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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500년 전 백제의 눈물주...한산소곡주

[여행]1500년 전 백제의 눈물주...한산소곡주

기사승인 2013. 09. 1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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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장연 대표, 그의 손끝에서 전통의 맥이 이어진다
 
한산소곡주 나장연 대표가 한산모시관 뜰에서 1500년을 이어온 소곡주를 직접 빚고 있다. 앞에 늘어선 누룩과 들국화, 메주콩 등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들이 소곡주의 향을 그윽하게 한다.

아시아투데이 양승진 기자 = 가업(家業)을 잇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3대째 이어지는 가업이 부침현상이 심한 술이고보면 더 더욱 그렇다.

충남 서천에 가면 15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한산소곡주가 전해진다.

일본 술 청주의 효시라고 전해지는 이 술은 달다고 할 때쯤이면 쓰고 쓰다고 하면 또 단 것 같아 우리네 인생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나 한 모금 입에 털어 넣을 때마다 느껴지는 애잔함은 백제의 흥망성쇠를 입안에서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대한민국 전통주의 맥을 잇고 있는 나장연 대표를 통해 한산소곡주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서천=글.사진 양승진 기자ysyang@asiatoday.co.kr

43도짜리 불소주를 내리고 있는 나장연 대표.

◇흥망성쇠를 담았다...백제의 '눈물주'

한산소곡주는 슬픈 역사를 지녀 ‘눈물주’ 라는 별칭이 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려 하자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과 흥수가 기벌포와 탄현을 막고 지키면 승산이 있다고 했지만 결국 백제는 당나라를 기벌포로 입성하게 했고, 신라군이 탄현을 넘게 놔뒀다. 백제의 계백 5000 결사대도 나당연합군엔 당할 수 없었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다. 

한산소곡주는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고 절치부심하던 왕족들이 마셨다는 설도 있고, 백제가 멸망한 후 그 한을 달래기 위해 소복을 입고 술을 빚었다고 해서 소(素)자가 붙여졌다는 설이 있는데 후자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실제로 술을 한 모금 입에 대 보면 달착지근하고 끈적하게 남는 데 이게 눈물이라는 얘기다. 물론 충분히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끈적거림이 있어서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옛날 과거길 선비가 한 잔 한 잔 시험도 포기하고 마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술이 달달해 한 번 앉아서 마시면 나중에는 일어나지 못할 만큼 취한다는 술이다.

한산소곡주를 빚고 있는 나장연 대표가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마지막으로 홍고추를 넣고 있다.

◇100일 동안 숙성시켜 사람 되게 하는 술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을 버텨 인간이 됐다는 말처럼 소곡주도 꼭 100일 동안 숙성해야 제 맛이 난다.

마시면 마실수록 그만큼 사람 되게 한다고 해서 ‘사람 만드는 술’로도 이름값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재료만 써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드니 신토불이로도 손색없다.

어찌 보면 미련할 만큼 우리 것을 고집하기도 한다.

막걸리에 밀가루를 섞지만 한산소곡주는 100% 맵쌀과 찹쌀로 빚는다. 

연한 미색으로 단맛이 돌면서 끈적거리고 들국화에서 나는 그윽한 향과 맛이 큰 특징이다. 

소곡주를 만드는 법은 의외로 쉽다. 하지만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 손맛을 기대할 수 없는 술이기도 하다. 

먼저 맵쌀을 찐 후 누룩과 쌀로 밑술을 담그고 3일 정도 충분히 발효시킨다. 발효가 되면 밑술에 고두밥(찹쌀)을 비벼 섞고, 여기에 들국화, 메주콩, 생강, 홍고추 등이 더해져 향을 돋운다. 

그리고는 순전히 100일 동안 항아리에서 숙성되면 소곡주로 이름이 붙여진다.

순전히 전통으로 빚기 때문에 화학첨가제나 당분 등을 일절 넣지 않는다.

소곡주는 백일주로 오래 보관할 수도 있고, 그 맛도 깊고 은은해 늘 알코올 도수 18%를 유지한다.

이렇게 빚은 술을 다시 증류하면 43% 불소주가 된다. 

나장연 대표가 손을 휘저어 소곡주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대를 이어 술 담그니 향기 나는 사람들 

소곡주는 1790년대 주류성 아래 마을인 호암리에서 맥을 이어오다 1970년대 고(故) 김영신 씨가 선조들로부터 전수 받은 비법이 충남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됐고, 며느리인 우희열(72) 여사가 스물일곱에 시집와 이어오면서 아들인 나장연(46) 대표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여자로만 이어지던 소곡주 담그는 법이 이번엔 남자로 이어지는 셈이다.

나 데표는 대학 전공이 전자공학인데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만사 제쳐두고 술 빚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그런 나 대표가 1990년대 중반 사고를 쳤다.

소곡주를 현대화시키자는 의미에서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젊은 층이 선호하는 소주 맛을 내기 위해 단맛을 걷어냈다. 

하지만 단맛을 걷어내니 독특한 향도 한꺼번에 사라져 급하게 없던 일로 돌린 적도 있다. 

1500년 전통을 하루아침에 바꾸려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그 때를 계기로 지금은 전통 맛을 내기 위해 더 적극적이다.

나 대표는 그 때 이후 미련하리만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난 우리 것을 재료로 사용하는 건 기본이고 아무리 바쁘고 윽박질러도 숙성 100일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 다른 술이 히트를 친다고 옆이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소곡주 하나로 승부하겠다는 고집이다.

나 대표는 “안 팔려도 좋습니다. 안 팔리면 우리 식구나 지인들이 나눠먹으면 그만이지 장사 하자고 다른 짓은 절대 안 할 겁니다”하고 웃었다.

각종 용기에 담긴 한산소곡주가 전시관 한 켠을 꽉 채우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명품주로 우뚝

한산 소곡주는 청혈해독 약리작용과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혈관운동 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화 작용이 있어 고혈압 방지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최근엔 청와대 만찬 등 굵직굵직한 주요 국제행사에 소개되면서 대한민국 전통주로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소곡주는 ‘한국전통식품 베스트5 선발대회’에서 우리 고유 전통주류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하는 성과에 이어 특허청으로부터 지리적표시단체표장 등록을 인정 받아 우수함을 입증하고 있다. .

특히 대형 유통매장 등을 중심으로 탄탄한 판매망을 구축해 현재 전국 500여개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00일 동안 익은 한산소곡주를 나장연 대표가 직접 시음하고 있다. 

세계시장에도 눈을 돌려 미국과 호주 수출에 이어 세계인의 입맛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나 대표는  자체 연구소를 설립해 실험실에서 최적의 한산 속곡주를 생산해내는 한편 생산, 품질, 마케팅 등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처리하고 있다.

서천 한산모시관 앞에 있는 한산소곡주(080-012-2000)는 생산시설, 판매점 등이 복합된 3층 규모 전시관에서 매 주말 체험행사를 진행해 일반인들에게 전통주빚기 강습도 하고 있다.

나 대표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한산소곡주의 전통을 잇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맥주 소주도 좋지만 우리 몸에 좋은 우리 전통주를 마셔야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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