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요르단에도 기술 수출, 사원들의 '100년 기업'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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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박성은 기자 = 김광석 참존 회장은 대한민국 화장품 업계의 ‘거목’(巨木)으로 통한다. 1966년 서울 중구 필동에 ‘피보약국’을 연 그는 피부전문약을 개발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84년 참존화장품을 창업한 이래 30년간 기초화장품의 제조·생산에 집중했다. 피보약국 시절까지 포함해 김 회장이 사람들의 피부 건강에 골몰하는 사이 강산(江山)이 5번이나 바뀐 셈이다.
김 회장은 올해 참존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30년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품질력이 뛰어난 참존의 명품 화장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특히 내년부터 국내 시장 선도와 함께 중국 외 복수 신흥국 시장에 과감한 접근과 공략은 물론 현지화·차별화 정책을 펼쳐 2020년까지 글로벌 매출 1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19일 서울 강남 대치동 참존본사에서 만난 김광석 회장은 “2020년까지 아름다움과 과학의 결정체인 새로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올해 참존 창립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30년 전을 회고해보면 제가 화장품(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입니다. 그 당시 피보약국을 하면서 20년간 피부병 치료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조제약을 팔아주겠다는 타 약국의 제안에 불법인지 모르고 약을 넘겼다가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려 수억원의 벌금을 물었습니다. 그 당시 아파트 한 채에 300만원이었으니 얼마나 엄청난 액수인지 짐작할 것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창업한 것이 참존화장품입니다. 단순히 내 이익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기여하기 위해 고민한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30년간 척박한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을 이끌고 오시면서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 얘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참존은 출범부터 화장품업계에서 굉장한 히트를 쳤습니다. 1984년도에 창업을 했는데 10년도 안돼 수억원의 벌금을 다 갚았을 정도로 사업이 잘되고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경 판단을 잘 못해 부도 일보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당시에 제품을 외상으로 많이 줬는데 어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때부터 외상이 아닌 현금만 받겠다며 정면돌파를 선언했습니다. 그때의 위기 극복이 오늘날의 참존을 있게 한 셈입니다. 이후 1997년부터 참존 컨트롤 크림으로 흑자가 나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 안타깝지만 수많은 중견 화장품 업체가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같은 환경에도 참존화장품이 세계인에게 늘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은 근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뿌리가 깊어야 거목이 됩니다. 이는 항상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바입니다.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장품 업체들이 제품 개발보다는 OEM 업체에 쓸 만큼의 제품만 주문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합니다. 공장이 없어도 충분히 회사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참존은 자체 공장과 연구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직접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회사가 우리나라에 손을 꼽을 정도입니다. 또한 30년간 기초화장품만 만드는 등 근본이 단단합니다. 이것이 참존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행보를 보면 유통채널 다각화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까.
“사실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습니다. 하나에 집중하면 부족한 것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세계 제일의 명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울 정도로 제품 효능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다만 마케팅과 판매 부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3S(샘플·세미나·서비스)전략입니다. 고객과의 대면과 소통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이 전략에 대해 초기에 사원들과 대리점주들의 불만이 큰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언제 그런 식으로 해서 제품을 알리겠냐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결국 우리가 살아남았습니다. 그 때 수많은 광고비를 투입하던 회사들이 오히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3S 전략에 따라 우리 제품의 샘플을 써본 소비자들이 품질에 반해 계속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도 번져나가 중국 사람들도 참존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결국 마케팅 전략이 먹혀 들어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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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화장품뿐 아니라 유통분야의 화두는 중국입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화장품이 수혜 종목으로 떠올랐습니다. 참존도 중국이 새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FTA는 우리에게 최고의 기회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20년 전 우리가 일제라면 무조건 알아줬는데 지금 중국 사람들이 갖는 한국 제품의 인식이 그랬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이라면 무조건 알아줍니다. 참존은 23년 전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중국에다가 공장을 내자는 수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참존은 한국제품이라는 점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중국 시장이 엄청 넓어져서 우리와 판매 계약을 하자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 그동안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성과를 냈는데 최근 들어서는 우즈베키스탄 기업과 양해각서(MOU)를 맺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요르단에서 합작기업을 설립하는 등 시장을 다변화하는 모습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쪽에서 우리 회사의 기술을 전수 받고 싶다고 먼저 제안해왔습니다. 그쪽에서 우리를 초청해 MOU를 맺었습니다. 요르단에서는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할 테니 기술만 이전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 나라에 사해가 있는데 사해수, 사해소금, 사해 머드에 엄청나게 좋은 성분이 많습니다. 요르단에서는 이 성분과 우리의 기술력을 접목해 화장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6개월 전 요르단에서 받아온 사해를 가지고 화장품을 만들었는데, 요르단 사람들이 화장품을 써보고 감탄하며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100년 영속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내 나이가 75세입니다. 언젠가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 줄 테지만 보통 거기서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후계자 양성이 정말 중요합니다. 먼저 후계자가 되는 사람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회사는 우리 사원들의 것이고 크게는 지역 사회,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앞으로는 성과급 제도를 도입할 생각입니다. 노력한 만큼 열매를 딸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세계적인 회사가 그렇게 발전했듯이 철저히 성과급을 시행해 더 큰 기업으로 도약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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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약력
-(주)참존그룹회장(현)
-소망교회장로(현)
-성균관대약학대학 학사
-성균관대명예약학 박사
-서울대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회장 18~20대역임
-성균관대학교총동창회 29~32대총동창회부회장연임(현)
-한중경제협회이사(현)
-(사)국가조찬기도회부회장(현)
◇수상력
-1976.12 새마을훈장협동장
-2001.12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2010.9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수상(한국경영인협회)
-2011.11 한중기업경영대상 수상(한중경상학회)
-2014.1 제13회 서울대학교 AMP 대상 수상(서울대AMP총동창회)
-2014.5 한국창업대상 제조업부문 수상(한국전문경영인학회)
◇저서
-‘성공은 나눌수록 커진다’(2013.4 개정증보판)
-간증집 “주가 쓰시겠다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