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길에서 정조대왕, 권율장군, 공자를 만나다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747116

글자크기

닫기

윤광원 기자

승인 : 2012. 12. 29. 08:10

* 윤광원의 이야기가 있는 걷기(제76회) - 경기삼남길
'삼남길'은 한반도의 남쪽끝인 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진, 나주, 광주, 전북 완주, 익산, 충남 논산, 공주, 천안, 경기 평택, 수원, 서울 남태령을 거쳐 남대문까지 1천여 리에 이르는 조선시대 10대 대로의 하나였다.

이 길은 한반도의 대동맥 같은 길로 대표적인 용도는 군사용 및 경제용이었다.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도 전란때 상경한 호남의 근왕병들도 이 길을 따라 이동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선비들과 등짐을 진 보부상들도 이 길을 이용했다. 한양에서 이 길은 다시 압록강변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대로'와 연결된다.

코오롱스포츠는 '걷기 좋은 길'을 목표로 해남에서 서울까지 500여 km에 달하는 삼남길 트레일코스를 개척하고 있다. 해남 '땅끝탑'에서 시작되는 전남구간에 이어 최근에는 경기도와 함께 경기구간도 개통했다. 완성되면 국내 최장거리 트레일워킹 코스가 된다.

삼남길은 인위적으로 개발한 게 아니라 남아 있는 옛길과 숲길, 해안길 등 기존의 길을 연결해 도보로 해남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서 걷기매니아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경기구간 삼남길 1단계 개통구간은 수원시내 지지대고개에서 출발, 서호공원과 화성 용주사, 오산 독산성을 거쳐 오산시내 '맑음터공원'에서 끝난다. 총 33.4km에 달한다.

1구간 '서호천길'은 골사그네~서호공원 구간 7.1km다. 초반의 '지지대(遲遲臺) 고개'는 정조대왕이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한 후 돌아가는 걸음이 못내 아쉬워 자꾸 행차를 늦추고 뒤돌아보곤 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부친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묻어난다.

경기삼남길을 한번에 걷기엔 너무 길어, 이 1구간은 생략하고 2구간 '중복들길(7km)'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수도권전철 1호선 화서역이 지척이다.

서호천은 본래 이름이 없었지만, 정조가 서호(西湖)를 조성하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서호는 화성 축성 후 농업생산력 증대를 위해 화성 인근에 조성한 인공저수지의 하나로, 예전에 이 기획시리즈에서 소개한 바 있다.

서호에서 출발, 향미정을 거쳐 서호천변을 따라간다. 천변으로 걷기 좋은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중보교를 지나니 곧 옛 수인선 철교가 나타난다.

추억의 협궤열차였던 옛 수인선의 철교

수인선은 일제 치하인 1937년 개통된 국내 유일의 휍궤열차였다. 선로 폭이 1m도 채 안되는 좁은 열차고 속도도 사람이 달리는 수준으로 느렸지만, 수원과 인천을 이어주는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경제개발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경제성이 떨어져 지난 1995년말 폐선됐다. 이후 17년만인 올해 6월 30일 오이도~인천 송도 구간이 복선전철로 개통됐고 2014년 12월에 송도~인천역 구간, 2015년 12월에는 수원~한대앞역 구간도 열릴 예정이다.

옛 수인선 협궤 선로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곳엔 당시의 철교와 선로가 일부 남아있다.

다시 서호천을 따라 계속 걷는다. 건너편은 수원공군비행장이다. 천변에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햇살에 반짝이고, 겨울 철새들이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평리교에서 서호천을 건너간다. 왼쪽 벌판 너머로 동탄신도시가 보인다. 곧 서호천과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수원천이 합류하는 지점이 나온다. 이제부턴 국가하천인 황구지천이다. 

황구지천길. 눈쌓인 뚝방길과 갈색 갈대밭이 어우러진 멋질 길이다.

배양교에서 다리를 건너 황구지천을 따라간다. 이제부턴 경기삼남길 3구간 '화성효행길(6.8km)'이다. 행정구역도 수원시에서 화성시로 바뀌었다.

