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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캐릭터의 조합과 표현④ - 미묘한 여성 심리 그려낸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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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5. 02. 23. 07:32

[손수연의 오페라산책](68)
손수연
오페라에서 성부로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이 남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는 남성 파트보다 훨씬 민감하다. 오페라를 언뜻 듣기에는 여성 성부가 소프라노와 그보다 좀 더 굵은 저음역대를 노래하는 메조소프라노 두 성부만 존재하는 것 같으나 소프라노라도 역할에 따라 무수히 많은 음색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예쁘고 매력적이다. 또 거의 젊은 아가씨다. 이런 외양을 갖춘 아가씨가 노래하는 음성이 탁하거나 굵어서는 곤란한 일이었으므로 오페라 속에서 여주인공 배역은 대개 음성이 맑고 고운 소프라노 차지였다.

유럽의 중세나 오페라가 등장한 르네상스 후반을 거쳐 바로크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교회나 오페라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것은 교황에 의해 금지됐기 때문에 특정한 남성들이 여성 파트를 노래했다. 이것이 영화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카스트라토’다. 사춘기 이전 성기를 거세해서 2차 성징이 생기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남자 가수를 일컫는 카스트라토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맑고 높은 고음을 낼 수 있었다.

초기 오페라에서는 대부분 카스트라토가 여성 역할을 했고 그들의 음성과 독특한 이미지 덕분에 초인간적인 캐릭터도 많이 노래했다. 허나 남성이 여성 분장을 하고 나와 여성 역할을 노래하는 오페라가 사실적일 수 없었기에 이 시기 오페라는 이야기가 무시된 채 이들의 기교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무대가 많았다.

이후 고전시대로 들어오면서 여성도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됐는데, 아마도 근대에 접어들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이성 중시와 인권에 대한 개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는 카스트라토의 부자연스러움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여성이
여성 배역을 노래하는 오페라를 많이 작곡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같은 소프라노라 해도 음색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음색에 따라 역할과 인물의 성격이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프라노 음역은 대략 가볍다는 뜻의 레제로(leggiero)부터, 레제로보다 약간 성숙하고 서정적인 음색의 리리코(lirico), 또 그보다 좀 더 강하고 날카로운 개성을 가진 스핀토(spinto), 여기서 더 나아가 풍부한 성량으로 극적인 표현이 장기인 드라마티코(dramatico)로 나눌 수 있다. 더 첨부하자면 남다른 기교로 높은 고음역을 노래하는 콜로라투라(coloratura)가 있다.

작곡가들은 이렇게 다채로운 음색의 소프라노들을 역할에 따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최고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요즘 드라마의 등장인물도 상호연관성과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오페라의 배역도 나름대로 관계성이 있고 역할 특징을 잘 살려낼 수 있는 음역의 성악가를 배치해 여러 가지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현재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에서 여성이 노래하는 캐릭터는 모차르트 시대부터 확립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여성 성악가의 음색과 성부를 이용해 다양한 여성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가로의 결혼’에는 네 명의 여성과 한 명의 사춘기소년이 등장하는데 이 사춘기 소년도 여성이 노래하도록 돼 있다. 다섯 명의 여성 성악가 중에서 세 명은 소프라노고 두 명은 메조소프라노다. 밝고 영리한 하녀 수잔나는 가볍고 발랄한 소프라노 레제로가, 우아한 백작부인은 리릭 소프라노가 맡는다. 백작 정원사의 딸인 철부지 소녀 바르바리나도 소프라노다. 반면 나이 든 부인은 보다 굵고 묵직한 음색을 가진 메조소프라노의 몫이고 아직 완전한 성인남성이 되지 않은 소년도 주로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한다.

수잔나는 몸놀림이 잰 하녀답게 시종일관 가뿐하고 생기 넘치는 가창을 선보이고, 품위는 넘치지만 남편의 변심이 우울한 백작부인에게는 서정적이면서 애수가 넘치는 멜로디가 동반된다. 각기 다른 신분과 성정, 음색을 가진 두 여성의 조합이 만들어낸 최고의 하모니가 바로 그 유명한 ‘편지의 이중창’이다.


국립오페라단 돈 조반니
국립오페라단의 ‘돈 조반니’ 중 한 장면.
그의 또 다른 오페라인 ‘돈 조반니’도 매우 흥미롭다. 희대의 바람둥이인 돈 조반니와 얽히게 되는 세 명의 여성이 한꺼번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성악가의 음역을 작품 안에서 재치 있게 활용했다는 것은 먼저 남성 성부 편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와 대본작가 다 폰테는 각기 다른 계급에 속한 여성들의 성격과 특징, 가치관을 신랄하게 그려냈다.

첫 번째 여성인 돈나 안나는 뼈대 있는 귀족으로 행동거지와 가치관에서 귀족계급 여성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상당히 내면이 강하고 성숙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런 만큼 돈나 안나는 고상하면서 강한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리릭 중에서도 드라마틱한 스타일에 가까운 소프라노를 필요로 한다.

두 번째 여성인 돈나 엘비라는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 출신이라 실리에 밝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적극적인 여성으로 돈 조반니를 향한 강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여성 모델이기도 한 그녀는 돈 조반니를 증오하며 쫓아다닐 때는 그악스럽다가도 그를 향한 사랑을 내보일 때는 더없이 여성스러운 캐릭터다. 그녀는 돈나 안나와 같은 리릭소프라노지만 그보다는 가볍고 여성성이 두드러진 음색의 소프라노로 설정돼 있다.

마지막 체를리나는 농촌의 아가씨로 건강한 매력은 지녔으되 도덕성이나 지적수준은 결여된 인물로 묘사된다. 체를리나는 주로 밝은 소프라노 레제로가 맡는데 주어진 두 곡의 아리아가 모두 유쾌하며 단순해서 눈앞의 본능을 즉흥적으로 따르는 그녀의 캐릭터가 잘 드러난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속에서 미묘하게 변하는 여성의 성격과 마음을 섬세한 음악으로 그려냈다. 이는 처음부터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로 성부를 다르게 나눈 두 자매의 변덕스런 애정이야기를 사랑스럽게 그린 ‘코지 판 투테’에서도 마찬가지다. 계급과 신분을 구애받지 않고 여성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던 그는 천재 음악가였던 동시에 예리한 마음의 관찰자였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yonu44@naver.com)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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