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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잎들의 조용한 대역사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잎들의 조용한 대역사

기사승인 2022. 04. 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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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지금 온 세상이 “어린 천사들의 손가락”[이수익, 〈어린 나뭇잎에게〉 중에서]인 어린 새잎들로 덮여가고 있다. 봄이 되면 풀과 나무의 세계에 어김없이 두 가지 일, 꽃 피는 일과 잎 나는 일이 벌어진다. 땅에서 풀의 싹이나 꽃봉오리가 머리를 내밀고, 나뭇가지에서 잎이나 꽃의 봉오리가 피어난다. 종에 따라 잎이 먼저 혹은 꽃이 먼저 피기도 하고, 잎과 꽃이 동시에 피기도 한다. 그러나 예외 없이 모든 풀과 나무들이 결국 잎으로 덮인다.

꽃은 대체로 화려하고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꽃은 종족을 이어갈 씨를 얻는 수단이기에 꽃가루받이를 위해서 곤충을 유인해야 한다. 그래서 색깔이 화려하여 아름답고, 꿀을 품고 있어 향기롭지만, 일단 수정이 끝나면 꽃의 임무는 끝나고 이내 져버린다. 이것은 꽃의 숙명이다. 그래서 “꽃은 열흘을 붉지 못한다(花無十日紅).” 이제 씨를 품은 열매를 키우는 일은 잎과 뿌리에 맡겨진다. 그래서 잎과 뿌리는 씨와 열매가 자라고 익을 때까지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식물의 생존에 잎의 존재는 특히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잎은 예쁘지는 않지만 수명이 길다. 잎은 꽃처럼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어 화려하지도 않다. 잎은 꽃처럼 씨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씨를 키우는 일을 포함하여 자신이 그 일부인 풀 또는 나무에 양분을 공급하는 일이 과업이다. 그래서 잎은 봄에 한 번 나면 초가을까지 계속 자라고 늦가을 시들어 마르거나 떨어져 없어질 때까지 쭉 건재해야 한다. 열매와 씨를 키우고 본체를 유지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잎은 갈수록 무성해지고 오랫동안 작업을 할 수 있게 건강해야 한다.

풀잎은 냉이, 쑥, 민들레, 꽃다지, 광대나물 등과 같이 이른 것은 2월 하순부터 대부분은 3월 하순부터 나기 시작하여, 사월이 되어 어느 정도 자라고 가짓수가 많아지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뭇잎은 대부분의 나무에서 3월 하순부터 나기 시작하여 늦은 경우에도 4월 하순까지는 거의 다 난다. 이처럼 봄에는 특히 4월에는 풀잎이 땅을 덮어가고 나뭇잎이 나무를 메워가기 시작하면 지상은 부지불식간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뀐다. 이렇게 봄에는 지상에서 아주 큰 변화가 잎들에 의해 조용하나 꾸준히 일어는 것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잎들의 덕택으로 유지되고 윤택해진다. 잎들은 햇빛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탄수화물을 합성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이른바 광합성을 수행한다. 잎들에 의한 광합성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의 하나인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신 동물들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대량으로 방출함으로써 지구의 환경 정화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게다가 잎에 의한 광합성의 산물인 탄수화물은 식물 자신과 초식 동물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이다. 잎은 먹이사슬의 기초로 먹이의 생산 기지인 것이다.

자연에는 경이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특히 봄의 자연에는 세상이 풀잎과 나뭇잎으로 뒤덮여 메마른 죽음의 땅이 생기 있는 생명의 땅으로 바뀌는 가장 경이로운 일이 일어난다. 그 일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최대 규모의 대역사(大役事)일 것이다. 수많은 나무들에 일시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는 일도 경이이긴 하지만,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수행되는 이 잎의 대역사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잎들의 대역사는 죽음과 절망을 삶과 희망으로 바꾸고, 식물과 그 열매를 키우는 양분을 만들어내어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지상의 환경을 정화하여 동물들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 대역사의 덕택으로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생존할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이 유지된다. 우리는 봄마다 기적 같은 이러한 잎들의 대역사를 보곤 한다. 우리는 이 고마운 대역사가 해마다 되풀이될 수 있도록 자연과 환경을 잘 보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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