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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민투표, 법리적으론 문제투성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법리적으론 문제투성이

기사승인 2011. 08. 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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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택 교수 “대의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서울시가 강행하고 하고 있는 주민투표가 법리적으로는 많은 문제와 쟁점을 지니고 있어 공방이 길게 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투데이=최석진 기자] 서울시는 지난 1일 서울시내 초·중학교에서의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오는 24일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실적으로는 과연 이 날 개표를 위한 정족수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할 지와 그 중 과반수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관심을 끌고 있지만, 법리적 측면에서는 이번 주민투표 실시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 사법부의 판단과 주민투표 결과 달라지면 어쩌나

무상급식 문제를 둘러싼 분쟁은 현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서울행정법원에서 다퉈지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서울시의회 의장이 지난 1월 6일 공포한 ‘서울특별시 친환경 무상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의 효력이 다퉈지고 있고, 헌재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곽노현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 무효인지 여부가, 또 행정법원에서는 오 시장이 이번 주민투표 청구를 수리한 것이 무효인지가 다퉈지고 있다.

그리고 24일로 예정된 주민투표에서는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중학교는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안’과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 급식을 하는 안’을 놓고 주민들이 선택을 하게 됐다.

형식적으로 볼 때는 주민투표 대상과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실질을 들여다보면,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위한 서울시의 재정적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조례가 유효한지가 대법원에서 심판되는 동안 서울시 주민들은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실시할지 아니면 대상에 제한을 둘 것인지를 투표로 결정하게 되는 양상이다.

최악의 경우 24일 실시될 주민투표 결과 무상급식 대상을 ‘소득 하위 50% 학생’으로 제한하는 서울시의 안이 채택된 뒤에 대법원은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전면 무상급식’ 조례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4일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재판부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라며 “주민투표 실시 등 외부적 사정에 의해 선고기일을 앞당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에서는 학교 급식에 관한 사항이 서울시장과 서울시교육감 중 누구의 권한인지의 본안 심사에 앞서 주민투표 진행 절차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 사건이 접수돼 심리가 진행 중이다.

헌재 관계자는 “주민투표가 24일로 예정된 점을 감안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가처분 사건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담당 재판부가 심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헌재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주민투표가 예정대로 실시된 후 권한쟁의에 관한 본안에서 “이번 주민투표 실시는 교육감의 권한 침해에 해당해 무효”라는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서울시교육청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서울시의 주민투표 실시 공고 직후 서울시교육청은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교육청에서는 이번 주민투표가 교육·학예와 관련이 있는 무상급식에 관한 것이니 만큼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주민투표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사항을 주민투표에 부쳤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투표법 7조(주민투표의 대상) 2항은 주민투표 대상 제외사유를 열거하고 있는데, 이번 사안의 경우 1호(재판중인 사항)와 2호(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 3호(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관한 사항)에 모두 해당한다는 것이 교육청의 입장이다.

한편 헌재의 가처분 사건이나 권한쟁의심판에서는 서울시교육청(혹은 교육감)에 청구인 자격이 있는지 문제와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가 시장과 교육감 중 누구의 권한인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교수(헌법학)는 “청구인이 서울특별시교육청으로 돼있고 피청구인이 서울특별시로 돼있어 어떻게 보면 동일한 지방자치단체 내의 두 기관 간의 분쟁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현행 헌법재판소법 62조 2항이 교육감의 당사자 적격을 명문으로 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가 같은 국회 내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간의 권한쟁의심판을 인정한 것에 비춰볼 때 각하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청구에 따라 주민투표를 발의한 것만으로 과연 곽노현 교육감의 권한이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 즉 침해당한 권한의 존재와 권한 침해 가능성이 문제될 것”이라며 “학교급식에 관한 사항이 교육감의 권한에 속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급식과 관련된 사항의 주민투표를 발의할 권한도 교육감에 속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복지포퓰리즘 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법리적 문제들을 떠나서 이번 주민투표 실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복지포퓰리즘의 위험성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민주주의 의사결정에 관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무조건 다 수용하는 것은 결국 재정의 위기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지방의회에서 제정한 조례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해서 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곧장 주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대의제’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가령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법률로 제정한 것을 대통령이 맘에 안들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국회가 그 법률을 보다 높은 정족수로 재의결할 경우 대통령은 그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자치법에서 분명히 지방의회에서 제정한 조례에 불만이 있는 때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재의를 요구하고, 지방의회가 다시 재의결했을 경우에는 법령에 위반됐을 경우에 한해서 대법원에 제소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이번 경우에는 서울시가 이미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해 대법원에 무효 소송을 낸 상태인데, 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예로부터 프랑스의 나폴레옹이나 드골 대통령 등 독재자들이 국회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국민투표였다”며 “오 시장의 이번 주민투표 강행은 오히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권력분립 등 보수·우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는 헌법에서 무상교육을 국가의 의무로 설정해 놓은 만큼 무상교육 대상인 초·중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재정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즉 재정이 허락하는 한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것이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막상 무상급식이 실시될 경우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서울시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불과 600억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재정위기’ 운운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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