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조은주 기자] 5월 들어 미국과 일본 수장이 잇따라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6일 후 태평양 건너 일본에서는 간 나오토 총리가 하마오카 원자력발전소 운영사인 주부 전력에 현재 운전 중인 4호기와 5호기를 포함해 모든 원자로 운전을 정지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언제 발생할 지 모를 지진에 대비하자는 취지였죠.
이 두 가지 사안은 법적인 차원에서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미군의 빈 라덴 사살에 대해서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세계 여기저기서 제기됐고 하마오카 원전 중단 요청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 "법치 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두 사안에는 각각 테러와의 전쟁과 방사능과의 전쟁이라는 배경이 깔려있습니다만 미국과 일본 수장의 정치 생명과 직결돼 있다는 측면은 너무나 닮았습니다.
이 두 수장의 해결책을 들여다보면 리더십과 통치에 임하는 자세에서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국제 문제에 정통한 미야케 쿠니히코 캐논 글로벌 전략연구소 주간의 이러한 주장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우선 오바마가 전쟁에 맞선 상황부터 거론해 보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긴급 연설에서 ‘정의’란 단어를 5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의를 달성하다’로 잘못 번역돼 "비무장, 무저항의 빈 라덴을 살해하겠다"는게 미국이 말하는 ‘정의’냐는 어긋난 논쟁까지 일기도 했답니다.
연설을 들어보면 빈 라덴 살인이 전쟁의 일환인 점은 맞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전부터 테러와의 전쟁을 언급할 때마다 미국에 선전 포고를 했던 빈라덴에 대해 "bring to Justice"라고 말해왔습니다.
이번 연설에서 "정의"는 일반적인 의미보다는 "심판", "처벌"과 같은 뉘앙스를 풍긴 셈이죠.
또 미국 최고 수장인 오바마 대통령이 관련 법령에 따라 정보 수집과 전략 실행을 전문 관료들에게 맡기고 명령을 내린 후 실패할 경우엔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단호한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방사능과 싸우고 있는 간 총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지난 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간 총리는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단에 대해 "평가는 역사 속에서"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위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에 대해 미야케 주간은 오히려 국가의 안전이 더 걱정됐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법치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원칙입니다. 입법 기관이 법률에 의거해 행정 권한을 제한하고 제도를 규정한 이유는 정치가, 책임자의 자의적 행동을 막기 위한 역사적인 지혜라는 것이죠.
하마오카 원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핵 원료 물질 및 원자로의 규제에 관한 법률로는 중단 명령을 절대 내릴 수 없다는 게 미야케씨의 주장입니다.
물론 전례없는 위기 상황이라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관련법에 관한 대책 논의와 개정을 무시한 채 중지 요청을 하고 최종 판단은 전적으로 원전 운영사인 주부전력에게 맡겼다는 것은 너무도 자의적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원전 공포로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나온 조치여서 주부전력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미국 수장이 보여준 법률에 따른 단호한 조처가 아닌 중단 요청, 그리고 만약 잘못됐을 경우에 대한 책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뜻이지요.
지난달 한 통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의 76%가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간 총리가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거나,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신감은 지금도 여전하고요.
사실 기자는 간 총리의 열광적인 팬이었습니다. 지난 1996년 유학 당시 일본 사회는 ‘약물 피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사건’으로 떠들석했습니다.
'약물피해 에이즈 사건'은 일본 행정당국이 실수로 HIV에 감염된 외국혈액을 원료로 해서 만든 혈액응고제를 시중에 유통시켜 이 약물을 투입한 백혈병 환자들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건입니다.
당시 후생성 장관으로 재임하던 간 총리는 후생성 내의 비리를 과감히 파헤치고 자료를 모두 공개하는 한편 피해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간 장관는 일본 국민으로부터 호감을 얻었고 일본 정치의 고질적인 관료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특히 TV화면에 보이는 웃는 얼굴 뒤에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무장되어 있다는 평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15년 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대지진 이후 리더십은 온데간데 없었고 무능한 내각이라며 야당 자민당과 여론의 질타를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급기야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퇴진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죠.
일본인들이 그에게 이토록 실망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15년전 보여줬던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위기 관리 매뉴얼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일본 내각의 모습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처럼 단호한 리더의 모습을 일본인들은 간 총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