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가맹점 모으면서 와인공부 시작
40대 초, 남들 다 늦었다 말했지만
10여년후 레스토랑 열고 와인전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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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배우기 시작한 그를 향해 직장 동료들의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오랫동안 은행에서 회계 팀장 일을 해오던 그가 카드 전략 팀장직을 맡아 ‘와인클럽카드’를 기획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와인클럽카드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와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카드를 론칭하고 강남의 와인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쳤지만, 와인을 전혀 모르던 그에게 사장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실패의 쓴맛을 본 그는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소믈리에가 돼 와인바를 돌며 가맹점주들을 설득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10권의 와인 책을 독파하고 수백만 원을 들여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해당 카드의 가맹점수와 회원수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뼛속까지 은행맨이었던 그는 ‘와인전문가’로 변신했다. 보나베띠 공덕역점을 운영하는 신규영 대표(55) 이야기다.
32년간 오직 뱅커로 살아온 그는 은행 지점장에서 퇴직한 이후 와인으로 인생의 제2막을 열었다. 신 대표는 “당시 내가 와인을 배우러 다닐 때 비웃던 사람들은 지금 상당수가 은퇴했지만 나는 여전히 활발하게 일을 하고 있다”며 “국민소득이 늘고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강의 요청뿐만 아니라 와인아카데미 신청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여 개의 와인동호회 회장과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와인을 전파하는 자리라면 ‘도와사’를 자처한다. 선박을 수로로 이끄는 도선사처럼, 와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에게 사람들은 ‘도와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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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베띠 서울 공덕점이 와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 장소가 됐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명예퇴직금과 종잣돈을 합쳐 퇴직 5개월 만에 보나베띠 공덕역점을 개업했다. 초반 2~3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직원 12명의 임금과 비싼 임대료에 만만찮은 식자재비까지 월 수천만 원의 고정비용을 감당하면서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수개월씩 월급을 주지 못한 적도 많았다. 차별화 없이는 승산이 없었다. 그러던 중 기업체나 고객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좌를 매장에서 열어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두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이와함께 콜키지 차지(개인이 보관하는 와인을 레스토랑에 들고 가 마실 때 내는 일정 비용)를 전혀 받지 않고, 슈피겔라우 독일 명품 와인잔을 사용한다. 또 와인셀러를 상시 개방하고 있다.”
-매달 진행되는 와인아카데미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라고 들었다. 무엇이 특별한가.
“와인에 푹 빠져 살다 보니 어느새 와인 전문가가 돼 있었다. 와인아카데미에서 와인에 대한 기초와 중급 내용 그리고 와인과 사랑에 대해 강의하는데 반응이 좋다. 보나베띠 공덕역점에 빔프로젝트를 구비한 강의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강의 시 제공되는 와인과 메뉴 실비만 받고 별도의 수강료는 없다. 10명 한정된 인원으로 3회 진행되는 강좌에는 변호사·언론인·회사원·영업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다. 레스토랑을 개업한 지 5년, 본격적으로 와인아카데미를 운영한 지 3년 반만에 총 51기 402명의 수료자가 배출됐다.
-와인아카데미, 동호회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
“사람이다. 혼자 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에서도 페이스북·카카오톡을 이용해 와인동호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어떤 문제가 하나 던져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아무래도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도와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도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 좋은 인간관계를 맺다보니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일처럼 챙기게 되는 장점이 있다. 조건 없이 도움을 주고 받는 인적 네트워크가 구성돼 있다면 어떤 사업을 하든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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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표는 마흔이 될 때까지 고졸 학력과 은행 회계팀장 이력이 전부였다. 당시 몸담았던 은행이 다른 은행과 합병되고 ‘생존’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이후 그는 자신을 위한 투자에 나섰다. 그는 “마흔이 되도록 달랑 두 줄의 이력밖에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면서 “그때의 충격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고백했다.
-늦은 나이에 공부가 쉽지 않았을 법도 하다.
“45세에 서울디지털대학교에 도전하고 1년 빨리 조기 졸업했다. 곧바로 한양대 경영학 석사 과정을 진행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6개월에 한 줄씩 이력이 쌓여가자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이력서를 한 줄씩 추가하며 지식도 쌓였지만, 다양한 분야의 역량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다. 여러 자격증은 물론 2012년엔 ‘초보자를 위한 와인의 이해’라는 책을 출간했고, 지난해엔 내 인생스토리가 담긴 ‘마흔의 역전’ 책이 나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도 하고, KBS1 시니어 토크쇼 황금연못에 게스트로도 참여하고 있다.”
-‘마흔의 역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00세시대를 앞두고 중장년층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데, 이들을 위해 해 줄 말이 있다면.
“인생 중반에 역전을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지금 업무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런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간접경험치를 최대한 쌓아야 한다. 10년 정도는 자신의 주특기를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 좋은 인맥을 쌓는 첫걸음은 시간을 투자해 자신의 실력을 갖춰 나가는 것, 그리고 기다리지 말고 먼저 좋은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인생 3막을 향해 달려나가야 할 것 같다. 향후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CEO들이 모인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평생교육자, 중소기업드림신문사, 평생교육을 중심으로 CEO를 한데 모을 예정이다. 현재까지 100명 정도 모였는데 3~5년 내 만명을 모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단체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