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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장은 “지금도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은 일과가 끝나고 나서도 일병 이상은 컵라면을 사서 생활관에서 끓여 먹지만 신병은 생활관 구석에서 괴로운 부동자세로 있어야 했다”면서 “이등병 때 아파서 의무대에 가서 약을 타면 군기가 빠졌다는 선임병들의 ‘갈굼’(괴롭힘) 때문에 아프다는 소리도 못했다”고 우리 병영의 현주소를 전했다.
이러한 병영의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1989년 사단장 시절 전군 처음으로 정과 신뢰가 싹트는 ‘환상의 17사단’을 만들었던 최승우 예비역 육군 소장(육사21기·전 예산군수)은 ‘강군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한 이등병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구타없는 병영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최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과 국방부 보좌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지냈으며 전역 후 충남 예산군수를 두 차례 연임했다.
최 장군은 사단장으로 부임해 전군 최초로 시건 장치 없는 총기 관리, 실탄 지급, 생활관 신문·뉴스·책읽기 의무화 등으로 ‘교육 훈련은 철저하게, 내무생활은 편하게’라는 기치 아래 부대를 통솔했다.
‘상명하복’의 일선 병영에서도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규범화했다. 이등병도 병장에게 이런 점이 잘못됐고 고쳐야 한다는 얘기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선진 병영문화를 일궜다.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병영 혁신이었다.
최 장군은 최근 잇단 병영 악성사고에 대해 “건강한 사고를 가진 훈련병들도 훈련소에 들어오는 순간 사회와 전혀 다른 환경에 문화적 충격과 심리적인 위축을 느낀다”면서 “더구나 있어서는 안 될 강압과 명령, 무심코 던진 욕설을 경험할 때 심한 정신적 공황에 빠질 수 있으며 자대에 배치돼 이런 현상들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결국 불행한 결심을 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최 장군은 “그렇기 때문에 훈련소에서부터 ‘아, 이게 아닌데’ 하는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 줘서는 안 되고 자대에서도 병영생활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지휘관과 간부들이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지휘관(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단장으로부터 연대장·대대장·중대장, 그리고 소대장과 분대장에 이르는 지휘관(자)과 여러 간부가 병사들을 내 자식과 내 형제라는 생각으로 대할 때, 그리고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질 때 병영의 악성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장군은 “사랑과 신뢰는 부대 최고 지휘관에서부터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소통할 때 싹트고 자라날 수 있다”면서 “구체적으로는 철저한 신상 파악, 훈련병 휴가제, 어머니 같은 분대장제, 그리고 구타 근절 등의 노력을 강력히 실시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 장군은 “사단장 시절 저는 훈련소에서부터 입체적이고 꼼꼼한 신상 파악을 했다”면서 “정기적인 간담회와 면담·토론회를 통해 끊임없이 장병들과 접촉하고 소통했으며 사단장 2년 동안 밤을 새워 가며 새로 전입 온 8000여 명 장병의 신상을 샅샅이 파악했다”고 말했다.
최 장군은 “생활관에서도 책과 신문·뉴스 등을 자유롭게 보고 사회 흐름에 낙오되지 않는 깨어 있는 장병들이 되도록 했다”면서 “불필요한 암기 사항이나 선착순·얼차려·군무·사열 등도 과감히 없애고 허심탄회한 전역병과 부모님 간담회를 통해 불합리한 병영생활을 근절했다”고 말했다.
최 장군은 “사단장 시절 상하 간에 사랑과 정, 대화와 믿음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면서 “사랑의 매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장군은 “지휘관이 의지를 갖고 있으면 얼마든지 구타를 추방할 수 있다”면서 “구타라는 말이 앞으로 병영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최 장군은 “우리 장병들은 이제부터라도 무엇인가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반드시 가까운 동료나 간부들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했으면 한다”면서 “같이 노력하면 해결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최 장군은 “혼자서 고민만 해서는 안 된다”면서 “지휘관들도 사고가 일어난 사람은 그 이전에 반드시 사고 징후를 보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부대원 관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다시 말하지만 구타는 죄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