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윤동주 모교 용정 명동학교 복원한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98193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09. 11. 01. 14:02

다음달 완공...나운규도 졸업
시인 윤동주(尹東柱) 영화배우 겸 감독 나운규(羅雲奎)를 비롯해 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배출했던 간도의 명동(明東)학교가 원형대로 복원된다.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현이 130만 위안(2억3천만 원)을 들여 지난 9월 착공한 명동학교 복원 사업이 다음 달 완공된다고 조선족 인터넷 매체 조글로미디어가 1일 보도했다.

명동학교 옛 터에 세워지는 복원 학교는 당시 평면도에 따라 4채의 단층 벽돌 건물로 이뤄졌던 1920년대 초의 명동학교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중국 조선족 교육의 효시이자 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배출했던 명동학교는 1908년 4월 규암 김약연(金躍淵) 등 민족지사들이 세운 근대적 민족교육기관이었다.

1925년 일제 탄압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1천2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신문화 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산실 역할을 했다.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宋夢奎), 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 한국인 최초의 항공기 조종사 서왈보(徐曰甫) 등이 명동학교 출신이다.

1919년 3월 룽징에서 대한독립선언대회를 주도한 충열대(忠烈隊)는 명동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구성됐으며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일명 간도국민회)의 중심인물 대부분도 이 학교 졸업생이었다.

명동학교가 북간도(北間島) 민족운동의 근거지로 자리 잡자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명동학교를 불태우고 교장 김약연을 체포하는 등 노골적인 탄압을 가했다.

1923년 출옥한 김약연이 폐허가 된 터에 임시 건물을 지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이듬해 혹심한 흉년으로 운영난에 시달리다 1925년 룽징의 은진(恩眞)중학교와 통합, 문을 닫았다.

이후 8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담배밭으로 변했으며 '명동학교 옛 터'라고 쓰인 표지석만이 과거 민족운동의 산실이었음을 알려왔다.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