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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껏 봄비를 머금은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의 산수유. 마치 생명의 잉태를 보듯 신비로워 보인다. |
봄은 겨울을 그렇게 떠나보내려 해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야말로 화이트 3월이다.
봄비가 오나싶어 문을 열었더니 끝내는 눈송이가 날리며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고 말았다.
계절의 심술이란 오르막도 내리막도 아닌 꼭 고개 마루에서 이뤄지는 것 같아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남녘엔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이제는 당당히 봄을 알리는 꽃들이 팝콘처럼 피어나고 있다.
고개를 내민 꽃들은 그 보폭을 넓혀 산등성이를 넘고 내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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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나무가지에 이제 막 새 순을 틔운 산수유가 팝콘처럼 빛나고 있다. |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가 크레파스로 그려 놓은 것처럼 몽실몽실하니 분위기가 정겹다.
양지 바른 곳 몇 군데만 드문드문 피던 꽃이 최근에는 마을 전체에 붓질한 것처럼 번지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곱게 단장한 새색시 같은 얼굴들은 담벼락을 돌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언제나 생글거린다.
구례군 산동면 일대는 알아주는 산수유 군락지다.
개척마을 산수유 시목지를 시작으로 현천마을, 달전마을, 대평마을, 월계마을 등 이루 꼽을 수 없을 만큼 장관을 이룬다.
그중에서도 가장 백미는 단연 상위마을이다.
구례에서 나는 산수유 열매가 전국 생산량의 73%를 차지하는데 상위마을에서만 30% 이상 나오는 것만 봐도 어림짐작이 된다.
집과 도로, 물길을 제외한 모든 곳이 다 산수유여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온통 노란색에 물들고 만다.
이끼가 낀 돌담길 위로 노랗게 손을 내미는 산수유는 너무도 고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할 만큼 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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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마을 냇가를 끼고 활짝 핀 산수유. 바닥의 이끼와 대조돼 싱그러움을 더한다. |
지금은 꽃처럼 아름다운 봄날이 산동을 내내 비추는 시기다.
중국 산동지방에서 시집온 처녀가 산수유를 가져다 심었다고 전해지면서 시작된 산수유는 아예 면 이름도 산동으로 바꾸고 말았다.
노란 산수유는 봄을 상징해 상춘객을 부르지만 이 일대가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관통했다는 것은 잘 모른다.
구례의 시 '산동애가(山洞哀歌)'는 슬픔 그 자체다.
여순반란사건 때 영문도 모른 채 토벌대에 끌려갔던 19살 꽃 같은 소녀가 불렀다는 노래다.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열아홉 꽃봉오리 피어 보지 못한 채로/까마귀 우는골에 별든 다리 절며 절며/달비머리 풀어 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노고단 골짜기에 이름 없이 쓰러졌네//살기좋은 산동 마을 인심도 좋아/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 놓고/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 놓고/회오리 찬바람에 부모효성 다 못하고/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나혼자 총소리에 이름없이 쓰러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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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쇼를 보듯 화사한 산수유. |
비를 맞은 산과 보리밭은 더 푸르고, 섬진강은 더 촉촉해졌다.
봄엔 왕관 같은 산수유가 지리산 일대를 휘감으면서 손짓하고, 가을엔 예의 붉은 열매로 화답하면서 일 년을 보낸다.
‘밤이 무서운 남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산수유 열매의 시작인 이 봄에 여린 그 왕관을 만나보면 어떨까.
구례군은 ‘제12회 구례산수유꽃축제’를 18-21일 산동면 지리산온천지구 일원에서 연다.
계척마을 산수유 시목지에서 풍년기원제를 시작으로, 19일에는 지리산온천지구 특설무대에서 개막식이 열리고, 20-21일에는 산수유 가요제, 청소년 그린 페스티벌, 7080 라이브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산수유와 관련된 건강 프로그램이 대폭 확대된 이번 축제는 산수유꽃길 소달구지.마차타기, 염색체험, 산수유 족욕, 산수유꽃길 트래킹 등도 마련된다.
/구례=글.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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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를 머금은 산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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