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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소외된 이들의 내일을 꿈꾸게 하는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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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1. 03. 23. 17:30

김영훈 주탄자니아합중국 대사

김영훈 주탄자니아합중국 대사

동아프리카의 중심에 여유롭게 자리하고 있는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모든 이로운 자연의 보고다. 킬리만자로산, 세렝게티 초원, 빅토리아 호수, 그리고 잔지바르섬.

그러나 천혜의 자연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저주가 되기도 한다. 탄자니아 북서쪽 빅토리아 호수 주변이 그러하다. 인근 무완자 지역과 호수의 남쪽 코메섬(인구 5만명)에는 바다같이 크고 아름다운 이 호수를 매개로 우리에게 생소한 열대질환을 유발하는 기생충들이 만연해 있다.

‘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s, NTD)이다. 잘 사는 사람, 부유한 국가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진국과 세계적 제약회사가 ‘소외’된 질병이라는 의미 그대로 명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4개의 질환을 NTD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무완자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빈번히 발견되는 NTD 질환은 주혈흡충과 토양매개성 연충에 의한 감염이다. 이 기생충들은 호수와 토양을 매개로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장과 간을 감염시킨다. 감염되면 배가 임산부처럼 부풀어 올라 50세 이전에 죽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질환들이 극심한 고통과 장애를 야기하고 있고,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데도 ‘소외’된 질병이라는 이유로 에이즈(HIV/AIDS)나 말라리아에 비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2011년 3월 10일, 탄자니아 내 NTD 발병률이 가장 높은 무완자 지역에는 환호와 축하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정부의 도움으로 소외열대질환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클리닉이 개원한 것이다. 클리닉은 우리 정부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및 굿네이버스를 통해 수행하는 ‘무완자 소외열대질환 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연간 1만여명 가량의 소외열대질환 환자의 검사와 투약 치료가 가능할 전망이다. 또한 클리닉은 소외열대질병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 조사 및 치료 예방 사업을 수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코메섬 주민들에 대한 기생충 약 투여, 신규 우물 개발을 통한 안전한 수원 확보 및 공공보건 교육 등 NTD 관리사업도 전개할 계획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23개의 우물을 개발했고, 향후 3년간 추가로 20여개 이상의 우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코메섬 전 지역 주민들이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호숫물 대신 우물물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다. 또한 지속가능한 NTD 예방을 위해 한 가정 당 최소한 1명에 대해 공중보건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현재 80~90%로 추정되는 코메섬 주혈흡충과 토양매개성 연충 감염률을 5% 미만으로 줄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번 사업의 재원은 혁신적 개발재원을 확보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만든 ‘국제빈곤퇴치기여금’으로 불리는 항공권연대기금이다. 우리 정부는 2007년 9월부터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기 이용객들로 부터 ‘1000원’을 모아 기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금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및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모두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질병 퇴치에 쓰이고 있다. 한국을 떠나 세계를 향하는 발걸음에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향한 따스함과 희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을 더욱 값지게 만든 것은 ‘기생충박사’들로 알려진 자원봉사자들의 숨은 땀과 노력일 것이다. 임한종 박사, 민득영, 엄기선, 용태순, 채종일 교수로 이루어진 기생충연구팀은 방학 때마다 아프리카 오지를 돌며 기생충예방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코메섬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마을운동 노래인 ‘잘살아보세’를 한국말로 부르며, 천년동안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가난과 질병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소외된 지역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더 아플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우리 국제선 이용객들의 작지만 소중한 기여가 이들 삶의 전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버림받았던 그들도 이제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같이 소중한 사업은 빈곤퇴치기여금 제도가 2012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용되게 돼 있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제도가 연장돼 세계의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사업이 계속 진행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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