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6일 새벽 5시 미국 뉴욕, 맏딸이 보는 앞에서 한 명의 은퇴한 화가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 이름은 '천경자', 향년 91세. 20세기 한국 미술의 거장이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한 천경자 화백은 화려한 경력을 갖춘 인재였다.
문예상본상, 서울시문화상, 은관문화훈장 등의 상을 수여받았으며 <유성이 가는 곳>, <꽃과 색채와 바람> 등.. 여러 수필도 저술했다. 대한민국 현대 미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셈.
허나, 두 가지 비극적 사건으로 천화백은 인색에 큰 상처를 받았다.
첫째는 그 유명한 '미인도 위작 사건'이다. 자신이 그리지 않았음에도, 붙잡힌 진범이 자수했음에도 위작을 진품이라 여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어이없는 태도에 질려버린 천화백은 1991년 4월 7일, 절필을 선언했다.
두번째는 고흥군 전시관과의 갈등이다. 2007년 고흥군의 전시관에 작품 66점을 기증했으나 이 후 고흥측의 관리가 너무나도 부실하여 작품 훼손을 걱정해야하는 처지가 된 것. 설상 가상으로 2003년에 뇌출혈로 쓰러져 이에 대한 문제는 화백의 맏딸 이씨가 담당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고흥과의 갈등인지 천화백의 고향인 고흥읍 서문리에는 화백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거장의 고향이라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상황. 이러한 황량함에 고흥 주민들도 안타까워 하는 상황이다.
우여곡절의 인생을 겪은 천경자 화백,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거장의 예술혼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