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11일(현지시간) “2006년 한국 망명을 신청했으나 잘 안됐다”며 한국 측의 거부로 망명행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접촉이 있었던 점은 사실이나 구체적으로 망명절차가 진행 중이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당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등 대북관계 악화를 우려한 참여정부의 방침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이날 “하루 3.5유로(한화 약 5400원)의 돈으로 생활하면서 5619일 동안 같은 침대에 누웠다”면서 “사람이 70세가 되면 죽음을 생각하는 법이다. 마지막 한 마디를 하고 싶었고, 그것을 책으로 냈다”며 최근 자서전을 출간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4일 빈에서 김 주석의 사치스러웠던 사생활을 폭로한 서적을 오스트리아 언론인 2명과 함께 출간하고 오스트리아에 망명을 신청했다.
김 씨는 “김일성 주석의 별장에 들어갈 물품들을 모두 다 사서 보냈다”며 “창문, 벽지, 타일까지 구입해 컨테이너에 넣은 다음 연장 2만5000㎞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북한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운송기간이 4~5개월 걸렸다”면서 “빈을 중심으로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물건을 구입했다. 수출이 제한된 물건들에 대해서는 중개상인들에게 20~30%의 웃돈을 주고 샀다”고 언급했다.
김 씨는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독재자들은 신변을 보호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북한의 붕괴 가능성과 관련, 김 씨는 “당장은 붕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면서 “사람들이 독재자를 미워하지만 0.1%도 되지 않는 주변의 무리가 주민들 탄압하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해 “한 번도 연락해보지 않아 생사도 모른다”며 “당시 처와 아들, 딸이 있었다. 아들은 이제 45세, 딸은 40세쯤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