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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청풍호반의 비경 옥순봉.구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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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0. 10. 07. 14:22

가을의 서정시를 예서 쓰다
탁트인 옥순봉 암릉길에 올라서면 청풍호를 오가는 유람선과 가을색으로 물드는 산이 파란 하늘과 만나 한 폭의 산수화로 빛난다.
[아시아투데이=양승진 기자]가을에 서정시를 쓴다면 이럴 것이다.
“뭉개 뭉개 안개가 걷힌 산허리는 금새 거울 같이 반짝였다. 햇살을 받은 빨간색 다리는 고추잠자리가 이어진 듯했고, 그 푸른 물결을 가르는 유람선으로 크기를 짐작케 했다. 산꼭대기서 내려다보는 산하는 그저 눈물겹도록 아름다워 깨물어주고 싶을 뿐이다.”
이 시에 알맞은 정답은 ①임실 옥정호 ②제천.단양 옥순봉.구담봉 ③정선 아우라지 ④고성 화진포.
정답은 ②번 제천.단양 옥순봉.구담봉이다.
호수와 암릉, 파란 하늘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져 가을에 가면 그저 신선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옥순봉.구담봉이다. /제천=글.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청풍호를 수 놓은 옥순대교. 가을 날 빨간색 고추잠자리를 연상케 한다.
옥순봉과 구담봉을 경계하는 건 옳지 않다.

한 길로 올라가 나눠짐만 없다면 같은 산이다. 단지 구분을 하자면 옥순봉(玉筍峰, 283m)은 제천이고, 구담봉(338m)은 단양이기 때문이다.

가족 산행지로 적당한 산이긴 해도 옥순봉이 1시간 남짓이면 구담봉은 3시간+알파다.

36번 국도변 국립공원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농장터~갈림길~옥순봉~갈림길~구담봉~지원센터까지 되돌아오는 6.3㎞ 구간을 얏보면 큰 코 다친다.

물론 산행시간이 4-5시간이면 되지만 로프를 타고 바위를 넘나드는 산행은 그렇다 쳐도 수직벽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기 여서 파르르 다리가 떨릴 때도 한 두번이 아니다.

마치 악어가 헤엄치며 먹이를 기다릴 것 같은 무시무시함이 있다.

옥순봉 입구에 그리 큰 주차장은 아니지만 차를 댈 만큼은 있고, 이곳부터 농장터까지는 대부분 포장된 임도가 이어진다. 가는 길에는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가 너른 이파리를 흔드는 데 마치 뽕나무인가 착각하게 한다.

월악산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이곳은 나무들마다 안내문이 붙어 있어 나무이름 알아맞히기를 해도 즐거운 산행이 된다.

차가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공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나무계단 길이 이어진다. 계단 옆으로는 추어탕을 먹을 때 넣는 산초가 흐드러지게 알몸을 내민다. 정상쯤에 다다르면 너른 공터가 나오고 여기서 옥순봉과 구담봉 갈림길이다.

탐방안내소에서 여기까지 쉬엄쉬엄 가도 30-40분이면 족하다.

왼쪽으로 가면 옥순봉이고 얼마간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인생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진 옥순봉.
멀리 옥순봉이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지면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암릉과 어울려 겸제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는듯하다. 시선이 끝나는 지점마다 소나무가 부채살처럼 펼쳐져 파란 하늘과 함께 청량감을 더한다.

다시 바위 길을 올라서면 까마득히 절벽이고 너른 청풍호와 금수산, 가은산, 가늠산, 말목산 등 첩첩이 줄기가 포개져 정리돼 있다.

옥순봉은 퇴계 이황 선생이 붙인 이름이다. 단양군수로 재임(1548년)할 때 ‘천길 단애를 이룬 석벽이 비 온 뒤 솟아오르는 옥색 대나무 순과 같다’고 해서 이렇게 불렀다.

조선 정조 시대 때는 괴산군 연풍현감으로 있던 단원 김홍도는 옥순봉을 보고는 1796년 ‘병진년화첩’에 단양팔경 제6경인 옥순봉도(玉筍峰圖)를 남겼다.

그때 유람선 한척이 물살을 가르며 옥순대교로 향하자 한 점이 마치 가을의 전령사처럼 푸른 하늘과 대비된다.

얼마나 넋을 뺀 채 비경에 취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구담봉으로 향했다.

원래는 옥순봉 아래서 강가를 따라 가는 길이 있지만 청풍호에 물이 가득 차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갈림길에서 한 5분쯤 됐을까 잡목을 헤치고 나가자 갑자기 전망이 확 트이면서 멀리 장회나루가 보이고 그 앞에 구담봉이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내리막 길이지만 하도 가팔라 로프에 의지한 채 내려 서니 70-80도는 돼 보이는 바위산에 쇠파이프로 길을 내 정신이 아득해진다. 까딱 잘못하면 그 길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건 등산이아니라 수행 중인 납자를 연상케 했다.

마치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은 것처럼 절벽에 붙어 꼬물꼬물 오르는 길은 긴장과 탄성의 반복이고 이따금 오금까지 저려온다.


장회나루를 출발한 청풍호 유람선이 관광객을 가득 싣고 옥순대교를 향해 미끄러지듯 가고 있다.  
거북등에 어르는 맛이 이 맛일까. 그래서 구담봉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구담봉은 옥순봉 가는 것에 비해 3배는 힘이 더 든다는 것이 산행시간으로 말해준다. 구담봉 코스는 3시간이 넘는다고 하니 이 말이 틀리지 않는다.

거의 기다시피 올라서니 청풍호를 따라 굽이굽이 단양으로 가는 36번 도로와 장회나루는 물론 점점이 떠 있는 유람선도 아스라이 미끄러진다. 한 발짝 앞은 수만길 낭떠러지기여서 온 몸이 서늘해진다.

청풍호의 끝과 끝이 파도치듯 솟아오른 산에 파묻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니 그 절경은 신선이 따로 없다.

중국의 장가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암괴석과 소나무들이 어울려 맛으로 따지면 탄산수처럼 톡 하고 쏜다.

다시 이 비경을 볼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니 주차장까지 꼬박 4시간40분이 흘렀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그 비경을 떠올리자 콧잔등이 짠해진다.

살 떨리는 산행이지만 생과 사의 떨림이 아직까지 전해진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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