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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대한독립군단 선열, 유라시아철길서 춤추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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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대한독립군단 선열, 유라시아철길서 춤추게 하리라”

최영재 기자 | 기사승인 2015. 08.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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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창간10주년 아시아투데이·코리아글로브 공동기획
日 아닌 韓蘇 공산당에 전멸한 청산리 3500 영웅이여! (3)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로 가는 길
광복 70년 창간 10주년 아시아투데이·코리아글로브 공동기획
日 아닌 韓蘇 공산당에 전멸한 청산리 3500 영웅이여! (3)

아시아투데이 최영재 기자 = 7월 15일 오전 10시 중국 땅 국경도시 헤이허(黑河)시에서 중국 국경을 넘어 아무르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이 러시아 땅 ‘블라고베센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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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오전 10시 중국 땅 국경도시 헤이허(黑河)시에서 중국 국경을 넘어 아무르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이 러시아 땅 ‘블라고베센스크’다./사진=최영재 기자
3500 대한독립군단이 궤멸된 자유시(스보보드니)는 이곳 블라고베센스크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거리. 자유시 추모기행단은 전세차량으로 시베리아를 달렸다. 여름 시베리아는 울창한 타이가숲과 허브향이 진동하는 초원과 시냇물, 강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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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 대한독립군단이 궤멸된 자유시(스보보드니)는 블라고베센스크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거리. 차창 밖으로 시베리아 들판이 보인다. 여름 시베리아는 울창한 타이가숲과 허브향이 진동하는 초원과 강과 시냇물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사진=최영재 기자
시베리아 평원을 달리면서 하루빨리 통일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이 곳까지 여름휴가 오는 날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복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자유시에서 돌아가신 대한독립군단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잇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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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아무르주 시골 마을 스보보드니/사진=최영재 기자
오후 2시경 관광객은 거의 찾아오지 않는 러시아의 아무르주 시골 마을 스보보드니에 도착했다.
대한독립군단 주둔지를 찾아 헤매다 1921년 당시에 고려인들이 살았던 마을 ‘카레이스키 파숄록’을 찾았다. 이 마을은 이제 ‘소비에트스키 파숄록’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이 마을에 살던 고려인들은 1930년대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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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빠숄록(현재명 소비에트스키 빠숄록)의 최고령 할머니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 곳에 고려인들이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진=최영재 기자
현재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최고령 러시아 할머니가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고려인들이 이 곳에서 살았다고 증언했다.


이 마을의 뒷동산에 올랐다. 저 멀리 들판 끝에 아무르강의 지류인 제야강과 철교가 보였다. 이 철교 부근이 1921년 6월 대한독립군단이 주둔했던 곳이다.
추모기행단은 ‘소비에트스키 파숄록’을 떠나 물어물어 대한독립군단이 주둔했던 지역을 찾았다. 대한독립군단 주둔지는 자유시에서 유라시아횡단철도가 지나는 미하일로-체노코프스카야 역 배후지역이다. 이 역은 1921년 당시에는 수라제브카역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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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단 주둔지역이었던 곳에 세워져 있는 급수탑/사진=최영재 기자
철도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에 오르니 철도 건너편에 기둥같은 건축물이 보였다. 물을 담아두는 급수탑이라고 한다. 이 급수탑 뒤편이 대한독립군단의 주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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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단 주둔지였던 미하일로-체노코프스카야 역(1921년 당시에는 수라제브카역으로 불렸다)/사진=최영재 기자
기록에 따르면 당시 소비에트 인민혁명군 2군 29연대의 장갑차 부대와 기병 부대, 보병 부대 병력 1000여명과 이들의 꼭두각시 공산주의 한인병사 300명은 장갑차와 기관총과 대포를 앞세우고 대한독립군단을 공격했다. 당시 대한독립군단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비에트군이 같은 독립군 동지였던 공산주의계열 한인 병사들을 앞세우고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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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참변 현장을 유라시아횡단철도가 지나고 있다. 철도 건너편이 대한독립군단 주둔지/사진=최영재 기자
소비에트 군을 안내하고 앞장서서 독립군에게 총질을 한 병력이 같은 동포인 고려혁명군정의회 소속 공산주의 한인병사였다는 점은 통탄할 일이다.

