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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 주역’ 근촌 백관수 선생을 다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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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범 기자

승인 : 2015. 02. 02. 17:26

서울언론인클럽 '근촌 백관수 선생 생애와 업적 조명' 학술 심포지엄 개최
백관수
서울언론인클럽(회장 강승훈)은 올해 2·8독립선언 96주년을 맞아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근촌 백관수 선생 생애와 업적 조명’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여영무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박 실 전 한국기자협회장, 황인자 새누리당 의원,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안용환 명지대 연구교수 /사진=최태범 기자
“2000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위해 세계만국 앞에 독립을 성취하기를 선언하노라. 최후의 일인까지 열혈을 흘릴 것이오, 영원한 항전을 불사하겠다.”

이는 1919년 2월 8일 일본제국주의 심장부인 동경의 간다(神田) YMCA회관에서 동경유학생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근촌(芹村) 백관수 선생이 낭독한 독립선언서의 일부다.

젊은 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운동은 개인의 이해를 떠나 자유와 독립이라는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운동에 몸을 던진 중요한 사건으로 일본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운동은 20여일 후 3·1운동의 직접적인 기화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3·1운동은 널리 알려졌지만 2·8독립선언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조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당시 독립운동의 주역에 있었던 근촌 백관수 선생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2·8독립선언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8독립선언을 주도한 백관수 선생은 조선일보 편집인과 동아일보 사장을 지내며 민족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1940년 일제의 동아일보 강제폐간에 맞서다가 한 달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가 800여 개 지국 등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다”며 그를 구속했다.

광복 이후에는 1948년 제헌의회 의원에 당선된 뒤 법제사법위원장 및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6·25 전쟁 직후인 7월 서울 원남동 자택에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공산군에 의해 강제 납북돼 이듬해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언론인클럽은 올해 2·8독립선언 96주년을 맞아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근촌 백관수 선생 생애와 업적 조명’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은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이 좌장을 맡아 △1주제 정치인 근촌 백관수의 정치이념(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2주제 언론인 근촌 백관수의 항일정신(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3주제 근촌 백관수와 2·8독립선언 사상적 저류(안용환 명지대 연구교수) 등의 주제발표로 진행됐다.

신 전 석좌교수는 “백관수 선생은 일제 35년과 군정에서 6·25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5년의 기간에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가장 굴곡된 삶을 살다간 현대사의 비극적 상징”이라며 “적국수도에서 독립선언서의 기초에 참여하고 낭독한 기개의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백관수 선생이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가담한 것은 변명할 수 없는 허물이 됐다”며 “이 문제에 관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실의 과오를 시인·사과하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씻김굿을 통해 용서의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명예교수는 “백관수 선생은 항일의지가 강한 독립지사였다”며 “그는 충청의 한용운, 영남의 안희제와 함께 삼남(三南)을 대표하는 독립지사의 사표로 꼽히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백관수 선생의 사상적 저류와 관련해 △지행병진(知行竝進)의 인물 △다산의 정의론자 △철저한 반일사상·조선독립을 최고가치로 △자유민주사상에 근거를 둔 의회주의자 △철저한 반공주의자 △시장경제주의자·경제적 민족주의 운동가 등으로 평가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특별초청 된 황인자 새누리당 의원은 “2·8독립선언일은 반드시 국가기념일로 지정돼야 한다”며 “저는 26개 단체 4511명이 서명한 2·8독립선언일의 국가기념일 지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했다.

황 의원은 “2·8독립선언은 적국 수도이자 심장부인 동경 한복판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이었다는 점에서 세계 유일무이한 민족회복의 역사적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받지 못해 국민적 인식의 뒤안길에 머물러 있다.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강승훈 서울언론인클럽 회장, 이철승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회장,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김진배 전 의원, 강인섭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김두근 전 한국일보 편집장을 비롯해 언론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최태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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