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강물처럼 흐르는 음악’..쿠바의 노래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141010010005504

글자크기

닫기

김문관 기자

승인 : 2014. 10. 10. 14:39

[김문관의 클래식산책](126)
20140928_185139
쿠바를 사랑한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했던 하나바의 암모스 문도스 호텔 옥상 카페에서 바라본 석양 입니다. / 사진=김문관 기자
아시아투데이 김문관 기자(쿠바) = 최근 남미의 작은 섬 쿠바에 다녀왔습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 그리고 품질 좋은 시가와 아름다운 카리브해로 잘 알려진 나라입니다.

정치적으로는 긴 독립투쟁 후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고도 자존하고 있는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물론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지만 말입니다.

각설하고 필자에게 쿠바는 대학시절 감상했던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벅찬 감동으로 기억돼 왔습니다.

실제 현지에서 본 쿠바노(쿠바인)들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노래와 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0여일간 잠자는 시간만 제하고 열심히 보고 들은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찬찬, 칸델라 등 수많은 아프로 쿠반(Afro-Cuban) 음악 명곡들

20140929_161818
하나의 관광상품이 돼 버린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노장 꿈빠이 세군도 관련 기념품을 파는 가게입니다. / 사진=김문관 기자
주름진 세월이 곳곳에 배어있는 쿠바의 오래된 수도 하바나(Havana)의 상징인 말레꼰(콘크리트로 벽을 친 긴 해변 방파제)을 따라 걸으면서 헤드폰을 통해 종일토록 들었던 쿠바의 여러 음악들은 새파란 하늘아래 강렬한 태양과 습하고 느긋한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려 잊지못할 감흥을 줬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과 시원한 바닷바람에 딱 걸맞는 음악이었다고 할까요.

또 가무를 너무나 사랑하는 쿠바노들은 식당이나 술집이나 어디서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으로 기억됐습니다. 성별과 연령도 아무 상관없더군요.

굳이 음악회장을 찾을 필요도 없이 일정한 규모의 카페와 식당에서는 온종일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현지에서는 이미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뮤지션들의 음악과 관련 기념품 등이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은 듯 했습니다.

이미 꼼빠이 세군도와 이브라힘 페레를 비롯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주역들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Chan Chan, Candela, El Carretero 등 수많은 명곡들은 시내 곳곳에서 연주되는 현재의 음악이었습니다.

쿠바를 대표하는 이들 음악은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적인 리듬 위에서 밀도 높은 연주와 스페인 풍의 매력적인 멜로디가 합쳐진 쏜(Son)이라는 장르입니다. 열정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음악이죠.

그러나 이 같은 음악적 특징에는 1492년 스페인에 의해 발견된 후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을 대거 이주시켰던 쿠바의 슬픈 역사가 깔려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쿠바음악의 또 다른 대표 장르인 트로바(Trova·음유시)의 애절한 가사들을 보면 한민족의 한(恨)과 같은 슬픈 정서가 가득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쿠바 음악은 20세기 중반 물밀듯 들어온 미국 자본의 영향으로 큰 변화를 맞았지만, 미국 재즈의 영향을 중심으로 더욱 세련되고 높은 음악성을 지니게 됐습니다.

‘Dos Gardenias(White flowers)’

그대에게 흰 꽃 두 송이를 바칩니다
내 삶에서 그대만을 숭배한다는 의미랍니다

이 하얀 꽃들을 잘 돌봐주세요
왜냐하면 그건 그대와 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에게 흰 꽃 두 송이를 바칩니다
입맞춤에 담긴 모든 온기를 담아서
그 꽃들처럼 우리는 입맞췄어요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없을 그런 키스를

꽃들은 그대 곁에 남아서 내가 하던 것처럼 말할 거에요
그러니까 그대는 그 꽃들이 ‘그대를 사랑해요’라고 말할때
그 말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저녁 꽃들이 시들어버린다면,
그대가 나를 배신하고 다른 이를 사랑한 사실을
그 꽃들이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El carretero(수레꾼)

기쁨에 찬 수레꾼이 지나갔다
그들은 감정이 서린 촌스럽지만 행복한 노래를 불렀다

짐을 풀러 나도 운반기로 간다
짐을 풀러 나도 운반기로 간다

슬픈 내 수고를 다하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 난 쉬지않고 일한다
결혼하기 위해 난 쉬지않고 일한다

그리고 만약 성공에 도달한다면,
그건 시골뜨기의 기쁨이 될 것이다

난 농부이자 수레꾼이다
들판에서 잘 살아간다

왜냐하면 들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이기 때문이다
산의 풀을 베자, 평원을 재배하자
보람의 열매를 거두자