최초 전투지역인 미하일로-체노코프스카야 역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달리니 아무르강의 지류인 제야강이 나왔다. 강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대한독립군단은 이곳 강변까지 밀려 싸우다가 대부분 사살되고 일부는 강을 헤엄쳐 도망치다 익사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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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군단이 장갑차를 앞세운 소비에트군에 토끼몰이처럼 몰리다 전멸한 제야강/사진=최영재 기자
이곳에서 청산리전쟁과 봉오동 전투를 치른 3500 영웅들이 토끼몰이처럼 밀리다 산화했다. 이 영웅들은 한반도 북부 산악지역과 만주의 초원에서 세계 최강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세계전쟁사에 빛나는 승리를 거둔 장본인이다. 한국의 모든 독립혁명가들을 열광하게 하고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영웅들이다. 이 아름다운 강이 만주벌판을 호호탕탕 누볐던 독립군들의 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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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기행단이 제야강변에 추모위령제 제물을 차렸다. /사진=최영재 기자
추모기행단은 준비해온 제물을 제야강변에 차렸다. 러시아 시골마을이라 조상님들의 입맛에 맞는 우리 음식이 없었다. 밥이 없어 러시아 흑빵을 올렸다. 부침개가 없어 피자를 올리고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술만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대한민국의 최고급 청주를 올렸다.

해질녘 강변에서 추모제를 올리며 오른쪽으로 제야강을 건너는 유라시아횡단철도 철교를 보았다. 저 무심한 유라시아횡단철도 철길 위로 3500 대한독립군단을 반드시 되살려 내겠다고 다짐했다. 진정한 광복인 통일을 이루어 대한독립군단 선열들이 철길 위에서 춤을 추게 하겠다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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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기행단이 제야강변에서 대한독립군단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광복인 통일을 이루겠다고 선열들에게 아뢰고 있다/사진=최영재기자
붉은 노을이 지는 제야강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지금 같은 평화시절에 우리는 이 강변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94년 전 이 강물이 대한독립군단의 피로 물들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고 목이 메어왔다. 대한독립군단 선조들이 그렇게 목놓아 외쳤던 조국의 광복, 그 광복 70년에 후손들이 앞으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1921년 6월 28일 자유시참변 시간대별 전후 정리

△1918년 11월 11일 - 독일의 항복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동했지만 붉은 군대와 싸우던 미국과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그 외의 연합군이 철수함

△일본 국회가 러시아에서 일본군을 철수하기로 결의

△1919년 3월 1일 - 3·1 운동 발생

△1920년 3월 - 니콜라옙스크 사건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만주에 있는 조선 항일 무력단체들을 토벌하기로 함
일본군 19사단은 북간도의 북로군정서군을 공격.

△1920년 6월 - 봉오동 전투 발생.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이 중국 지린성 허룽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과 싸워 크게 이김.

△1920년 10월 21일 - 서일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부대가 청산리 전쟁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침. 일본군 21사단은 남쪽의 서로군정서군을 공격.

△연이어 대패한 일본군은 만주에 있는 한국독립군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한인 민간인을 학살하고 독립군 토벌작전 개시.

△일본군의 대대적 토벌로 독립군은 전략상 노령(露領)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동중 밀산(密山)에서 독립군을 통합 재편성하여 새로운 ‘대한독립군단’을 탄생시킴. 병력은 약 3,500명 정도. 대한독립군단 총재는 북로군정서의 서일

△1920년 연말과 1921년 초 대한독립군단이 러시아 아무르주 자유시로 진입. 분산된 모든 독립군들을 모두 자유시로 불러모음.

△수많은 부대가 총집결한 대한독립군단 내부에 군권장악과 관련한 권력투쟁이 발생함. 그러나 이 권력투쟁 배후에는 독립군을 무장해제시키기로 일본과 거래를 한 레닌 정부의 음모가 숨어있었음. 레닌 정부는 독립군 내부의 공산주의 세력을 배후 조종하며 대한독립군단을 내부에서 와해시킴

△1921년 6월 27일 - 레닌 정부의 붉은 군대가 대한독립군단의 공산주의 그룹과 함께 대한독립군단을 공격함. 자유시 참변 발생. 3500명의 대규모 부대였던 대한독립군단은 모두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혀 수용소로 끌려감. 조선의 독립군 세력이 거의 모두 와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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