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가슴엔 ‘적십자’를 상징하는 배지가 달려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탁자 위에도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 모양의 표장(標章)이 선명한 적십자 깃발이 놓였다.
“적십자는 쉬지 않고 일한다.”
1971년도 적십자사연맹(IFRC) 표어다. 그도 그랬다. 1998년 대한적십자사(한적)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 활동을 계기로 적십자와 인연을 맺은 이후 쉼 없이 달려왔다. 붉은 십자의 수장(首長)이 된 지금, ‘누군가의 희망’을 지키기 위한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유중근 총재. 한적이 창립된 1905년 이후 106년 만의 첫 여성 수장이다. 지난달 16일 취임했을 때 언론에서도 ‘첫 여성 총재’라는 타이틀에 주목했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소파길에 위치한 한적 총재실에서 그를 만났다. 유 총재가 “아시아투데이 창간 6주년을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는데 왠지 ‘봉사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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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정도 지났는데 한 서너 달은 지난 것 같습니다. 업무 파악과 현안을 보고받고 추진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터키와 태국에서 지진과 홍수로 큰 피해가 있었는데 현지 적십자·적신월사와 협조해 구호성금을 모금하고 있어요. 또 이산가족 상봉, 북한 이탈주민, 다문화가정 문제 등 여러 인도적 문제들에 신경을 쓰면서 일을 해나가는 상황입니다.
-한적이 운영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다양한데요.
“적십자가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것 중 하나는 다른 기관과 달리 함께 일할 수 있는 봉사원이 10만4000명이나 있다는 것입니다. 각종 봉사나 후원 모금 프로그램이 있다 하더라도 봉사원이 없이는 일할 수 없겠죠. 이 봉사원들은 적십자의 자랑이자 핵심입니다. 이 분들이 하는 일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50만명의 적십자 봉사원 모집’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9만7000명에서 올해 10만4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영리더인 RCY(Red Cross Youth)까지 더하면 총 35만 정도가 움직이고 있지요. 적십자 일들이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급식 봉사’를 사례로 뽑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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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이 좀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좀 더 좋은 훈련과 더불어 봉사자들을 격려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많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모든 적십자 가족들이 하나가 돼 적십자에서 일하는 것이 보다 자랑스럽고 ‘좋은 직장을 택했다’고 생각하면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의 기부·나눔문화에 대한 의식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기부·나눔문화에 대한 의식이 어느 정도일까에 대한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영국 자선재단 카프(CAF)와 갤럽이 지난해 공동으로 발표한 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와 봉사 참여수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81위를 차지했더군요. 놀랍게도 스리랑카나 라오스에도 뒤지는 순위였습니다. 우리나라 GDP 규모가 세계15위 이내임을 감안하면 기부문화 수준은 높지 않은 셈이죠. 재난복구 같은 일회성 활동에 치중돼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까지는 일시적인 나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거네요.
“그래도 개인 기부금이 전체 기부액의 60%를 넘어서는 등 나눔 의식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기부·나눔문화가 확산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총재가 돼서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뜻 적십자 회비를 내주시는 450만~500만의 국민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국제협력활동 현황은 어떻습니까. ‘개발원조’ 등 새로운 패러다임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원조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한 활동이 많습니다. 적십자도 이 대열에 합류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적십자는 이미 세계적 네트워크 조직을 갖추고 있잖아요. 모든 면에서 국제협력을 하기에 굉장한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예를 들어볼까요. 최근 동남아 지역의 신부들이 한국으로 많이 들어오잖아요. 이들이 아무 준비 없이 한국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베트남 적십자사 등과 양해각서(MOU)를 맺어 현지에서 먼저 한국 문화 등에 대한 교육을 갖게 하는 거죠.”
-최근 류우익 통일부 장관과 만났습니다.
“정부가 적십자와 같은 뜻을 갖고 남북문제와 이산가족 문제를 풀려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산가족상봉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도주의 문제입니다. 통일부 장관과 이 문제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내 이산가족 상봉 실현 의지를 밝혔는데요.
“12월이 가까워오니 인지상정으로 해가 가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한 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정부도 마찬가지 생각이고요. 2000년부터 지금까지 18회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냥 넘어가는 게 마음이 아프네요. 일이 잘 진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말씀드릴만한 큰 진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울러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도 함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과 무관한 인도적 지원’이 가능할까요.
“적십자사는 그동안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대북수해지원 등 꾸준히 인도적 지원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산가족과 더불어 따라오는 게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문제인데, 어느 때고 문이 열리면 혹은 북쪽에서 받아들이면 (지원을) 할 수 있게끔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봉사활동을 강화하려 합니다. 2만3000명의 북한 이탈주민들이 남쪽에 잘 정착할 수 있게끔 활동하는 1400명의 적십자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더 큰 사명감과 긍지를 주기 위해 ‘보드미’라고 네이밍을 했습니다.”
-‘첫 여성 총재’로서 북한 여성 문제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북한 이탈주민 가운데 여성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주로 20~40대입니다. 젊은 어머니들, 또 그들이 데려온 어린이들이 지닌 어려움도 많이 있죠. 중앙대 적십자간호대에 있는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산모케어 프로그램과 육아 프로그램을 계획 중입니다. 북한 내의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되도록 귀를 열어 관련 보고서 등을 많이 접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왕래하는 지인들로부터 생생한 소식을 듣거나 신문지상의 대북단체 이야기들을 스크랩하면서 연구하는 식으로 말이죠.”
-적십자 일원이 된지 14년이 지났습니다.
“특별자문위원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적십자정신’이 참 좋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봉사, 즉 행동으로 나타나는 ‘봉사’와 정신이나 영혼으로 나타나는 ‘사랑’이 합쳐져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정신을 존중하게 됐습니다. 요즘엔 3200명의 직원들이 신나게 잘 일하도록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네요. 봉사원들과 함께 ‘적십자를 국민 속으로 들어가게 하자’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그림입니다. ‘사랑과 봉사의 소금이 되자’, ‘나눔 문화의 맛을 내자’는 것이죠.”
-봉사가 천직인 것 같습니다.
“큰일이네요. 실체로 나타나야 할 텐데.”(웃음)
◇ 유중근 총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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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고,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영어언어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적 여성봉사특별자문위 부위원장 및 위원장, 김활란장학회 감사, 학교법인 이화학당 감사, 경기여고 총동창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