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모씨 등 청구인 64명이 제기한 6건의 헌법소원사건이 병합된 이날 심판에서 청구인 측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조사위원회) 측 대리인 및 참고인들은 팽팽한 공방을 이어갔다.
특별법은 ‘러·일전쟁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판 대상은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정의하는 조항 △러·일전쟁부터 해방 시까지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조항이다.
따라서 이들 조항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진정소급입법인지 여부, 헌법상 보호되는 재산권 침해 여부,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연좌제 금지 위반 여부 등이 이 사건의 쟁점이다.
청구인 측 변호인들은 “일제강점기 때 취득한 재산이라고 해서 40년간 경제활동으로 취득한 모든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경험칙에 반한다”며 “재산이 취득될 당시 경위에 대한 입증도 사실상 불가능해서 친일행위에 따른 재산으로 추정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사위원회 측 변호인들은 “국가성을 부정하고 매국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그들 스스로 부정한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보장받을 수는 없다”며 “당초 불법성이 내포돼 있는 재산인 만큼 취득행위 시부터 합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맞섰다.
조대현 재판관은 이해관계인 측 변호인에게 특별법 규정에 친일행위의 시기와 관련해 왜 러일전쟁 개전까지로 올려 규정했는지를 물었고, 이에 변호인은 “실질적으로 1905년 러일전쟁을 구실로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배치해 이때부터 강점 행위가 시작된 것으로 이에 협력한 때부터로 반민족행위를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사건은 한일합병에 기여한 공으로 남작 작위 등을 받은 이정로, 민영휘, 조성근 등의 후손들이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지난 2005년 조사위원회로부터 국가귀속 결정을 받자 서울행정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으나 기각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 이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