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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극적 재구성] 43살 전 복싱세계챔피언 최용수 복귀 선언...“링의 주인은 복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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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희 기자

승인 : 2015. 02. 25. 17:27

전 복싱 세계 챔피언 ‘레전드’ 최용수 다시 링으로! 43살, 불혹 훌쩍 넘긴 나이에 링으로의 복귀 “복서의 귀환” /사진=픽사베이

“여보, 꼭 해야겠어요? 당신 나이도 있고 후배 양성하면 되잖아요. 당신은 이미 세계 챔피언도 했었잖아요”

 

“응, 여보 미안해. 나 해야겠어. 할거야. 내 심장은 아직도 권투 링 위에서 뜨겁게 끓거든.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마흔세 살도 아직 뭐든지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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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차의 요란한 소리만이 새벽을 깨우는 시각.
최 관장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동네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새벽을 가르는 그의 발과 이마에 맺히는 땀.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었다.


권투장에 도착한 최 관장은 줄넘기를 시작했다. 쉭쉭 바람을 가르는 줄넘기소리가 빨라질수록 최 관장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 가지 생각으로 고통을 견뎠다.



/사진=픽사베이
‘복싱 세계 챔피언 최성식’

최 관장은 18살에 권투를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었다. 우연히 시작한 권투가 그의 인생이 되었다. 3년 만에 그는 한국챔피언이 되었고 3개월이 지난 후 동양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어린 나이에 동양챔피언이 되었지만 삶은 바뀌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번다거나, 생활이 풍족해지지 않았다. 한국 복싱계는 이미 침체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 관장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정진했다.


2년 뒤 그는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아무도 그를 응원해주지 않는 외국의 링 위에서 홀로 싸웠다. 얼굴이 찢어지고 근육이 붙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10라운드 종이 울렸을 때, 그의 귓속에는 코치의 말과 주변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앞에 쓰러트려야하는 적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최 관장은 1995년 10월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아침나절 체력단련을 하고 오후 실전훈련. 언론의 반짝 관심은 있었지만 세계 챔피언 전과 후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최 관장은 주변과 세상의 관심보다 본인이 권투를 사랑했기 때문에, 권투에만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에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듯이 1998년 최 관장은 일본 선수에게 타이틀을 넘겨줘야했다. 이후 재기를 도전하기도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최 관장은 책임져야하는 것들이 늘어갔다. 아내가 생겼고 건강한 아들 녀석들이 태어났다. 마음의 열정만 가지고 하루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이 젊음을 투자해 직업을 구하고 경력을 쌓아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갈 때 최 관장은 권투만 했다. 그리고 권투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였다. 하지만 현실은 명예만 있을 뿐 먹고 사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한국에 이종격투기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 뛰는 선수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한국 선수층이 두껍지 않은 시절, 최 관장에게도 제의가 왔다. 최 관장은 정통 권투인으로서의 프라이드와 자존심을 갖고 있었고 마구잡이로 때리고 싸우는 이종격투기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는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었다.


그가 세계챔피언이었을 때보다 대중의 관심을 더 받았다. 국제 영화제 개막식에도 초대받고 어색한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하기도 했다.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최 관장의 공허한 마음은 카메라 불빛으로도 대중의 환호로도 채울 수 없었다. 그는 그간 저축한 돈으로 작은 권투도장을 차렸다. 망해 없어져 가는 권투 도장을 차린 그는 걱정보다는 밝은 미소로 가득했다.

 

일생을 링 위에서 살아온 그는 권투의 즐거움을 일반 대중과 나누려 노력했다. 전직 챔피언 선배들과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발언을 한 것도 정치권으로부터 권투계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받기 위한 그의 노력이었다. 선수로서가 아닌 지도자, 대표자로서 최 관장은 많은 일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권투를 알리고 다시금 권투의 부흥기가 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열정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지만 최 관장은 오직 권투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삶의 무게가 복싱과 그를 분리시켜놓은 적도 있었다. 복싱이 아닌 다른 운동으로 돈을 번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이 뛰는 것,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주는 건 복싱뿐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은 링 위에 섰을 때 비로소 폭발하듯 뛰었다.


상대를 향해 펀치를 날리고 피하며 몸을 부딪치고 링 밖에서 소리치는 코치의 모습.
대중들의 야유와 환호성이 귀에 익을 무렵,
어느 순간 밖의 모든 불이 꺼지고 링 위에만 조명이 켜진 채 나와 상대방만 남게 된다.
모든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사각의 링 위에 선 두 남자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서로를 노려본다.
그리고 서로의 마지막 주먹을 날린다.


최 관장에게 그것이 복싱이었고 삶이었다.
그 기억과 열정이 불혹의 나이인 그가 또 다른 도전을 결심하게 했다. 선수를 육성할 나이에 그는 다시 선수로서 링 위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굳이 왜 하느냐?’ 라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년은 직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들에게 아직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K-1선수로 링을 떠났는데 이번 경기에서 지게 되더라도 복서로서 은퇴하고 싶고, 침체된 한국 복싱계에 활력을 넣고 싶어서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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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복싱 세계 챔피언 최용수(43)가 링에 복귀한다. 

 

한국권투위윈회는 최용수가 이번 주 안에 선수등록을 할 것이라고 25일 밝혔다. 최용수가 권투 선수로 복귀하는 것은 12년 만이다.


18살의 늦은 나이에 권투를 시작한 최용수는 1993년 동양챔피언에 이어 1995년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후 K-1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잠시 선수활동을 했다.


최용수는 오는 8월 복귀전을 치를 계획이다.


그는 “중년은 직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아직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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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극적 재구성] 실제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 한 기사입니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구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투톡톡] 아시아투데이 모바일 버전에서는 '기사의 극적 재구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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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조규희 기자   

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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