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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뜨거운 한낮의 적막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뜨거운 한낮의 적막

기사승인 2022. 07. 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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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지구는 5월, 6월의 뜨거운 햇볕으로 충분히 달구어진다. 그래서 7월부터는 햇볕이 더 이상은 땅으로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전부 복사열이 되어 지상에 방출된다. 그 탓에 7월부터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이때 태양은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습한 대기는 뜨거워 가만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등줄기에선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럴 땐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전신에 땀이 배고 끈적거리게 된다.

우리 몸은 더우면 열을 방출해 정상 체온을 유지하지만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신체 내부의 열을 제대로 방출하지 못해 열사병이 발생한다. 섭씨 33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보통 속도로 30분만 걸어도 100m 달리기를 한 뒤와 같은 심박수가 나타난다. 그런 폭염 속에서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밭매기를 한다면 신체는 45도의 사우나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이런 불볕더위 속에서 힘든 야외 노동을 하게 되면 숨이 턱턱 막힌다. 밖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는 피부가 데는 것을 막기 위해 모자, 옷, 헝겊 등으로 피부를 철저하게 가려야하기에 더 숨이 막히게 된다. 그래서 한여름에는 여러 모로 바쁜 농부들도 한낮에는 논이나 밭에서 하는 들일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무리 바빠도 한낮에는 바깥일은 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 농촌에서는 한여름 한낮에는 들일을 하지 않고 들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해가 뜨기 전 새벽이나 햇볕이 누그러진 오후 늦게 했다. 한낮에는 야외에서의 일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대신 아낙들은 바람 잘 통하는 부엌 같은 곳에 모여 잔일을 하며 얘기꽃을 피웠다. 남정네들은 바람이 잘 통하고 시원한 모종 같은 곳에서 낮잠을 자거나 한담을 하였다. 아이들은 나무 그늘 밑에서 소꿉놀이, 공기놀이, 땅따먹기 등의 놀이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탓으로 7월과 8월의 한낮에 시골의 야외는 의외로 적막하다. 야외는 작열하는 태양과 뜨거운 열기가 지배하는 거대하고 조용한 한증막과 같다. 햇살이 너무도 강렬하고 뜨거워 언뜻 보기에는 잎들조차 숨죽인 듯이 보인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는 잎들도 축 늘어져 겉으로는 시들시들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때에 땅을 가득 메운 풀잎들과 나무를 뒤덮은 나뭇잎들은 뜨거운 햇빛을 이용하여 가장 열심히 광합성을 한다.

대개의 곤충들을 비롯한 미물들도 가만히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생명활동을 전개한다. 개미들은 먹이들을 물어 나르고, 꿀벌들은 꿀을 모으고, 나비들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팔랑거리며 꿀을 빨고, 잠자리들은 물 위를 날며 알을 낳고, 애벌레들은 잎을 파먹고, 쇠똥구리는 쇠똥을 굴리고, 진딧물은 수액이나 초액을 빠는 데에 열심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에는 소리가 없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그들의 활동이 인간의 귀에 포착될 수 있는 정도의 소리를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에 울림통이 있는 수매미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큰 소리로 우는데 일시에 울어대면 나무가 많은 곳에서는 그야말로 매미소리로 진동한다. 또 풀밭에는 여칫과와 귀뚜라밋과의 풀벌레들이 날개를 비벼서 내는 마찰음이 매미소리보다는 작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때로는 방아깨비가 날아오르며 때-때-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소리는 여름 한낮의 적막을 깨기보다는 그 적막의 일부로 존재한다.

여름의 한낮은 작열하는 태양과 뜨거운 열기가 압도하는 자연 속에서 인간과 짐승이 활동하지 못하기에 사위가 적막한 시간이다. 그러나 실은 이 적막한 열기 속에서 잎들은 가장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여 탄수화물을 생산하고, 곤충들은 성장이나 번식과 같은 생명활동에 가장 열심이다. 이처럼 초목과 곤충이 무더위 속에서 생명활동에 열심인 덕으로 인간은 바람 잘 통하고 그늘진 곳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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