잠시후 길은 황구지천변을 떠나 들판을 가로질러 배양리로 향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시골마을과 언덕, 들판을 지나면 용주사(龍珠寺)다. 용주사는 정조가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로, 이 시리즈에서 융건릉과 함께 소개한 바 있다.

용주사 앞에서 잠시 큰 도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들판길을 간다. 중간에 만난 타이어가게 앞에는 타이어로 만든 말탄 기사상이 서있다.

다시 황구지천과 재회한다. 눈덮인 둑길 양옆으로 갈대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서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어느새 세마교다. 다리를 건너면 오산시다. 또 4구간 '독산성길(7.2km)'이 시작된다.

도로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표식이 잘 돼 있어 길찾기는 쉽다. 곧 포장된 임도가 나오고 다시 산림욕장과 독산성으로 가는 넓은 흙길이 시작된다. 

독산성(禿山城)은 별로 높지 않아 금방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이 벌판에 우뚝 솟아 있어 사방이 잘 내려다보인다. 화성, 오산, 동탄신도시, 수원시내 등이 모두 조감되고 황구지천이 발 아래를 흐른다. 

산림욕장 표지판 앞에서 오른쪽 급경사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보적사(寶積寺)가 있다.

백제 때 처음 창건됐다는 고찰 보적사

이 절은 백제가 독산성을 처음 축성한 후 성내에 승전을 기원하며 창건했다고 한다. 경내에는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할 당시 재건했다는 주법당인 '약사전'과 요사채 3동이 있다.

보적사를 나오면, 바로 독산성 성곽이 이어진다.

사적 제140호로 지정돼 있는 독산성은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평지에 우뚝 돌출한 전략적 요충지로 백제가 처음 쌓았다. 이후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 용인 석성산성과 함께 도성 남쪽을 방어하기 위한 삼각체제의 한 축이었다.

이곳 정상에 있는 세마대(洗馬臺)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장군이 근왕병을 이끌고 북상중 이 성에 주둔하자, 적장 가토 기요마사가 수만 병력으로 성을 포위했다. 가토는 이 벌거숭이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 물 한 지게를 들여보내 조롱했다. 사실 독산성의 최대 약점은 물부족이다.
 
그러자 권장군은 기지를 발휘, 산꼭대기에서 말에게 흰쌀을 부어 멀기서 보기엔 마치 목욕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에 가토는 성에 물이 많다고 오판, 철수했다는 것.

이후 장군은 다시 북상, 행주산성에서 적을 대파하게 된다.

권율장군이 임진왜란때 왜군을 격퇴한 전적지 독산성

독산성은 산 정상을 빙둘러 축조한 퇴뫼식 석성으로, 성벽은 잘 보존돼 있지만 여장과 성문 문루 등은 모두 없어졌다. 덕분에 눈쌓인 성곽길은 더욱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성곽길을 걸으면 수원, 화성, 오산, 용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황구지천은 멀리 평택, 안성으로 흘러간다. 

서문에서 독산성을 나와 산밑으로 내려간다. 주차장에서 잠시 도로를 따라가다가 우측 성심학원 앞에서 들판길로 내려섰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독산성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마대승마장을 지나 길은 꼬불꼬불 이어진다. 고속도로 옆길을 따라가다 오른쪽 낮은산 고갯길을 넘어가자 오산 금암동 지석묘군이 있다.

이어 세교지구6단지 아파트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경기삼남길 마지막 구간인 5구간 '오나리길(5.3km)'이다. 큰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삼남길이 이어진다.

조용한 산길,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약수터를 지나 궐리사(闕里司)에 이른다.

공자를 모신 사당 궐리사

궐리사는 경기도기념물 제147호로 조선 중중때의 문신이자 공자의 후손인 공서린(孔瑞麟)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1793년(정조 17)에 왕이 옛터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공자가 살던 곳의 이름대로 지명을 궐리로 고쳤다. 

전국적으로 공자를 모시는 사당은 단 두곳 뿐이며 특히 국가에서 세운 사당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궐리사에서 잠시 도심지를 지나가면 오산천길로 합류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평택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맑음터공원'에 이른다. 이 공원이 바로 경기삼남길의 남쪽끝이다. 수도권전철 1호선 오산역에서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




윤광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