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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변호사 업계 풍속도] <하> 희망은 살아있다

[달라진 변호사 업계 풍속도] <하> 희망은 살아있다

기사승인 2014. 11.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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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미개척 분야 한우물…법률시장 개방도 두렵지 않아
'전문' 변호사 목표…10년 후를 내다봐라
돈을 좇지 말고…일을 즐겨라
멀고도 먼 변호사 시험
2012년 1월 치러진 제1회 변호사 시험 당시 모습
지난 9월 국내에 등록한 변호사 수가 2006년 처음 1만명을 돌파한 이후 8년 만에 2만명을 넘어서며 변호사 업계는 ‘생존’ 경쟁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변호사라는 최고의 전문 자격을 가진 이들이지만, 이제는 취업난과 치열한 수임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법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변호사 개업이 예전처럼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빈곤한 변호사를 일컫는 ‘로이어 푸어(Lawyer poor)’,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 변호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특히 이 같은 위기는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새내기 변호사나 청년 변호사들에게 더욱 두드러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영업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직역에 대한 도전, 전문 분야 개척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통적인 송무 영역에서 벗어나 나름의 전문 분야를 개척해 승부를 걸고 있는 변호사를 만나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 속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들어봤다.


◇미개척 분야 ‘해상법’ 한우물…법률시장 개방도 두렵지 않아

정장명함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변호사
1996년 7월 7일 어획물 운반선 야요이호가 냉동생선 850톤을 싣고 항해하던 중 인도네시아 중부연안 라시섬 근처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어 모두들 안심하고 있었지만, 야요이호 선박 보험사인 현대해상을 대리하던 법무법인 세창은 의문을 가졌다.

선주가 사고 직전 보험금을 상당히 증액시킨 점, 침몰 당시 대피가 지나치게 순조롭게 진행된 점 등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창은 고의 침몰 가능성을 두고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고 결국 조작을 하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는 기관실 내부의 밸브 등이 열려 있던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당시 양호했던 기상상태, 좌초가 일어날만한 특별한 충격도 없었다는 점 등도 밝혀냈다.

결국 이 사건은 선주가 선원들과 짜고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주 측을 상대로 소송을 내 1·2·3심 모두 승소했다.

선박 보험사기는 사고 현장이 바다라는 특수성 때문에 증거 확보와 사기 증명이 어렵다.

야요이호 사건은 이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사기 혐의를 증명해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세창을 이끌고 있는 김현 대표 변호사(58)는 해상 분야 최고의 로펌으로 자리매김한 비결에 대해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는 데 매진하고 20년 넘도록 의뢰인들과 신뢰를 쌓아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인정받는 로펌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2년 설립된 세창은 20년이 넘도록 해상법·해상보험법 분야로 한우물을 팠다.

해상보험과 관련한 사건을 맡으면서 세창은 자연스럽게 일반 보험영역까지 넓어졌다.

세창은 한 해 동안 해상보험 등 보험 질의 관련 의견서만 1300건 이상을 작성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의견서를 작성하는 변호사는 데이터베이스로 남겨 다른 변호사들도 언제든지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이 같은 데이터베이스로 고객의 질의와 관련해 우수한 답변을 신속·정확하게 준비할 수 있어 고객 만족도가 높고 다른 로펌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조언했다.

세창은 13명의 국내 변호사와 1명의 미국 변호사가 근무하는 중소 로펌이지만, 포화된 법률시장에서 수임 경쟁을 걱정하기는커녕 2017년 이후의 법률시장 개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립 당시부터 해상법 분야에서 기반을 쌓은 외국계 로펌과 경쟁하면서 키운 맷집 덕분이다.

김 대표는 “해상법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는 미비한 상태라 미개척 분야인 해상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2017년 법조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 이 분야에 경쟁력을 갖춘 영국 로펌들이 몰려오겠지만, 세창은 단순히 법조시장을 지키는 것을 넘어 영국 로펌 등이 이끌고 있는 해상법 분야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전문’ 변호사 목표…10년 후를 내다봐라

법무법인 강호 대표 변호사
박찬훈(왼쪽)·조정욱 법무법인 강호 대표 변호사
불황에도 끄떡없는 나만의 특화 분야를 갖추고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당장 이룰 수는 없다.

