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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상 재해’ 경계 기준은?

* ‘업무상 재해’ 경계 기준은?

기사승인 2011. 05. 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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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의 화제의 판결]“산재 탓 자살, ‘해고 경고 스트레스’ 사망도 인정”
법원 “집에서 점심 먹고 회사 오다가 사고死 업무상 재해 인정”
“사장 주재 전체 회식은 인정…남은 사람들끼리 비공식 2차는 ‘불인정’”






[아시아투데이=김미애 기자] 법원은 업무와 근로자의 질병·신체장애·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 질환, 소음성 난청, 신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 등에 대해서는 일반적 인정요건과 의학적 진단요건으로 나눠 업무상 재해의 판단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회식 후 음주사고가 발생했다면 법원은 모임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이뤄졌는지를 재해 기준의 쟁점으로 삼습니다.

1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1년 1분기 산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지난해 1분기 307명에서 43명 늘어 350명으로 집계 됐으며, 업무상 재해자들은 허리에 무리가 오는 요통질병(855명)·끼임(511명)·충돌(292명)·추락(275명)·무리한 동작(166명) 등으로 인한 다양한 질병을 호소했습니다.

오늘은 업무 도중 질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한 근로자들이 “업무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산재 고통 탓에 우울증…자살했다면 업무상 재해”

법원은 산업재해로 크게 다친데 따른 절망감과 간병을 떠맡게 된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살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은 작업 중 지게차에 깔려 하반신이 마비된 후 자살한 양 모씨의 모친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근로복지공단은 유족 보상금과 장의비를 양씨 모친에게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양씨는 사고로 인해 40대 초반의 나이에 걷지 못하게 된 것은 물론 대·소변도 못 가릴 지경이 돼 80세 노모의 간병에 의존하게 되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신체기능마저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양씨는 자신의 비참한 상태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절망감, 노모에 대한 죄책감 등이 우울증으로 발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에 이르게 됐다”며 “자살과 업무상 상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역 가공업체에서 일하던 양씨는 2008년 9월 지게차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척추가 골절되는 등 큰 상해를 입어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그는 재활치료에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자 절망감과 팔순 노모에게 간병의 부담을 주고 있다는 죄책감 등으로 자살을 결행했습니다. 이에 양씨의 모친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과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 법원 “‘해고 경고’ 스트레스 받아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

법원은 해고 경고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사망한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은 어류 가공업체에서 일하던 지 모씨 유족이 “과중한 업무와 사업주의 해고 경고로 인한 스트레스로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지씨가 홈쇼핑업체 납품에 따른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중 사업주의 해고 경고로 스트레스가 가중됐다”며 “지씨의 뇌출혈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1998년부터 가공업에 종사해온 지씨는 2008년 10월부터 홈쇼핑업체에 납품이 시작되며 늘어난 업무량으로 힘들어했습니다. 지씨는 사망 전날 동료와 말다툼하던 중 사업주에게서 해고 경고를 듣고 심적 고통을 겪다 작업 중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 법원 “점심 먹고 회사 오다가 사고死 업무상 재해”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회사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도 나왔습니다. 지난 4월 전주지법은 경비원 김 모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회사는 별도의 점심식사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망인이 점심식사를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는데, 망인이 사고 당일에도 평소와 같이 집에서 식사를 하고 회사로 복귀하던 중이었던 점 등을 비춰보면 망인의 행위는 사업주의 지배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주 모 회사 경비원인 김씨는 2009년 10월 27일 오전 11시 30분쯤 평소처럼 자택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토바이로 회사에 복귀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 “사장 주재 전체 회식은 업무상 재해 인정”…비공식 2차는 ‘불인정’

회식 이후 발생한 음주사고의 경우 법원은 모임의 주최자, 목적, 참석 강제성 등을 기준으로 회식과 업무간 연관성을 엄격히 판단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조직의 장이 모임을 주최해 직원 대다수가 참여했다거나 법인카드로 비용을 부담한 회식은 업무의 연장 선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은 밤늦게까지 진행된 송년회식을 마치고 이동하다가 발을 헛디뎌 농수로에 빠져 사망한 방 모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회식이 대표이사의 주관 하에 소속 직원의 사기 진작과 단합 도모를 목적으로 이뤄졌고 비용도 법인카드 등으로 계산된 것으로 볼 때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방씨는 회식에서 과음으로 거동 등에 문제가 생겨 사망했고 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공식적인 송년행사가 끝나고서 남은 사람끼리 자발적으로 이어간 술자리에서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과음행위가 근로자의 독자적 판단을 통해 이뤄졌다면 이를 업무의 일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 모씨는 2007년 12월 28일 전 직원이 참석한 1차 회식 후 일부 직원과 따로 가진 2차 회식에 참석한 뒤 만취 상태에서 실족하는 바람에 바다에 빠져 익사했습니다. 조씨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2009년 부산지법은 “2차 회식은 일부 직원끼리 술을 더 마시려고 즉석에서 마련된 자리이며 참석도 강제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업무수행과 관련됐다거나 사용자의 지배·관리를 받는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비기사 박 모씨도 송년 모임이 끝나고 노래방으로 이동하다 넘어져 머리를 다친 경우지만 법원은 ‘노래방 회식은 임의적 선택이었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박씨는 당일 근무자인데도 자발적으로 술을 마신 점, 1차 회식 후 근무지로 복귀해야 하지만 비번인 사람들과 어울려 2차로 노래방을 따라간 점 등을 종합해볼 때 노래방 회식을 업무의 일환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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