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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탐사 본문] 불친절한 의사들…우리도 할 말은 있다

[아투탐사 본문] 불친절한 의사들…우리도 할 말은 있다

기사승인 2020. 11. 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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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격차에 서울 및 수도권에만 환자 몰리고 터무니없는 의료수가 …의사들 "불친절해질 수 밖에 없다" 주장
지역의료 인프라 확충 고민할 때…공공의료 시스템 강화 '발등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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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환자들이 몰리는 서울의 대형병원들의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대형병원에서는 정문에서부터 긴 줄을 서야 했다. 발열체크를 마치고 입장하면 100~200명의 사람들이 층층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단 이 병원 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대다수의 대형 종합병원들에서 흔히 볼 수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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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사진=천현빈 기자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수술은 빨라 봐야 진료 후 한두 달 후에나 받을 수 있다. 18일 서울 강동구의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A씨(77)는 “고엽제로 고생하다 한 달을 기다려 오늘 입원한다”며 “쓸개를 급하게 제거해야 하는데 한 달을 넘게 기다리면서 동네 협력병원을 소개받아 급한 대로 간단한 치료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피부가 뒤집어지면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

병원 안에는 수술을 위해 석 달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고, 길게는 아홉 달을 기다렸다며 격하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환자는 큰 소리로 “그 사이에 사람이 죽으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무엇보다 의료진의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태도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대형병원을 방문한 B씨(60대)는 “진료를 좀 더 꼼꼼하게 봐줬으면 하는데 수술 경과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회진도 불규칙해서 몹시 불편했다”며 “의사 선생님들이 조금 더 친절하게 알려주면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될텐데, 이런 점이 가장 속상하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병원에서 유방암4기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C씨(34)는 “병원에 갈 때마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가는데 퉁명스럽고 딱딱한 말투로 말씀할 때마다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며 “종양내과 피부과 의사선생님들이 기분에 따라 친절할 때도, 불친절할 때도 있는데 환자들은 무엇보다 몸이 아프기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마음이 상하기 쉽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종합병원에서 만난 정모씨(60대)는 “대형병원에 오는 건 그만한 전문성을 기대하고 오는 건데 5분도 채 안 되는 진료시간 동안 어떤 전문성을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 대학병원에 안과 진료를 보러 온 최모씨(40대)도 “어머니가 종양혈액쪽 질환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불친절하다고 느꼈다”며 “회진할 때 몇 초 얼굴만 쓱 보고 가고, 수술이나 치료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해도 성의 없이 대답해주더라”고 털어놨다.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의사들의 태도는 신세대 젊은 의사들로 올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대다수 환자와 보호자들은 “나이도 어린 의사들이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 무조건 돌아선다” “여러가지 약이나 치료법을 설명해주고 선택해도 될 것처럼 말해 선택하고 나면, 왜 이런 것을 선택했느냐고 다그치고 몰아세운다” “언제나 학생들 혼내는 선생님처럼 훈계조이고 너무 예의가 없어 아픈 마음이 더욱 서러워진다” 등 젊은 의사들에 대한 불만은 끝이 없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이 많은 포진한 소아과 환자와 보호자들의 성토가 빗발쳤다. 이들은 “의술 이전에 인술이고 더욱이 어린 아이들을 다루는 의사들인데, 정말 조금만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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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소재 대형병원의 전경./사진=천현빈 기자
그러나 의사들도 할 말은 있다. 우선 지방병원 여건이 부실한 상황에서 서울 및 수도권 대형병원들에는 전국의 환자들이 몰려들 수 밖에 없다. 서울 소재 한 종합병원의 경우 담당의가 5시간 안에 봐야 할 환자가 50~6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쁜 날에는 환자 당 1~2분 밖에 할애하지 못할 때도 많다.

