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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회사 다녔습니다….”
내 이름은 3000번. 청록색 수의 왼쪽 가슴에 ‘미지정·2사 19실·3000번’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달고 26일 충청북도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됐다.
간단한 신분카드를 작성하고 양 엄지손가락에 도장을 찍었다. 화장과 매니큐어도 싹 다 지워야 했다. 이렇게 입소절차를 거친 수용자에게는 연보라색 베갯잇에 들어있는 밥그릇 세 개와 녹색 플라스틱 수저·젓가락, 메모리폼 베개, 방석, 담요가 주어진다.
◇ 수용자들의 꽃밭이 만들어지고…
수감된 2사 19실에 배급받은 짐을 풀어놓은 뒤 인성교육(미술치료)을 받으러 갔다. 15명 남짓한 수용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강사는 그 중 한명의 손을 이끌고 앞으로 불러 세웠다.
중년 여성 수용자는 가슴이 빨갛게 된 사람 그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화병이 날 거 같다. 자유롭지도 못하고 가족과 살 수 없고 가족이 보고 싶다”고 했다. 강사가 “자유가 있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라고 묻자 수용자는 캐나다에 있는 아들이 보고 싶다며 펑펑 울었다.
강사는 꽃그림이 그려진 색종이를 나눠주며 꽃잎 하나하나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5가지를 적으라고 했다. 그렇게 적은 색종이를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가족’ ‘자유’ ‘석방’ ‘남자친구’ 저마다 간절히 원하는 단어들이 쓰여 있었다. 각각의 색종이들이 모이니 어느새 꽃밭이 만들어졌다.
강사가 갑자기 몇 개의 색종이를 뜯어 손으로 구긴 뒤 다시 펴 꽃밭에 놓아줬다. “삶의 모퉁이를 돌다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이렇게 구겨진 흔적이 있지만 회복하면 반드시 이 꽃밭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이어 강사가 “수감번호가 아닌 엄마가 어렸을 때 불러줬던 내 이름을 잠들기 전 불러보세요”라고 하자 몇몇 수용자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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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심리검사 문항은 총 175개.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짜여진 심리검사는 질문에 대한 허위성 정도를 비롯해 위험성·공격성·범죄·망상 등 7개 항목을 평가해 수용자의 심리를 검사한다.
생활환경 조사서는 수용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체크하는 항목으로 짜여있다. 출생지와 학력, 석방 후 거주지, 성장과정은 화목·보통·불화 가운데 체크하게 돼 있다. 유년기 신체·언어적 폭력 여부와 부모 생존 여부도 질문 사항이다.
여성 수용자의 경우 남성과의 동거횟수, 이혼·이혼 사유 등도 기재하는 칸이 있었다. 수용생활 계획서는 입소 후 어떤 교육을 받고 싶은지, 교도소 생활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적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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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검사를 마치고 입방절차에 들어갔다. 16.64㎡ (5평) 남짓한 19실에 수감됐는데 보통 이정도 규모의 방에서 수용자 7~8명이 생활한다. 최신 고시텔을 떠올리게 하는 이 방은 출소나 가석방을 앞두고 있는 수용자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일명 ‘희망방’으로 불린다. 쇠창살이 달린 창문 옆엔 비상벨과 아크릴 거울이 달려있었다. 유리거울이 혹여 수용자들에게 나쁜 용도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자그마한 텔레비전과 장롱도 있었다. 교도소 관계자는 “주말엔 드라마나 영화도 틀어준다. 며칠 전 이승기·문채원이 나오는 영화를 틀어줬는데 수용자들이 TV에 딱 붙어있더라”고 귀띔했다. 모범수용자는 저녁시간에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다운받아 볼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방안에 화장실이 있는데 윗부분만 들여다보이게 만들어 놨다. 쇠문 아래 배식구가 있어서 이 통로를 통해 밥과 반찬을 넣어준다. 음식은 락앤락 통에 담아서 배식을 받은 뒤 수용자들이 각자 밥그릇에 나눠먹고, 과일은 플라스틱 케이크 칼을 이용해 잘라 먹는다. 화장실 옆에 개수대가 있는데 순번을 정해 여기서 설거지를 한다.
‘알림판’에 붙어있는 구매물품 코드표가 눈에 띄었다. ‘035우유-440원, 123항소이유서 25매-340원’ 등등…구매용품 앞에 숫자가 적혀 있는데 필요한 용품은 OMR카드에 기재해 제출하면 물품 오는 날 방 사람들이 주문한 물건이 한 번에 담겨서 들어온다.
교도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교도소에 커피도 없었고 과자도 두 종류뿐이었는데 요즘엔 다양해졌다”며 “수용 생활하는 입장에선 이것도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상당히 많아졌다고 느낀다”고 했다.
폐방 준비를 위해 창문을 향한 채 3명이 나란히 앉았다. 방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배급받은 방석을 깔고 앉아야 했다. 난방은 오후에 한 시간 정도 가동된다.
허리가 너무 아파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교도관은 “원칙적으로 누워있어도 안 되고 탈의도 안 된다”고 제지했다. 이불은 아침시간에만 펼 수 있다. 교도소에선 오전 6시 기상, 오후 8시 취침 시간인데 그때부턴 누워있을 수 있다. 텔레비전은 오후 8시50분까지 시청할 수 있게 해준다.
오후 5시가 되자 “수용자 여러분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폐방 알림이 나왔다. “차렷 경례, 하나 둘 셋 번호 끝” 폐방 점호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니 ‘희망방에 오니까 정말 희망이 생겨’ 라고 적힌 이름 모를 수용자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출소를 위해 다시 입소했던 ‘입·출소대기실’로 이동했다. “자, 3000번 형기종료로 출소되셨습니다. 밖에서 잘 생활하셔서 앞으로 여기서 뵙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교도관의 말이 끝났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