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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오션이 펴낸 ‘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 |
이태석 신부가 소속된 살레시오 수도회는 고인의 일대기를 다룬 어린이 서적 ‘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이하 ‘우리 신부님’)을 출간한 북오션 출판사를 상대로 지난달말 서울지법에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살레시오 수도회는 이태석 신부가 활동하던 수도회로, 고인의 선종 이후 저작권이 교회법에 의해 수도회로 귀속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우리 신부님’이 이태석 신부가 직접 쓴 ‘친구가 되어주실래요?’(이하 ‘친구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다.
살레시오 수도회 관계자는 “책 내용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이태석 신부가 생전에 유일하게 쓴 ‘친구가’를 베껴 쓴 것”이라며 “수도사의 저작권과 재산권, 초상권은 소속 수도회에 귀속되는데 이태석 신부가 소속된 살레시오 수도회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책 내용을 사용한 것은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북오션 관계자 “평전은 다른 자료 참고해 기록하는 것이 당연”
이에 북오션 관계자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은 다른 서적이나 자료를 참고해 기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서 “하물며 고인이 직접 쓴 서적에 관한 내용이 인용되는 것은 저작에 따른 당연한 결과고 관례적으로도 통용됐기 때문에 이를 저작권 침해라고 소송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북오션 관계자는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공인이나 공인에 준하는 사람의 행적을 글로 남기고 문서화하는 것은 저작권에 침해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면서 “일례로 일명 ‘이휘소 사건’으로 알려진 소송에서 이휘소 유가족이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 등을 사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그 대상자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대상자의 사진을 게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자의 생애에서의 주요 사건이 다뤄지고, 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다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법원이 판결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살레시오 수도회는 저작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한 인물에 대한 독점권을 갖겠다는 것으로, 이는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한 시도로 보여 매우 염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신부님’의 저자 이채윤 씨는 “이 서적을 어린이들이 보기 좋게 동화 형식으로 일대기에 살을 붙이고, 이태석 신부가 남을 사랑했던 마음을 부각시켰다”면서 “남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며 살아간 고인의 높은 뜻을 어린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소송 때문에 이름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 1998년 박찬호 선수 관련 책 저작권 침해 아닌 것으로 판결
이와 비슷한 사례로 박찬호 선수와 무당미디어 간의 소송이 있었다. 1998년 박 선수는 무당미디어에서 펴낸 ‘메이저리그와 정복자 박찬호’가 자신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출간됐으며 자서전 ‘헤이두드’의 내용 중 일부를 무단 사용해 “명예를 훼손하고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무당미디어와 저자를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서울지법은 무당미디어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 책이 박 선수에 대한 평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저작물의 성질상 대상자의 사진을 게재하고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애에서의 주요사건을 다루고 저자의 의견을 가미할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책의 별책부록인 박 선수의 투구모습을 담은 브로마이드에 관해서는 “상업적으로 이용될 염려가 적지 않다”며 박 선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인쇄·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실제 출판계에서는 본받을 만하거나 여러 가지 평가가 존재하는 인물에 관한 다양한 서적이 출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서적은 본인이 직접 쓴 책을 비롯해 어린이 서적, 평전 등 100여종 이상의 서적이 판매 중이며, 법정스님은 “사후에 내가 쓴 책들을 더 이상 판매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남겨 본인의 책은 판매되지 않고 있지만 법정스님에 대한 일대기와 추모에 대한 서적은 서점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고 이태석 신부는 누구?
이태석 신부는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의사라는 장래가 보장된 직업을 뒤로 하고 서른일곱의 나이에 신부가 된 인물이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수단의 남부 톤즈에서 가톨릭 선교 활동을 펼쳤으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다. 또한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돌며 진료를 했다.
이후 농경지를 일구고, 학교를 세워 원주민 계몽에 앞장서는 등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다가, 2008년 한국에 휴가차 왔다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2010년 1월 17일 선종했다.
사제이자 의사였으며 교육자이자 음악가, 건축가로 일인다역을 했으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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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에서 출간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