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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삼통치킨을 지켜주세요”…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현실은?

“홍대 삼통치킨을 지켜주세요”…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현실은?

기사승인 2015. 11. 1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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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인 횡포에 길가 내몰린 임차상인들…"이길 때까지 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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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홍대 인근 ‘삼통치킨’ 사장 이순애씨(앞줄 중앙)를 비롯한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 모임) 회원들이 임대인의 권리금 약탈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사진=맘상모 페이스북 페이지
“아무리 힘들어도, 이길 때까지 싸워서 세상을 바꿀 겁니다.”

매일 저녁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삼통치킨’ 건물 앞에서 상가 건물 주인들의 횡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다. 이곳에서 8년째 장사를 해 오고 있는 삼통치킨 사장 이순애씨(62)를 필두로 한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 회원들이다.

앞서 맘상모는 올해 5월, 기나긴 투쟁 끝에 상가 건물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를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개정을 이뤄냈다. 상인이 일군 영업가치의 일부인 권리금을 임대인이 빼앗을 수 없도록 한 것. 이전까지 임대인이 권리금을 빌미로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내밀어도 임차인은 속수무책이었다. 일부 임대인들은 이처럼 권리금 차액을 노리는 것을 ‘재테크’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가임대차법이 개정된 후에도 일부 임차상인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정법이 시행되기 전, 단 며칠 차이로 계약이 종료된 경우에는 새 법에서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함에도 길거리로 내쫓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이씨 역시 마찬가지다. 이씨는 2007년, 홍대 상권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무렵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인근에 삼통치킨을 개업했다. 근저당이 많이 잡힌 건물이라 입주를 꺼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입지조건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가게를 열었다.

이씨의 가게는 2년여 만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씨가 피땀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임대인 하모씨가 같은 건물에 있던 다른 임차인들을 차례로 내보내고 직접 장사를 하기 시작했지만, 이씨는 괜찮을 줄 알았다. “삼통치킨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던 하씨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7개월 쯤 남아 있었던 2013년 12월, 이씨는 하씨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게 됐다. 하씨가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495만원이었던 임대료를 각각 5억5000만원과 65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 이 과정에서 하씨는 “건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며 이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보증금 2억 5000만원을 회수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데다 당장 3억원이란 큰 돈을 구할 여유도 없었던 이씨는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월세를 950만원으로 올려드리면 안 되겠냐”고 하씨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씨는 하릴없이 “7개월 후에 다시 얘기하자”며 남은 기간 동안 3억원을 마련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15일, 이씨는 하씨로부터 “1억5000만원을 줄 테니 열흘 내에 가게를 정리해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7년간 운영한 가게를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이씨는 “조금만 더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하씨는 “열흘 내에 나가지 않으면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막무가내였다.

“이 자리에서 치킨집을 하면 돈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 저를 내보내고 (하씨가) 직접 프렌차이즈 치킨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어요. 당시 제게 ‘삼통치킨은 권리금만 해도 5억은 된다’고 했던 분이, ‘1억5000만원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통보를 받고 가게로 돌아와 테이블을 닦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라고요. 그 테이블과 집기 하나하나에 다 정이 들었는데,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열흘 만에 나가라니요.”

실제로 하씨는 임차인들을 내보낸 후 건물 1층과 2층에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 3층에 호프집을 각각 차려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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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상모 회원들은 매일 저녁 삼통치킨 건물 앞에서 임대인 하씨의 만행을 고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정지희 기자
정확히 열흘 뒤, 하씨로부터 내용증명을 받고 눈앞이 캄캄해진 이씨는 ‘홍상회’(홍대 걷고싶은 거리 상인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4월 6일 홍상회 측은 이씨에게 “하씨가 4월 15일까지 가게를 비우면 1억5000만원을 주겠다고 하니 그 전에 가게를 비워라”고 통보했다. 홍상회는 하씨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씨는 이 무렵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지닌 상인들이 모인 맘상모를 처음으로 알게 됐고, 그들과 힘을 합쳐 하씨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이후 하씨는 “권리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며 이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걸었고, 두 사람의 갈등은 법정싸움으로 번졌다. 1년 2개월간의 소송 끝에 이씨는 패소했고, 올해 10월 20일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강제집행 정지신청조차 기각 당했다. 상가임대차법이 개정되기 전에 시작된 소송이기 때문에, 개정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 상가임대차법은 문제가 너무 많아요. 가장 큰 게 저처럼 불합리한 횡포를 당했어도, 개정법이 시행된 기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에요. 지금 맘상모에 있는 분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아요. 삼통치킨 건물에서 다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하씨의 아들이, 저희가 시위를 하는 걸 보면 비웃으며 사진을 찍어요. 억장이 무너지는 노릇이죠.”

결국 지난 11월 6일 오전 7시 30분께, 하씨가 불법 용역들을 대동해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자행했다. 법원에서 보낸 용역비용은 공탁금, 즉 임차인의 보증금에서 제하지만 사적으로 고용한 불법 용역비용은 임대인이 사비로 내야 한다. 이날 동원된 20여명의 장애인 용역들은 “하씨로부터 아직 돈을 못 받았다”며 정오께까지 삼통치킨 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맘상모 회원, 노동당 당원, 청년좌파, 빈곤철폐연대 등의 도움으로 1차 강제집행은 막아냈지만 이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이씨를 비롯한 맘상모 측은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마포을)에게 “관내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강제집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맘상모 회원들과 함께 정 의원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갔던 맘상모 예술국장이자 ‘신가람밴드’의 리더 신가람씨(34)는 “그렇게까지 문전박대를 당한 건 처음이었다. 보좌관은 건물 입구에서부터 맘상모 회원들을 막아 세웠고, 결국 정 의원은 만나 보지도 못하고 인턴 보좌관에게만 억울한 상황을 토로하고 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씨는 “‘상가권리금약탈방지법은 새정치민주연합이 19대 국회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아니냐. 당신들이 바꾼 현행법에 반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모른 척 하고 있냐’고 물었다”며 “하씨가 정 의원의 큰 정치 후원자라고 하더라. 더러운 후원금을 받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지만, 인턴 보좌관이 약속대로 우리들의 얘기를 정 의원에게 확실히 전달했을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2012년 12월 홍대 인근에서 ‘이상하게 예쁜 술집 뿅뿅뿅’을 개업한 신씨는, ‘가게 인테리어가 해괴망측해서 민원이 들어온다’ ‘가게 사장이 불성실하다’ 등 트집을 잡으며 신씨를 내보내려 하고 계약 기간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월세를 66%나 인상하려 했던 건물주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경험이 있다.

2년여의 싸움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였지만, 이미 많은 돈을 잃고 마음의 상처까지 얻은 신씨는 지난달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손을 털었다. 이씨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 싸우고 있는 신씨는 “삼통치킨이 지면 다른 건물주들도 ‘시위를 하든 뭘 하든, 그냥 쫓아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씨와 이씨의 싸움은 이미 개개인의 싸움이 아닌, 홍대 건물주 대표와 세입자 대표의 싸움이 됐다. 이씨의 바람은 크지 않다. 약간의 합의금이라도 받아 다른 곳에서 새롭게 치킨집을 하며 일흔을 목전에 둔 남편과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한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바꾸려 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아요. 맘상모가 나선 덕에 조금은, 정말 아주 조금은 상인들이 맘 편하게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됐지만, 여전히 할 일이 많아요. 물론 누군가는 저희들이 하는 일이야말로 오히려 법에 저촉된다고 비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길 건너편에서 큰 위험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신호등이 빨간불이라 해서 그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그런 심정으로 저희는 싸우고 있어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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