20140930_142220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 등장했던 뮤지션 아마란토의 모습입니다. / 사진=김문관 기자
특히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영화에도 등장했던 밴드 멤버 중 한 명인 아마란토<왼쪽 사진>는 하바나의 관광지에 위치한 작은 펍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슬쩍 여쭤보니 나이가 이미 90을 바라보신다고 합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도 건반음악을 연주했는데 너무 시끄러운 곳이었었는지 사실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20141001_154854
하바나 말레꼰의 한적한 전경입니다. / 사진=김문관 기자

◇예술의 전당 아닙니다. 국립극장의 무대

20140930_190838
쿠바의 상징물 중 하나인 ‘혁명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극장 전경입니다. / 사진 = 김문관 기자
하루는 유명한 혁명가 체 게바라와 까밀로 시엔푸고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혁명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극장(Teatro de nacional)에 방문했습니다.

방문한 날에는 운 좋게도 무료공연이 열렸는데 24인조 남성 중창단이 클래식부터 쿠바의 명곡들까지 중후한 음성으로 들려줬습니다.

특히 앵콜로 들려준 쿠바의 아리랑 ‘Guantanamera(관타나모의 여인)’의 중후한 음성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타나메라는 쿠바 독립의 아버지이자 시인, 언론인, 혁명이론가, 교수, 정치 철학자였던 호세 마르띠의 시를 가사로 한 유명한 곡입니다. 사실상 쿠바의 국가와도 같은 민요랄까요.

서방에서는 행동하는 뮤지션으로 유명한 미국의 저항 포크가수 피트 시거의 활약으로 잘 알려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존경받는 뮤지션이었던 피트 시거는 지난 1월 타계했습니다.


Guantanamera(관타나메라)

관타나모의 여인이여, 시골 여인이여
나는 종려나무가 자라는 마을 출신의 진실한 사람이라오

내가 죽기전에 나는 내 영혼의 시를 쓰고 싶다네

나의 시는 연둣빛이지만
늘 정열에 불타는 진홍색이라네

나의 시는 상처입고 산에서 은신처를 찾는 새끼사슴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뿌려졌으면 좋겠네

나는 바다보다는
산속의 시냇물과 같이 하겠네

한편, 재미있는 사실은 국립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밤 10시에 시작해 새벽 3시에 마치는 춤을 추는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도 열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의 근엄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겠죠. 그만큼 춤을 사랑하는 쿠바노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재즈클럽 ‘LA ZORRA Y EL CUERVO’

사본 -20140928_225010
하나나 신시가지에 위치한 재즈클럽의 전경 / 사진=김문관 기자
또 하나 신시가지인 배다도 지역의 재즈클럽 ‘LA ZORRA Y EL CUERVO’를 소개합니다. 연주자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 3번이나 찾아가 새벽까지 즐겼던 곳입니다.

클럽 이름을 영어로 번역하면 ‘늑대와 새’라는 의미입니다.

현지인들이 즐기기에는 좀 비싼 가격(모히또와 다이키리 등 칵테일 2잔 포함 입장료 1만원 가량)이라고 생각됐으나, 무척 뛰어난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달치 프로그램이 프린트물로 배포되고 하룻밤(11시부터 새벽까지)을 하나의 팀이 책임지는 형식입니다.

기자는 연륜이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준 고령의 피아니스트 Yadasny Portillo가 이끄는 밴드와 퓨전재즈를 들려준 젊은 피아니스트 William Robelejo와 트리오의 연주회, 그리고 매력적인 여성보컬 Zule Guerra와 블루 드 하바나 밴드의 연주회를 즐겼습니다.

이 곳의 음악은 아프로 쿠반 재즈(쿠바와 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특유의 리듬과 재즈 즉흥연주의 조합, 재즈신에서는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의 여러 작업과 캐니 도헴의 블루노트 명반 ‘Afro-Cuban(아래 동영상)’이 유명합니다)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연주는 기존 드럼에 각종 타악기가 첨가된 아프로 쿠반 재즈 특유의 형식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개성 강한 타악과 마음이 편해지는 밝은 선율이 잘 어우러진 좋은 연주들을 오랜만에 마음 편히 즐겼습니다.

20140928_230725
쿠바 재즈 피아니스트 Yadasny Portillo(왼쪽 첫번째)가 이끄는 밴드의 연주장면입니다. 아프로 쿠반 재즈의 특징은 드럼만으로는 부족한 듯, 강렬하고 화려한 타악과 햇살같은 밝은 선율에 있습니다.
◇춤에 미친 사람들..한국인은 불쌍해?

