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는 디자이너의 혼…행복 '주문'걸어 한땀 한땀
VIP숍 폐쇄적 시스템 개방…신비주의 벗고 세상과 소통
"천 골라 마름질하고 꿰매고, 결혼과 디자인은 일맥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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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의 로망인 ‘한가인 드레스’와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한 황재복<사진> 디자이너의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손님들이 차마 원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웨딩드레스 디자인에 녹여낸다. 그랬기에 ‘한국 최고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에는 거침없이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고 있다. 황재복의 세컨브랜드인 ‘세이황재복’을 론칭하는가 하면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의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 지난 10월에는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내고 작가로도 변신했다. 영문학 학사, 디자인 석사, 동양·예술철학 박사 과정을 공부해 쌓은 인문학적 지식과 디자인 감각이 이 같은 독특한 행보를 가능케 했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황재복하우스’에서 만난 황 디자이너는 쉰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독감에 걸려 몸 상태와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열정이 넘쳤다.
그녀는 자신이 만드는 웨딩드레스에 주문을 건다고 했다. 자신의 손을 거쳐 건네진 행복의 기운이 드레스를 입는 사람의 삶에 전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녀는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자신이 만드는 옷에 주술을 건다는 생각을 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가 나와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황 디자이너는 이렇게 디자이너의 혼(魂)이 담긴 옷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하나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황 디자이너는 또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나 역시 지난 25년간 패션쇼를 하면서 매번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검정색 셔츠와 팬츠를 입고 피날레를 장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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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직접 지은 ‘세이황재복’ 브랜드명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의 외동딸 ‘세희’라는 이름에서 따온 ‘세이’는 영어로 말하다(Say)라는 의미다. 거꾸로 읽으면 이세(2세)도 된다. “황재복이 이제는 세상과 소통하겠다”라는 바람이 들어있다. 실제로 소수에게만 공개되던 과거 폐쇄적이던 시스템도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예약한 방문객만 받거나 커튼으로 가려져있던 황재복 하우스 내부도 전부 오픈했다.
황 디자이너는 “요즘 트렌드는 대중화”라면서 “세이황재복을 통해 좋은 가격으로 큰 만족을 주고 싶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재능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바람에도 한계는 있었다. 세이황재복의 100만원대 렌트 웨딩드레스가 다른 중저가 브랜드에 비하면 고가였던 것. 그래서 그녀는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쓰게 됐다. 적은 돈으로 그녀의 생각과 가치를 다수와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 디자이너는 “그동안 소수를 위한 디자이너였다면 이제는 다수와 함께 정보를 나누는 디자이너로 거듭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는 디자이너가 쓰는 디자인 서적이 아닌, 웨딩드레스를 입을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전하는 지침서다. 특히 딸 세희에게 ‘내가 살면서 보니까 이런 방법도 있더라’고 말해 주는 일종의 조언서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전체적인 모양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천을 고르고 마름질하고 꿰매어 옷을 완성하듯 사람들에게 당신이 생각했던 결혼을 디자인하며 스스로가 원하는 행복을 찾으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디자이너를 넘어 교수, 작가 등 다방면의 분야에서 팔방미인으로 변신한 황재복 디자이너는 “여전히 내가 보여줄 것은 많고 힘이 넘친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녀는 자신의 책을 챙겨주며 사인을 하고 ‘행복하세요’라는 속삭임과 함께 입김을 훅~하고 불어넣었다. 웨딩드레스를 만들며 행복의 기운이 드레스를 입는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주문을 걸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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