이 피어서 아름답게 흐드러짐)의 시절인 것이다.

그런데 이 꽃들 가운데 나무꽃들은 대체로 잎도 나지 않은 나뭇가지에 온통 꽃들만 가득 피어나서 세상을 꽃으로 뒤덮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런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자연은 꽃으로 수놓은 듯한 꽃 세상이 된다. 그런 모습을 두보는 “산은 푸르고 꽃은 불타 오른다”고 묘사했다. 우리의 동요 〈고향의 봄〉(이원수 시, 홍난파 곡)은 그런 모습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라는 우리들의 어릴 적 고향 마을의 정다운 정경으로 노래했다.

이처럼 따뜻하고 밝은 날씨에 잎도 없는 나무에 화사한 꽃들이 가득 피어나는 청명 절기의 세상은 꽃으로 더 밝고 맑다. 이때 꽃들로 인해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김재호, 〈고향의 노래〉 중에서]라는 시구처럼 꽃 잔치가 벌어진다. 그런데 그 잔치로 진짜 흥겨운 건 우리 인간이다. 중국 시인 정호는 “지금은 바야흐로 청명 절기의 호시절이니 / 마음껏 놀다 돌아가는 것을 잊은들 어떠리”라고 노래했다. 영국 시인 하우스만은 “부활절을 맞아 소복을 입고 있는” 벚나무를 보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숲으로 간다고 노래했다.

우리 선조들도 이 무렵인 음력 삼월 삼짇날에 ‘화전놀이’란 이름으로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음식을 장만하여 산으로 꽃놀이를 가서 하루를 즐겼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이 무렵에 연인이나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꽃놀이를 위한 나들이를 한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이때 하루쯤은 일상에서 벗어나 꽃과 어울리고 자연을 벗하며 호연지기를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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