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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마케팅으로 대학로 문화공동체 만들죠”

“상생 마케팅으로 대학로 문화공동체 만들죠”

기사승인 2014. 11. 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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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훈제 삼형제엔터테인먼트 대표…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 기획
이훈제 대표1
#1. 2007년 어느 날.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던 이모 씨는 연출가인 둘째 동생이 쓴 각본을 보고 문득 결심했다. 운영하던 회사를 접고 창작연극으로 문화사업을 해보기로. 대한스포츠마케팅대표, 대한해동검도연맹이사를 거치며 쌓은 마케팅 10년 경력. 좋은 작품에 기획까지 더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2. 2008년 10월. 삼형제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고 문화 집합체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라며 의기투합했고, 공연제작사 삼형제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이모 씨는 기획과 마케팅을, 둘째 이훈국 씨는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셋째 동생 이훈진 씨는 배우로 동참했다. 그리고 이들은 창작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의 막을 올렸다.

#3. 2014년 11월. ‘죽여주는 이야기’는 초연 이후 만 5년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대학로를 대표하는 연극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 한 달 대관료 800만원으로 시작한 매우 작은 규모의 공연이었지만, 이젠 ‘줄 서서 보는 연극’으로 불릴 만큼 매회 공연 때마다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로 삼형제극장 앞은 항상 긴 줄이 늘어선다.

서울 대학로에 회사를 둔 이훈제(40·사진) 씨. 그가 삼형제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의 마케터 및 기획자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자살사이트 대표 안락사에게 찾아온 고객 마돈나와 바보 레옹이 자살을 의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다.

이 대표는 “‘죽여주는 이야기’는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라며 “각본은 있지만 관객 참여형이라 매회 공연할 때마다 새롭고 관객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성공비결이요? 타이밍과 공략층, 탄탄한 연출력 덕분이죠. 소비층이 집중된 10~20대 여성 관객을 주 타깃으로 삼아 그들이 공감하는 시대적 코드를 반영했어요. 또 잘생긴 청년 배우들이 애드리브를 통해 웃음을 주니, 이 모든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낸 거죠.”

이 대표는 이 대목에서 “제 방식대로 시도해 본 마케팅 전략이 잘 먹혔던 것도 한몫했다”고 소개했다. ‘이훈제 표’ 마케팅은 대학로 길거리에서 출발했다.

공연포스터 붙일 때마다 노점 상인에게 도움 줄 궁리

대학로에 들어서면 노점마다 ‘죽여주는 이야기’의 포스터가 빼곡하다. ‘도배돼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점포 앞뒤 뿐 아니라 점포 내 화장실, 메뉴판, 테이블에 티슈 케이스까지… 공연 포스터와 배너, 스티커가 구석구석 붙어있다.

처음 ‘죽여주는 이야기’ 기획과 홍보를 고민할 때였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내려 대학로에 들어선 이 대표의 눈에 노점들이 들어왔다. 젊은 시절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 문제, 중국음식 배달원·좌판 방향제 판매원·웨이터로 일했던 경험들이 오버랩 되면서 그 순간 노점과 공연을 연결해 다 같이 활성화될 수 있는 마케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탓하기 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던 자신의 지난날의 경험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길거리에서 그가 찾아낸 마케팅 콘셉트는 ‘상생’이었다. 이 대표는 상생을 외치며 대학로 노점 상인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노점 상인들과 주변 점포주들은 냉랭한 반응과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를 외면했다. 연극이나 홍보하려는 수단쯤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럴수록 그는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고생하는 상인들에게 힘내라는 응원메시지와 함께 여름에는 선풍기, 겨울에는 온열기 등을 선물하는가 하면, 국수가게 등 음식노점에는 메뉴판을 디자인·제작해줬다.

이훈제 대표5
옷가게에는 매출 향상을 위한 이벤트 아이템을 함께 고민하고 현수막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명절 때는 업주들에게 400개가 넘는 생활용품 선물세트를 일일이 챙겨 제공했다.

밥집, 술집, 옷집 등 대학로 상권의 모든 업주들과 연대를 이뤄 각 점포에 어떤 도움을 줄지를 고민했다.

“업주들에게 다른 공연 관계자들이 홍보 포스터를 붙여달라고 부탁할 때, 저는 포스터를 붙이는 만큼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어요. 대학로의 모든 이들이 상생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진정성 있는 마음과 노력은 통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공연을 통해 상생하는 문화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설득한 덕이다.

현재 그는 대학로 300여개 점포와 지역제휴를 맺고 실제로 거리를 대표하는 노점들과 함께 문화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젠 이 대표가 대학로 길목을 지나가면 업주들 누구나 반갑게 인사한다.

이 대표의 상생 마케팅은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최근 관악구 청소년들이 무료로 ‘죽여주는 이야기’ 연극을 볼 수 있도록 서울 관악경찰서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청소년 문화 선도 활동의 일환으로 청소년들이 폭력과 자살에 휘말리지 않도록 재능기부에 나선 것.

“요즘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문제와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잖아요. 청소년들이 재미있는 코미디 연극을 통해 폭력의 위험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대표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상생 마케팅을 행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공연계에 몸담아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는 그가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도 조언을 건넸다.

“생각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생각한 것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에 옮기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세요. 그런 다음, 이거다 싶으면 거침없이 즐기세요.”

나이 마흔. ‘죽는 날까지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그의 포부에서 미혹(迷惑)됨 없이 일관되게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불혹(不惑)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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