그리고 유명한 쿠바의 살사입니다. 쿠바노들은 좀 심하게 얘기하면 춤에 ‘환장’했더군요.

하바나에서 가장 큰 대중적인 클럽인 음악의 집(Casa de la musica),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 ‘살사클럽 1830’ 등 유명한 클럽들을 찾았는데 광란의 밤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클럽 1830에서는 한국에서 미국과 쿠바로 춤 연수를 나온 안무가 이한승씨의 화려한 댄스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 씨에 따르면 남성의 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배려라고 합니다. 그리고 땀을 흘릴 수록 춤실력은 빨리는다고 합니다.

또 여행 중 잠시 만났던 여성분들은 하루에 2시간씩 살사를 배우러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조르디 사발의 성당 연주회

사본 -20141002_122040
10월 3일 하바나의 관광지인 성 샌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열린 조르디 사발의 공연포스터입니다. / 사진 = 김문관 기자
출국 직전에는 현지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하나바 국제 음악축제 중 고음악의 1인자 조르디 사발(스페인 출생)의 비올라 다 감바 독주를 오래된 성당에서 들을 기회도 가졌습니다.

악기를 둘러맨 어린 쿠바노들과 함께 눈을 총총 빛내며 섬세한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에 귀를 기울였던 밤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 ‘Les voix humaines(인간의 소리)’를 주제로한 본 공연은 앨범에 수록된 요한 세바스찬 바흐, 마렝 마레, 상뜨 꼴롬보 등 1600~1700년대 음악가들의 정갈한 독주 현악 선율로 꾸며졌습니다.

오래된 악기가 대가의 손을 통해 돌로 된 오래된 성당을 풍성하게 매웠죠.

특히 1600년경 익명의 작곡자가 남긴 ‘Lancashire pipes’<아래 동영상>의 연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입장 직전 줄을 서는 문화가 없어 매우 번잡했던 점, 연주중에도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동영상을 찍는 문화 등은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노장 연주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연주를 잘 마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여행 중 잠시 만난 한국인 동료들은 입장료조차 없이 입장이 가능했음을 부연해둡니다. 쿠바다운 에피소드였습니다.

한편, 대표적인 관광지 아르마스 광장의 중고 시장에서는 쿠바출신이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테크니션 트럼패터로 평가받는 아루트로 산도발의 재즈 엘피도 5000원 가량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난 10월 3~5일 대한민국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에서 열린 자라섬 재즈 패스티벌에도 왔었다고 하는데 저는 여행 중에 따로 만난 셈입니다.

20140928_115231
다양한 중고서적과 음반 등이 거래되는 하바나의 아르마스 광장입니다. / 사진 = 김문관 기자
◇“쿠바에는 음악이 강물처럼 흐른다”

끝으로 쿠바 음악은 불과 며칠간의 겉핧기로는 알 수 없는 ‘가지가 풍성해 축 늘어진 나무’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지들마다 촘촘히 박힌 음악과 춤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소박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유럽, 미국의 음악이 혼합된 쿠바 음악은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현지인에게 들어보니 최근 젊은 쿠바노들은 랩을 포함한 미국 대중음악은 물론 살사와 레게가 합쳐진 푸에토리고의 음악 ‘Regeton(레게톤)’을 즐겨 듣는다고 합니다.

쿠바음악을 세계에 알린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열풍도 따지고 보면 결국 유럽인을 통해 알려졌고, 과도한 마케팅 및 프로듀싱의 힘이 컸다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저에게 줬던 감동은 바로 그 순수함에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음악감독이자 빔 벤더스 감독의 예술 동지인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의 말대로 “쿠바에는 음악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답니다.

20141004_164325
기분을 느긋하게 해주는 카리브해(하바나 인근 산타마리아 해변)의 전경입니다. 수온이 적당해 몇 시간씩 파도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 사진 =김문관 기자
20140928_184526
쿠바음악에 나오는 주요한 악기들이 모두 담긴 길거리 그림입니다. / 사진=김문관 기자
20141004_165622
친절한 운전기사가 필자의 CD를 받아 차가 울리도록 크게 들려줬던 쿠바의 상징 올드카 택시입니다. 친절했던 기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사진 = 김문관 기자
20141003_151611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헤밍웨이의 흉상이 있는 하바나 인근 어촌마을 꼬히마르의 모습입니다. / 사진=김문관 기자

김문관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