전문 자격증을 따로 갖고 있다면 보다 자신만의 분야를 쉽게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생각만큼 쉽지도 않다.

그렇다면 전문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전문성을 자랑하는 법무법인 강호의 조정욱(43)·박찬훈(42) 대표 변호사는 전문 변호사라는 목표를 정했으면 10년 후를 내다보라고 조언한다.

박 대표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지금 당장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10년 후 내가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돼 있을지 생각해 보라”며 “다만, 막연히 어느 분야가 아니라 구체화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저작권 분야 중에서 출판 분야를 생각한다면 출판 중에서도 아동 도서인지, 성인 도서인지, 번역을 주로 담당하는 곳인지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강호를 이끄는 이들은 지재권 분야 최고 전문가로 이름나 있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조 대표는 “다른 분야에서는 모르지만 지재권 분야에서만큼은 어느 대형 로펌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는다”며 “전문성에 있어서는 일당백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도 하루아침에 전문성을 갖춘 것은 아니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대한 빠른 적응도 아니라고 한다. 단지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결과를 냈다고 말한다.

변호사가 되기 전 변리사로서 특허출원 업무를 담당했었던 박 대표는 변호사가 돼서도 지재권 업무를 계속 하겠다고 하자 당시 지인들로부터 지재권은 업무량은 많은데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표는 “돈 안 돼도 괜찮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재미있게 해 보고 싶었다”며 처음 도전 당시를 설명했다.

지재권 분야에서 나름의 인정을 받는 이들은 또 다른 10년 후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지재권 분야에서 특허 침해에 대한 보호의 영역뿐만 아니라 각종 지재권의 창출(출원)·보호(관리)·활용(상품화)까지 진행하는 CIPO(Chief Intellectual Property Officer·최고지식재산경영자)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변리사로서 특허출원 업무를 경험하고, 특허분쟁에서 특허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모두 경험한 변호사가 직접 특허 출원명세서를 작성하고 청구 범위를 잡는 일련의 과정이 결국 회사의 지재권 가치를 한 단계 상승시키고 나아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조 대표와 박 대표는 여전히 도전 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아직 젊다”며 “다만, 준비를 해야 기회도 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돈을 좇지 말고…일을 즐겨라

손동환님
손동환 법무법인 은율 대표 변호사·포항공대 엔지니어링대학원 겸임교수
기업자문 분야의 꽃이라 불리는 인수합병(M&A)과 증권 금융 분야의 블루오션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으로 법무법인 은율이 있다.

최근에는 M&A나 PF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건설과 해외 플랜트, FTA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은율에 속한 변호사들은 삼성엔지니어링, LG, 한화, 삼성물산, KT 등 실제 기업 실무 경험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객인 기업이 원하는 점이나 궁금증,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점에도 은율의 전문 분야인 M&A나 PF가 경기의 흐름을 타는 분야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을 것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은율의 손동환 대표 변호사(43·포항공대 엔지니어링대학원 겸임교수)는 “그럴 때일수록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한다”며 “경기가 어렵다고 시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산업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어서 그 분야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면 모르겠지만, 산업 자체가 존재하는 한 품질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품질을 올리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고객이 만족할 결과를 내는 것과 비용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손 대표는 후배 변호사들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있어서 신중히 따져봐야 할 것으로 ‘적성’과 ‘열정’을 꼽았다.

손 대표는 “적성과 열정이 모두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적성이 조금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열정만 있고 적성이 맞지 않으면 열정이 식는 순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전문 분야 개척을 고려할 때 시장성을 많이 이야기하는 데 분야를 개척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며 “시장성을 볼 때 돈하고 연결하니까 시장성이 있다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돈을 좇으면 신규 시장 개척은 당연히 더 어렵고 기존 시장에서도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며 “돈을 좇기보다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손 대표는 변호사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직을 본인이 위장하면 그때부터 변호사 개인은 물론 속한 로펌에도 반드시 위기가 온다”며 “돈 벌 욕심에 정직을 버리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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