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공의 종류가 적었다. 지금은 종류만도 수 십 개에 달한다.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기본 형태에 각자가 조금씩 변화를 줘 '응용구'를 만들어 냈다. 속구(速球)의 경우는 드물지만 변화구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발전돼 왔다.
어떤 일에서든 방법을 새롭게 하거나 한 단계 높은 것을 하려면 기본을 배워야 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뛰기 위해선 먼저 걸어야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선 글부터 배워야 하는 것처럼.
야구에서 투수에게도 '기본'으로 배우고 갖춰야 할 구종이 있다. 속구(패스트볼)와 변화구다. 투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공으로 타자를 압도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타자의 눈을 속여야 한다. 변화구는 타자를 속이기 위한 투수의 중요한 무기가 된다.
변화구의 '기본'으로 꼽는 것이 슬라이더(Slider)다. 어떤 투수든 변화구 중 슬라이더만큼은 던질 줄 안다. 만약 어떤 투수의 프로필에 던지는 구종 중 슬라이더가 없다면 이렇게 생각하라. 던질 줄 알지만 그 구종의 이름이 슬라이더인지 모르는 것이거나 투수가 아닌데 투수로 잘못 기재돼 있거나.
슬라이더(Slider)는 이름 그대로 '미끄러지는 공'이다. 오른손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손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휜다. 타자는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해 휘두르지만 마지막에 휘기 때문에 헛스윙을 하거나 배트 끝에 빗겨 맞추는 경우가 많다.
(오른손 투수 기준) 슬라이더는 말발굽 면을 만들어내는 봉재선 중 오른쪽 부분 안쪽에 검지와 중지를 위치시키는 그립이다. 특히 중지는 봉재선 위에 살짝 걸치고 던지는 순간 실밥의 바깥쪽을 향해 긁어 회전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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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더(Slider) 그립(위, 정면) |
대개 사람의 눈은 위아래의 변화보다 좌우의 변화에 민감하다. 타자는 다른 변화구에 비해 좌우로 휘는 슬라이더에 빠르게 적응하게 돼 쉽게 맞추게 된다. 특히 브레이킹(공의 좌우/상하의 움직임)이 제대로 걸리지 않은 슬라이더는 약간 느린 패스트볼과 다를 것이 없어 장타의 위험이 있다.
많은 투수들이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기보다는 타자를 속이는 데에 의미를 둔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브레이킹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리하게 손목을 쓰거나 팔 스윙을 과도하게 해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아직 몸이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신인에게 이 슬라이더는 다시는 선수 생활을 못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슬라이더의 강자로는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KIA 타이거즈 윤석민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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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윤석민 KIA 타이거즈 |
놀라운 것은 윤석민의 슬라이더의 경우 시속 140km를 웃돌며 웬만한 투수의 패스트볼과 비슷한 속도가 나온다는 점이다.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빠른 속도가 위력적이지만, 빠른 속도에서 만들어지는 회전력이 공의 브레이킹(공의 좌우의 움직임)을 높여 타자가 속게 만든다. 그래서 윤석민의 슬라이더를 현존 최고의 '명품 슬라이더'라고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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