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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3> 최초의 창작가요 ‘강남달’

[대중가요의 아리랑] <3> 최초의 창작가요 ‘강남달’

기사승인 2022. 07. 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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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우네//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적막한 가람 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밤도 쓸쓸히 달은 지나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제목부터 정감을 더하는 '강남달'은 1920년대의 서정과 애환이 묻어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가버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고적감이 실려있다. 노래의 무대는 진주 남강이다. 촉석루에 외로이 앉아 남강에 어린 달을 굽어보며 부른 노래였다.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잃어버린 나라를 떠올리는 애틋한 선율이기도 하다. 가사에서 '님'은 곧 조국이고 구름은 일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임을 여의고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정처없는 마음을 찰랑대는 남강 물결에 비추는 것이다. 애잔한 언덕에 홀로 서서 한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그곳은 임진왜란 때 기생 논개가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을 내던진, 강낭꽃보다 더 푸른 물결이 일렁이던 곳이기도 하다. '강남달'은 1927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구영 감독, 복혜숙 주연의 무성영화 '낙화유수(落花流水)'의 주제가였다.

우리나라 창작영화 제1호인 '낙화유수'의 주제가는 당대 최고의 무성영화 변사였던 김서정이 작사·작곡했다. 노래의 제목 또한 '낙화유수'였다. 가사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강남달' 때문에 제목이 바뀌었다. 그래서 1942년 발표한 남인수의 '낙화유수'와는 다른 곡이다. 해방 후에는 가수 신카나리아와 황금심 등이 '낙화유수'가 아닌 '강남달'이란 제목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김서정은 아리따운 기생과 명문가 출신 화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자서전적인 신파극에 주제가를 만들어 이정숙에게 부르게 했다. 홍난파에게 동요를 배우던 이정숙은 영화감독 이구영의 누이이다. 김서정은 진주 출신 김영환의 필명이다. 아무튼 '강남달'은 작사와 작곡 그리고 가수가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특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강남달'이 나오기 전의 노래들은 모두 구전가요이거나 외국곡을 번안한 것이었다. 그래서 '강남달'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이자 영화주제곡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랫말을 짓고 가락을 만든 노래로 음반에 수록된 첫 작품인 것이다. 음반 발매는 1929년 콜롬비아레코드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때마침 같은 해에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더 크게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남달'의 노랫말은 모두 3절로 이루어졌다. 4분의 3박자 다장조 왈츠 리듬 형식에 도·레·미·솔·라 5음계적 기법을 채용했다. 트로트가 나오기 이전의 노래여서 기교가 없지만 소박한 풍미를 지녔다. 오히려 우리 민족의 원래 가락인 창가의 맛이 남아있는 노래이다. 당시로서는 대중의 진솔한 감정을 잘 드러낸 곡으로 기방에서는 물론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많이 불렸던 인기 유행가였다.

이 노래의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낙화유수'라는 사자성어는 중국 당(唐)나라 시인들의 시 구절에 처음 등장했다.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란 본디 가는 봄의 풍경을 묘사한 말이었다. 강남달이 밝아서 임과 놀던 일을 어찌 잊으랴. 이별의 아픔과 망국의 서러움을 대변하며 명실공히 우리나라 대중가요 제1호 '강남달'은 겨레의 가슴 속에 처연하게 떠올랐다. '낙화유의수유수 유수무의송낙화(落花有意隨流水 流水無意送落花)'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물 따라 흐르지만, 흐르는 물은 무심히 꽃을 흘려보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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