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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법제화, 사실상 제자리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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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영 기자

승인 : 2013. 02. 15. 06:31

신규 조항, 삭제 대상 ‘자신의 저작물’로 한정, 처벌 규정도 無
지난 2011년 불거진 이른바 '1호선 막말남' 사건 당시 사진. 이 사진은 타인이 촬영한 사진이 인터넷으로 퍼지며 허위 신상털기로 번졌다. /사진=인터넷 캡처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위 ‘신상털기’를 방지하고 개인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개인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자신의 저작물’만을 삭제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14일 아시아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인터넷 신상털기 등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흉기로까지 작동되는 상황”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자신이 쓴 글이나 사진 등을 ‘잊혀질 권리’에 따라 서비스 제공자에 삭제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자신의 저작물 및 게시물에 대한 삭제 요청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 관계자는 “자신이 등록한 저작물의 경우 사용 중인 아이디와 함께 일정한 양식의 ‘게시글 삭제 요청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바로 삭제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의 발의 배경인 소위 ‘신상털기’의 대상이 되는 사례도 대부분 본인이 작성한 글이 아니라 타인이 작성한 글이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입법목적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일어난 이른바 ‘개똥녀 사건’을 비롯해 2011년 일어난 ‘1호선 막말남 사건’, 같은 해 일어난 ‘부산 지하철 막말남 사건’ 등 대다수의 사건이 동승한 승객의 사진촬영 등 타인이 작성한 저작물 및 허위 개인정보로 인해 인터넷에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 의원은 “타인이 게재한 저작물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침해에 해당할 경우 삭제 요청이 가능하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타인이 작성한 저작물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경우에도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있을 것을 고려해 삭제 대신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더라도 작성자가 차단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하면 해당 저작물이 다시 게시되는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상 처벌 규정에도 ‘삭제 요청’과 관련한 처벌은 규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정안이 실질적으로 ‘잊혀질 권리’ 신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제자리걸음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으로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작성한 저작물이 아니라 타인이 작성한 저작물을 삭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경환 법률사무소 민후 대표변호사는 “자신이 작성한 저작물을 삭제하는 행위는 사실상 (잊혀질 권리 보장에) 큰 의미는 없다”며 “남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나에 관한 글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잊혀질 권리의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지난해 ‘잊혀질 권리’에 따라 정보주체가 자신이 게재한 정보를 포함해 그 링크 및 복사, 자기 정보가 포함된 제3자의 게재글까지 삭제·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개인정보보호규정안을 발표했다.

또 이와 함께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불필요한 정보를 자동으로 폐기하도록 한 정보의 ‘유효기간제’도 논의되는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같이 자신이 작성한 글뿐만 아니라 타인이 작성한 글을 모두 삭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성급한 도입은 지양하고 ‘잊혀질 권리’ 보장의 구체적인 범위와 한계를 정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 ‘잊혀질 권리’란 인터넷 상에서 특정인이 자신의 모든 개인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지난 2011년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이 포털사이트 ‘구글(Google)’에게 인터넷에 게재된 90명의 개인정보를 삭제하라고 명령하면서 그 근거로 청구인들의 ‘잊혀질 권리’를 들었다.

김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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