해당 병원 소속 전문의 D씨(40대)는 “환자들 중엔 의료진에게 거친 언어폭력을 행사하며 의사나 간호사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우리는 강한 스트레스 환경 속에 노출된 감정 노동자들이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고강도 노동에 집중하기 위해 애쓸 뿐”이라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한 대형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 F씨(40대)는 “그동안 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환자들의 증상을 들으면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지 감이 온다”며 “그렇다 보니 환자들 사이에선 대기시간보다 진료시간이 터무니없이 짧고 무성의하며 불친절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병원 소속 간호사 E씨(20대, 이비인후과)는 현장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너무 많은 환자들이 오가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크다”며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생명이 달린 문제라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이 많아 의료진과의 갈등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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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대한외래 출입을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사진=김예슬 수습기자
터무니 없이 낮은 ‘수가’는 의료진을 두 배로 힘들게 만들고 있다. 어느 대학병원의 레지던트 G씨(32)는 “우리도 환자 한명 한명 꼼꼼하게 봐주고 싶지만 경영진 측에서는 수가나 손익을 들먹이며 외래를 10분 내외로 끝내라고 독려한다”며 “미국은 종합병원 진찰비를 우리나라의 10배 이상을 받고 있는데, 이러지 않는 한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푸념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13년째 이비인후과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지금 의료체계로는 대학병원 수준의 병원비와 개인병원 수준의 친절함을 바라는 건 불가능”이라며 “시스템의 문제를 마치 의사들만의 잘못인 것처럼 얘기하니 의사들도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의료진의 호소처럼 현재 의료 수가는 비정상적으로 낮기 때문에, 개인병원은 비급여 항목 등을 통해 ‘과잉진료 누명’을 쓰면서까지 수입을 상쇄해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각 의료단체 대표들(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이 협상을 통해 수가 인상 정도를 결정하지만 이 과정에서 건보공단과 병원 측이 항상 상반된 의견을 내고 있어 조율도 어려운 상황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의료 수가를 1.99% 인상하는 데만 9400억가량의 재정이 추가로 소요된다.

정부는 의료진이 요구하는 수가 인상에 대해서는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지난 8월,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등 의료인 확대, 한방첩약 건강보험 적용, 비대면 진료 육성 의료정책 등 4대 의료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공의들은 해당 정책에 반대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의대생들은 국시를 거부했다.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 비난여론이 고조됐고, 불편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서울 강북에 위치한 대학병원을 방문한 50대 남성 박모씨는 “일반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들이 파업을 안 해도 이렇게 대기가 길고, 제대로 된 진료를 못 받는다고 느낀다”며 “무책임하게 파업을 한다며 빠져버리니 의사를 늘리겠다는 정부 얘기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파업 사태에 대해 서울 강남구의 대형병원 간호사(30대)는 “현직의사가 아닌 의대생 차원에서 국가고시를 반대하는 방식은 적절치 못했다”며 “이번 일은 의사협회 및 의사 지도층의 리더십 부재로 현장을 잘 알지 못하는 의대생들이 미숙하고 성급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I씨(34)는 “공공의료가 도입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교수진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받으면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런 것 보다는 지방으로 가기 싫다는 점, 특히 그곳의 생활인프라에 대한 걱정을 해소해주는 것이 최우선”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의사나 이제 갓 전문의가 된 의사에게 받는 진료비가 똑같다는 점도 환자들이 일부 의사에게 몰리고 대기시간도 길어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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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전경./사진=천현빈 기자
전문가들은 지역의 의료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들며 공공의료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한 70개 의료 생활권 가운데 적정 규모의 종합병원이 전혀 없는 지역이 25개나 되고, 대전·울산·광주 등 광역지자체에도 지방의료원이 없어 공공병원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우석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공공의료보건청이 만들어지면 국공립병원의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인적 교류와 교육을 통합해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을 쥐어짜서 의료 서비스를 공급해왔다”며 “정부·국민·의사 사이에서 정부가 책임성 있는 태도로 의료 공공화 프로젝트 등에 투자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국시거부 등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의료계는 내년부터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배가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간호사 등 의료진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공공의료 예산안마저 확정되지 않은 현실은 올해 세밑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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