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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도 넘은 ‘롯데’ 과자 베끼기에 ‘제동’

법원, 도 넘은 ‘롯데’ 과자 베끼기에 ‘제동’

기사승인 2015. 08. 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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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빼빼로 일본 제품 디자인 침해 인정 …업계 "막무가내 베끼기, 명확한 기준 없어 기승"
롯데제과유사제품모방사례
제과업계의 베끼기 공방이 법정 소송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제재할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모방인지 참조인지 가려낼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다 법원의 판단도 사례마다 조금씩 달라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나의 아이템이 성공하면 비슷한 제품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다. 막대한 비용·인력을 투입한 원조 업체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상표권이나 특허권 분쟁 등 소송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원조 업체들이 모두 승소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의 특성상 이 같은 무임승차 논란은 제과업체에서 특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도를 넘어선 과자 베끼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이태수 부장판사)는 일본 제과업체 에자키글리코가 지난해 11월 롯데제과를 상대로 제기한 디자인권 침해금지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했다. 수십 년 간 계속돼 온 국내 제과업계의 막무가내식 베끼기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법원 “롯데 빼빼로, 일본 상품 베낀 것…제품 폐기해야”

앞서 글리코는 “롯데제과가 지난해 빼빼로데이(11월11일)를 겨냥해 한정판으로 내놓은 ‘빼빼로 프리미어’가 자사의 ‘바통도르’와 상자 디자인이 같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 같은 모방을 부정경쟁행위로 판단해 롯데제과의 빼빼로 생산과 판매·수출을 중단하게 하고 보관 중인 제품을 모두 폐기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디자인의 상하비율 등 일부 차이는 있지만 롯데와 글리코 제품의 전체적 분위기가 매우 흡사한 것으로 판단, “빼빼로 프리미어가 바통도르를 모방해 제작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포장뿐 아니라 막대과자에 초콜릿을 입힌 형태도 글리코의 막대과자 ‘포키’를 모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롯데 제품이 글리코 제품이 출시된 이후인 2014년 10월경 국내에 출시된 것으로 전체적인 심미감이 매우 유사한 점 △모두 초콜릿을 입힌 막대과자 제품으로서 제품 형태가 거의 동일한 점 △각 면의 배색이나 정면에 초콜릿 과자를 배치한 모양, 정면 맨 윗부분에 상호를 표시한 점 등 그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흡사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롯데제과와 글리코의 제품은 동일한 형태의 과자로 경쟁관계에 있다”며 “롯데제과가 제품을 제조·판매함으로써 글리코의 영업상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빼빼로 프리미어의 경우 한정판으로 출시된 제품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롯데제과가 입는 경제적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롯데제과가 상업적 마케팅으로 만들어 낸 ‘빼빼로데이’를 없애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형제간 분쟁 과정에서 국적 논란이 불거졌던 롯데그룹이 일본 유명 제과업체 제품을 베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룹 이미지는 더욱 실추됐고, 롯데그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재계 5위 ‘롯데’ 베끼기의 역사…법정 분쟁도 여러 번

롯데제과가 제품 모방으로 법적분쟁에 휘말린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1974년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한 지 5년 뒤 롯데제과는 첫 글자만 바꾼 ‘쵸코파이’를 출시했다.

오리온은 1997년 “롯데제과의 상표등록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2001년 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초코파이는 상표로서 인식되고 있다기 보다 초콜릿을 바른 과자류를 지칭하는 명칭”이라며 “해당 상품의 보통명칭이 돼 식품의 식별력을 상실했다”면서 롯데제과의 손을 들어줬다. 롯데제과는 이후 쵸코파이의 가격을 올리면서 제품명을 일반명사가 된 초코파이로 바꿨다.

몇 년 후 오리온이 중국 소비자층 공략을 위해 초코파이 포장지를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자 롯데제과는 이마저 모방해 유사한 디자인을 차용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롯데제과의 제품 모방과 관련된 법정 분쟁은 이어졌다. 롯데제과는 2008년 크라운제과의 ‘못말리는 신짱’과 유사한 ‘크레용 신짱’을 내놨고 결국 제품명을 둘러싼 소송전이 벌어졌다.

당시 크라운 제과는 서울중앙지법에 “크레용 신짱이 자사의 못말리는 신짱의 상표권을 도용했다”며 상표사용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패한 롯데제과는 결국 해당 제품명을 ‘크레용 울트라짱’으로 바꿔 출시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재계 5위의 롯데가 명성에 걸맞게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업계를 선도하는 책임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메로나가 인기를 끌자 롯데가 멜로니아로 상표 등록을 한 적도 있다”며 “이제까지 제과업체에서 심사 디자인이나 상표에 대해 소송보다는 좋게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표절과 다름없지만 상표 명칭의 경우 굉장히 저명하거나 유명한 상표가 아니면 사실상 제재하기가 힘들다”며 “도의적으로 불합리한 것은 사법적으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막무가내 베끼기, 명확한 기준 없어 기승”

전문가들은 유독 제과업계에서 베끼기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제품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롭스앤그레이(Ropes & Gray) 서울사무소 이한용 미국변호사는 “과자의 경우 마케팅이나 소비자의 인식·브랜드가 가치를 좌우하는 상품”이라며 “비기술적 요소가 더 중요한 제과업종은 특허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과자의 제조법상 구성 성분을 일률적으로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특허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허출원을 할 경우엔 원재료를 공개해야 하는데 도리어 경쟁업체에 제품의 레시피가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 변호사는 “기계나 전자제품은 부품 분석 등을 통해 특허 권리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좋다”며 “반면 제과기술은 과자만 보고는 타사가 자사 제품을 모방했는지 여부를 제대로 판별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법 규정의 특수성도 제과업체의 베끼기 관행을 부추기고 있다. 특허법 위반은 침해 입증이 쉽지 않은 데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하는 친고죄다. 결국 피해를 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간 제과 시장을 몇 군데 업체가 독점하면서 서로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쉬쉬하고 넘어갔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특허·상표·디자인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리코 입장에서 자사의 디자인을 거의 갖다 썼다는 느낌이 드니 권리 침해를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동종업계에 있다 보니 어지간해선 소송까지 안가고 사전에 조율절차를 거쳤을텐데 소송까지 갔다는 건 서로 감정이 많이 악화됐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허 위반 처벌은 강화됐지만 기소율은 낮아

특허법 위반에 대한 처벌 기준은 강화됐지만 기소율이 낮은 것도 문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민식 의원(새누리당)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2012년 적발된 특허법 위반사범 4113명 중 실제 기소된 경우는 5.0%인 206명에 불과하다.

증거 불충분 등에 따른 무혐의 처분(1348명)을 포함해 60.2%(2475명)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특허권 침해 여부는 특허무효심결이나 권리범위 확인심판이 확정돼야만 최종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한계 때문에 기소 중지율도 24.3%(998명)나 됐다.

박윤정 변리사는 “무턱대고 ‘모양이 예쁘니까 갖다 쓰자’고 하면 이런 소송에 엮일 수밖에 없다”며 “특허정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유사한 디자인 제품이 등록돼 있는지 사전에 검색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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