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겨울왕국’ 박원빈 더빙감독, “‘렛잇고’가 ‘다잊어’ 된 까닭은…뉘앙스 때문”

‘겨울왕국’ 박원빈 더빙감독, “‘렛잇고’가 ‘다잊어’ 된 까닭은…뉘앙스 때문”

기사승인 2014. 03. 19. 15:1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박원빈_1002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아시아투데이 우남희 기자 =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데 큰 역할을 한 숨은 공로자가 있다. 바로 ‘겨울왕국’ 한국어 더빙판의 총 지휘를 맡은 애드원 프로덕션의 박원빈 감독이다.

‘만화영화 더빙의 대부’라 불리는 박 감독은 이번 ‘겨울왕국’의 자막, 노래 더빙을 감독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데 일조했다. 특히나 ‘겨울왕국’ 한국어 더빙판은 완성도가 높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 감독은 ‘겨울왕국’ 뿐만 아니라 지난 1990년부터 KBS 디즈니 만화동산을 비롯해 영화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 ‘뮬란’,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디즈니채널에서 방영되는 ‘얼티미트 스파이더맨’ ‘어벤져스’ 시리즈 등 수천 편을 더빙 연출했다.

“‘겨울왕국’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작품을 받았을 때 느낌이 있는데 그 필이 흥행과 맞아떨어지지는 않거든요. 또 미국에서 흥행한 작품이 한국에서 반드시 잘 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결국 좋은 작품은 인정받게 되는 것 같아요. 모든 애니메이션에는 주제와 깊은 뜻들이 있어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 보람을 느껴요. 저 또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인생을 배워가죠.”

박 감독은 ‘겨울왕국’ 성우 캐스팅에 많은 고심을 했다. 더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캐스팅. ‘겨울왕국’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연기는 기본이고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성우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박 감독은 뮤지컬 가수인 박혜나(엘사 역), 소연(엘사 역), 박지윤(안나 역) 등을 캐스팅했다.

“캐스팅이 가장 힘들었던 건 OST ‘렛 잇 고’(Let it go)를 불러야 하는 엘사 역이었어요. 처음에는 오디션을 보고 뮤지컬 가수 3명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본사에 보냈는데 아무도 합격이 안됐어요. 그래서 다시 알아보던 중에 높은 음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박혜나를 선정하게 됐죠. 안나의 경우는 ‘라푼젤’의 박지윤이 연기했어요. 더빙 작품에서 가장 각광을 받은 게 안나 역할의 박지윤이에요. 시사회 때 윤복희 씨가 ‘노래가 돋보인다’고 할 정도였죠. 캐스팅에 있어 난항이 많았는데 다들 열심히 해줬어요.”
겨울왕국
‘겨울왕국’ 포스터
박 감독은 작품의 캐스팅뿐만 아니라 자막 번역에도 직접 참여한다. 이번 OST인 ‘렛 잇 고’와 ‘워너 빌드 어 스노우 맨’(Wanna Build a Snowman) 등도 개사했다. 그가 번역한 대사와 노래는 디즈니 코리아를 통해 확정받는다. 박 감독은 번역하는데 있어 ‘언어순화’에 힘쓰고 있다.

“‘아윌 킬유’(I will kill you) 같은 대사는 ‘널 죽일 거다’고 번역해 내보낼 수 없어요. ‘널 없앨 거야’로 순화 해야 해요. 쉽게 지나가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야하죠. 말은 순화하지만 성우는 ‘죽일 거야’ 같은 느낌의 연기하게끔 해요. 좋은 작품이면 10년 이후에도 상영이 될 텐데 ‘과연 그 언어가 그때에도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말, 유행어 등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죠. 하지만 근래에는 조금 타협했어요.(웃음) 결국 사람들이 쓰는 언어고, 주관객층인 어린이들에게도 재미를 줘야하니까요.”

“노래 번역은 전체 내용 뜻만 갖고 가사를 다시 쓴 적도 있어요. 이번 ‘렛 잇 고’ 또한 여러 번 가사를 고쳤어요.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가사 ‘렛 잇 고’ 해석이었어요. 전체적인 스토리를 보면 엘사 공주가 부귀영화를 누리다 혼자 산으로 가면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표현돼, ‘가버려’보다는 ‘다 잊어’로 해석했죠.”

드라마 제작사 삼화프로덕션 원년멤버였던 박 감독은 1990년 디즈니와 연을 맺었다. 그가 1988년 설립한 애드원프로덕션이 디즈니 전용 스튜디오로 발탁된 것. 박 감독은 디즈니뿐만 아니라 20세기폭스 ‘아냐스타샤’, ‘리오’, 워너브라더스 ‘해리포터 시리즈’, ‘레고무비’, 드림웍스 ‘슈렉’, ‘크루즈 패밀리’ 등도 작업했다.

“디즈니를 만난 건 운명인 것 같아요. 당시 전통이 오래된 스튜디오가 많았지만 디즈니가 원한 건 크레이티브(Creative)였어요. 2년 정도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더빙 기술이 확 늘어났다고 할까요. KBS 디즈니 만화동산 연출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회사가 안정되니, 엔지니어를 미국에 보내서 교육도 시키고 좋은 기자재들도 수입하고, 그렇게 디즈니가 원하는 스튜디오로 발전했죠. 어떻게 보면 디즈니가 우리를 채찍질해서 가르친 거라 할 수 있어요.”

박 감독이 지난 20년 동안 만화영화, 비디오, 시리즈물 더빙을 맡아온 데에는 그의 노력이 대단했다. 박 감독은 평소에도 성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성우를 잘 알아야 그에 맞는 역할에 캐스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목소리’에 집중한다. 예로 박 감독은 우연히 전화통화를 하게 된 어린아이를 ‘라이온킹’ 주연으로 발탁했다.

“제가 조연출하던 시절에 서석주 감독이 있었어요. 모든 성우를 아우르는 거장이었어요. 그분과 일을 오래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이 구식이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만든 대본은 제가 항상 마무리를 했죠. 그런데 5년 전부터 제 자신에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식간에 해답을 못내는 것, 언어를 선택함에 있어 구식이 된다는 것 등이 가슴 아프더라요. 전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작품도 많이 보려고 노력해요. 아랫사람에게도 ‘나를 선생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같은 연출자로서 조언해달라’고 말하죠.”

박 감독은 마지막으로 성우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한국관객들은 더빙보다는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언어에 자부심을 가진 유럽은 더빙이 90%, 자막이 10%다. 태국은 특히 언어 보호, 편의를 위해 대부분의 영화가 더빙으로 개봉된다. 박 감독은 한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뒤에서 번역가, 기술진, 연출팀 등의 노고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이번 ‘겨울왕국’ 흥행으로 성우의 위상이 높아져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성우들을 많이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전 세계를 다니면서 믹싱을 하는데 외국 프로듀서들이 ‘훌륭한 연기자들을 어떻게 구했냐’고 해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우죠. 젊은 관객들은 자막을 보는데 그럴 경우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성우의 연기를 보고 화면에 집중한다면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원빈_1048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