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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광복 70년, ‘자유시참변’ 추모기행 떠나는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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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광복 70년, ‘자유시참변’ 추모기행 떠나는 4가지 이유?

최영재 기자 | 기사승인 2015. 07. 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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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창간 10주년 아시아투데이·코리아글로브 공동기획
‘日 아닌 韓·蘇 공산당에 전멸당한 청산리전쟁 3500 영웅이여’ (1)

본지와 코리아글로브는 7월 14일부터 7월 20일까지 러시아 자유시, 중국 밀산· 연길 화룡현 청산리 등 대한독립군단 호국영령의 발자취를 따라 추모기행을 떠난다. 왜 우리는 70주년 광복절을 앞둔 이 시점에 1921년 6월 28일에 일어난 ‘자유시 참변’이라는 잊혀진 역사를 끄집어 올리는가? 이유는 4가지다.

먼저 민족혼, 국가관, 역사의식 같은 국민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던 1921년 당시보다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경제나 기술력이 높다. 군대도 무기 장비나 병력수가 월등하다.

그러나 우리 국군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싸우던 독립군보다 정신력은 훨씬 떨어져 있다. 국방 최일선에 있는 군 최고지휘관들이 ‘방산 비리’를 저지르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청산리 전쟁 당시 머루 열매로 허기를 채우며 독립전쟁을 치르던 조상님들에게 면목이 안 서는 대목이다. 나라 전체의 힘은 경제력, 기술력, 무기장비나 병력 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강고한 국민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광복 70주년을 맞아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를 이룬 3500 대한독립군단 선열들이 소련 공산당과 한인 공산주의자에게 배신당하고 비참하게 전멸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복원하기 위해서다.

독립운동 시기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은 공산당 세력이다. 일치단결해서 싸워도 독립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에 먼 시베리아 땅에 가서도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을 등에 업고 동포이자 동료인 대한독립군단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학살했다. 이는 6?25 전쟁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만약 이 대한독립군단이 상해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편성되어 일제와 정규전을 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나라는 분단이 되지 않고 2차대전 당시 승전국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독립을 쟁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시참변을 일으킨 한인공산주의자들과 소련공산당은 상해 임시정부 영도 아래 있는 독립군을 원하지 않았다. 일제 시절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국제 코민테른 즉 소련 공산당의 명령을 조국의 독립보다 더 중요시했다. 이들의 지상목표는 조국의 광복이 아니라 계급투쟁과 계급해방이었던 것이다.

셋째 날조된 북한 공산집단의 항일무장투쟁사를 폭로하고, 잊혀진 대한독립군단 3500의 정통 투쟁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다.

1920년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세계 최강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세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올린 대한독립군단은 이듬해인 21년 자유시에서 전멸했다. 이후 해외의 무장항일투쟁은 사라졌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날조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다. 자유시 참변, 15년 뒤인 30년대 후반 만주지역 동북항일연군의 무장독립투쟁은 민간인 약탈 행위와 구별되지 않는 마적떼 같은 활동이었다. 그나마 이 활동도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진정한 독립투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분단체제가 성립된 이후 북한 공산주의 정권은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과장하고 마치 그가 항일무장투쟁의 대표자인양 왜곡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도 이를 수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넷째 한국 내부의 민중사관의 왜곡된 이분법 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현재 북한과 대한민국의 대다수 역사학계는 북한 정권은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빨치산의 후예가 건국했고,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제를 등에 업은 반민족 세력이 건국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자유시 참변’이야말로 과연 남과 북 중 누가 조국의 광복을 위해 피를 흘렸고, 진정한 광복인 통일대한민국을 주도해 나갈 세력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리가 70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94년 전 잊혀진 역사를 끄집어 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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