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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주의 미술 선구자’ 윤석남 “여성주의란 말, 가슴에 품고 작업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 선구자’ 윤석남 “여성주의란 말, 가슴에 품고 작업했다”

기사승인 2015. 04. 2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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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서 개인전...김만덕·허난설헌 등 역사속 여성 삶 재조명
윤석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윤석남 작가.
39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6명의 자식을 혼자 힘으로 키워낸 윤석남의 어머니.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깊은 존경심은 캔버스 위에 유화로 표현됐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1일 개막한 윤석남 개인전에서 전시 중인 ‘무제’는 작가가 40세에 미술을 시작한 뒤 가장 먼저 화폭에 담은 ‘어머니’의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는 그의 1982년 첫 개인전 출품작이다.


무제
윤석남의 1982년작 ‘무제’.
1986년작 ‘손이 열이라도’라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며 힘겹게 부양과 양육을 감당하던 당시 서민 어머니를 강한 필치의 선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상을 미화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더불어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못하고 40대가 되어서야 작업실을 갖고 비로소 작가가 된 윤석남. 그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모성, 여성성, 생태 등 다양한 주제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시각화해왔다.

윤석남은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정작 그는 80년대에 “여성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몰랐다”고 21일 기자들에게 털어놨다.

“제 작품을 보러 온 이들 가운데 여성문제를 학구적으로 탐구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페미니즘이란 말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림이라는 것이 감성만 가지고 할 게 아니라 분석도 하고 사회문제와 병행해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여성주의’란 말을 가슴에 품고 작업하게 됐어요.”


김만덕
윤석남의 설치작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작가는 허난설헌, 이매창, 김만덕 등 역사 속 여성에 관심이 많고 또한 이를 최근 작품으로 풀어냈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신작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는 높이 3m, 지름 2m의 거대한 핑크빛 심장 형상으로 설치됐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굶어 죽어가던 제주도민을 위한 구휼미를 제공했던 정조시대 거상 김만덕을 기리는 작품이다.

윤석남은 “김만덕 삶의 족적은 ‘눈물’”이라며 “슬퍼서 우는 눈물이 아니라 감동받아 우는 눈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김만덕이 한 일은 당시 남성들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이타적이고 감동을 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조선시대 기생 이매창과 작가 자신이 푸른 종을 흔들며 만나는 장면을 버려진 나무를 이용해 만든 설치작 ‘종소리’, 조선 중기 여류시인이었던 허난설헌과 연꽃을 소재로 만든 설치작 ‘허난설헌’ 등이 눈에 띈다.


허난설헌
윤석남의 ‘허난설헌’.
작가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 속 여성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 간 역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으면 굉장히 불평등한 느낌이 들어 속상하다. 그나마도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그나마 지금까지 남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살아간 삶을 생각하면 뼈가 저려 온다.” 이번 전시 도록에서 작가가 언급한 말이다.

이번 개인전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원로 작가를 집중 조명하는 ‘세마 그린’(SeMA Green)의 두 번째 전시다. 윤석남의 80년대 작품부터 올해 신작까지 총망라한다. 고전적 회고전 형식을 탈피하고 ‘어머니’ ‘자연’ ‘여성사’ ‘문학’이라는 4가지 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윤석남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제일 좋았다.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되나,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며 “내 삶을 찾아보고 싶은 욕망에 그림을 시작했는데 많은 이들이 좋아해주고 운이 좋았다. 작업실에 가서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전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손이열이라도
윤석남의 1986년작 ‘손이 열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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