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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지원 예산 턱없이 부족…지난해 범죄자 수사·수용 예산의 50분의 1

범죄피해자 지원 예산 턱없이 부족…지난해 범죄자 수사·수용 예산의 50분의 1

기사승인 2015. 07. 0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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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 예산 미미…부처 간 기금 배분 불균형 문제 해결도 시급
#지난해 7월 어느 날 새벽, 어려운 형편에도 두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던 김모씨(51·여)에게 다시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작은 방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신나가 담긴 패트병은 순식간에 온 집안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김씨는 작은 방에서 자고 있던 자매 중 둘째 딸(26)을 먼저 데리고 나왔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버린 불길에 다시 큰 딸(29)을 데리러 갈 수 없었다. 김씨는 그렇게 큰 딸을 보냈다.

큰 딸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김씨는 하루하루 괴로운 날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씨는 다시 강해져야만 했다. 그건 바로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전신의 70%에 중화상을 입고 매일 불길에 휩싸인 악몽을 꾸며 고통 받고 있는 둘째 딸 때문이었다. 일반 화재 피해자와 달리 방화 피해자들은 휘발성 물질로 화상을 입기 때문에 화상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김씨의 딸 역시 피부가 불에 타면서 근육과 장기가 손상돼 수축된 근육과 손상된 피부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피부 이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비용, 피부 이식을 위한 자기부담금만 2억원에 달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 살던 김씨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그 집마저 완전히 전소돼 딸이 퇴원해도 돌아갈 집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나에 타버린 장판, 가구 등은 모두 유해물질로 분류돼 화재 폐기물을 처리하는 특수 청소업체를 통해 현장을 정리하는 데만 1600만원이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방화범은 검거됐다. 범인은 재판을 거쳐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김씨에게 어떤 경제적 보상도 해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김씨가 기댈 수 있었던 건 정부에서 지급되는 범죄피해구조금이었다. 하지만 2억원이 필요한 작은 딸에게 법무부가 지급할 수 있는 화상 치료비는 고작 3000만원이 전부였다. 연평균 30만명의 강력범죄 피해자가 발생하지만 치료비 예산이 11억원에 불과해 1인당 지원 금액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관할 검찰청에서 큰 딸에 대한 유족구조금 1666만원, 작은 딸에 대한 장해구조금 1388만원, 법무부에서 치료비 3000만원과 장례비 300만원,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생계비 320만원 등 총 67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나마 김씨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도움으로 ‘KBS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을 통해 3000만원, 인체조직배양센터에서 10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20회가 넘는 수술 끝에 딸은 퇴원했지만 1억5000여만원의 수술비 중 아직 미납금이 남아있어 추가 치료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8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모두 594억원이 조성됐다.

범죄 피해자가 국가에 구조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 30조에서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피해자보호법에서는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에 구조금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 등을 정하고 있는데 과실이 아닌 고의의 생명이나 신체를 해치는 범죄로 사망, 혹은 장해나 중상해를 입었을 것을 요구하고 있어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

한편, 지난 2010년 범죄피해자 구조에 필요한 재원의 안정적인 마련을 위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이하 기금법)이 제정돼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법에서는 벌금 수납액과 구상금, 기부금 등으로 기금의 재원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는데 가장 주된 수입원은 역시 납입된 벌금액 중 일부를 전입하는 자금이다.

법 제정 당시 집행된 벌금의 4%에 그쳤던 벌금 전입비율은 2013년 5%, 2014년 6%로 조금씩 상향 조정됐다. 하지만 아직 범죄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구조를 위한 자금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2년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벌금 전입비율의 하한을 10%까지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복수의 개정안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6%로 최종 결정됐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조성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2011년 623억원, 2012년 632억원, 2013년 684억원, 2014년 594억원에 그쳤다. 게다가 지난해 조성된 594억원 중 구조금과 치료비, 긴급생계비 등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에 쓰인 돈은 겨우 105억원이다. 나머지는 각종 상담소와 보호시설 등의 운영을 위한 인건비 등에 지출됐다.

이처럼 최근 5년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평균액은 69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범죄자의 수사와 재판, 수용, 교화 등에 지출되는 국가 전체 예산은 대략 연평균 3조원으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무려 44배(2014년은 50배)에 달하는 현실이다.

때문에 범죄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벌금이라는 게 범죄자들이 피해자에게 치료비는 안 주더라도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내는 돈인데 피해자를 위해 쓰여야 되는 거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기금법 입안 당시 법무부가 관장하는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전제로 벌금 전입비율을 4%로 책정했지만, 이후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여성가족부가 맡고 있는 성범죄·가정폭력범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사업과 보건복지부가 맡고 있는 아동학대 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사업이 하나로 통합됐는데 예산은 증액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와 센터는 성범죄를 포함한 살인, 강도 등 5대 강력범죄 피해자들을 모두 지원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예산이 책정돼 사업 운영이 어렵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실제 지난해 조성된 594억원의 기금 중 여가부는 전체 기금의 52%가 넘는 311억원을 사용했다. 이중 242억원이 종합병원 등이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와 비영리법인, 단체 등이 운영하는 피해자 보호시설, 상담소 등 총 250개소의 운영비(피해자 의료·상담·심리치료, 시설 보호 등)에 투입됐다. 반면 210억원을 사용한 법무부는 전국 58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각 1734만원씩 총 10억원의 운영비와 전체 9억원의 사업비밖에 지원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올해 기금은 법무부 등의 노력으로 915억원까지 증액됐다. 여가부는 이 중 338억원의 예산을 책정받았다. 게다가 지난해 11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던 복지부에 올해 17배 이상 증가한 195억원이 책정되면서 법무부에는 251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41억원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때문에 하루빨리 법개정을 통해 벌금의 기금 전입비율을 높이고, 조성된 기금이 부처 간 형평에 맞게 배분될 수 있는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게 일선에서 피해자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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