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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아이스크림의 첫 프로젝트는 지난 4월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에서 펼쳐졌다. 해발 5416m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설산에 360kg짜리 피아노를 들고 올라가 연주를 하기로 한 것.
‘그게 정말로 가능하겠느냐’는 주변의 우려에도 진 감독은 피아노&아이스크림의 팀원들을 이끌고 히말라야로 향했고, 현지 주민과 가이드, 관광객 등 100여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마쳤다.
그들이 어째서 그 높은 곳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기획하게 됐는지, 앞으로는 또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계획인지, 진 감독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하 8도의 고산에서 피아노 연주…“어디서든 평화와 즐거움을 나누고자 했다”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난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진정한 의미의 나눔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진 감독은 지난 4월 대지진 소식을 접한 후 네팔행을 결심했다.
한국 전쟁 이후 네팔 국민들이 영국군 소속으로 남북 분단선에서 평화 유지 활동을 해줬던 것에 대한 보은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우리가 힘들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이번엔 우리가 돕자는 취지도 있었고, 모두 함께 모여 평화와 즐거움을 나누자는 게 대의명분이었어요. 그리고 기왕이면 고정관념을 깨는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었죠. 클래식 주자들은 완벽한 무대가 아니면 연주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곳이 다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히말라야 산맥에 피아노를 가지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피아노는 폴 매카트니의 곡 ‘에보니&아이보리’에서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악기로 해석된다. 때문에 진 감독은 손쉽게 들고 갈 수 있는 수많은 악기들을 제쳐두고 굳이 피아노를 택했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스크림을 떠올려 ‘피아노&아이스크림’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공연을 구상하고 준비하면서 정말 기적처럼 좋은 팀원들을 만났어요. 지난해 에베레스트에서 트랙킹을 하던 중에 만난 최수진 PD는 제 계획을 듣더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돈 한 푼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도 함께 해줬어요. 피아노에 대해 전혀 모르던 친구가 분해·조립·조율 방법까지 전부 배워왔더라고요. 로체원정대의 홍성택 대장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고, 피아니스트 김가람 씨도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도 하겠다’며 큰 힘을 실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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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당초 진 감독이 한 명의 남자 피아니스트를 섭외했다가 ‘남녀 한 명씩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제기돼 추가로 김가람씨를 섭외하자, 남자 피아니스트는 ‘혼자 가는 게 아니면 안 하겠다’며 하차 의사를 밝혔다.
미리 섭외해 둔 카메라 팀도 사정상 함께 할 수 없게 돼, 급히 새로운 카메라 팀을 구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진 감독과 최 PD는 고산에 오른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다른 팀원들에게는 히말라야 등반 자체가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진 감독은 프로젝트 시행에 앞서 히말라야를 답사하며 초보자들도 의지만 있다면 걸을 수 있는 코스,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 등을 찾았다.
“그나마 쉬운 길이라고는 해도 물론 산사태 구간이나 험난한 구간이 있긴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운 좋게 그 흔한 낙석 한 번 없이 등반을 했지만, 중간에 팀원들에게 고산증 쇼크가 몇 번 와서 위기를 겪긴 했어요. ‘꼭 함께 해내겠다’는 다짐과 희망이 없었다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었을 거예요.”
안나푸르나는 1년 중 두 달을 제외하고는 늘 2~3미터 두께의 눈이 쌓이는 곳이나, 다행히 피아노&아이스크림이 연주한 날 피아노를 둔 자리에는 전혀 눈이 쌓이지 않았다.
분해돼 있던 피아노를 조립할 때는 과연 정상적으로 소리가 날 것인지, 모두가 마음을 졸였다. 조율까지 마치고 김가람씨가 연주를 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몇 십억을 들인 공연장에서 연주를 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굉장한 화음’이었다는 것이 진 감독의 설명이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 졸이며 준비한 결과물이 성공적으로 탄생됐을 때의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요. 저를 비롯한 멤버들, 가이드들과 포터(운송수단이 극도로 제한되는 지역에서 짐을 옮겨주는 사람)들, 현지 주민들 모두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죠. 그날 밤에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데도, 눈물샘이 열린 것처럼 계속 눈물을 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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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히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진 감독에게는 더 드라마틱한 속사정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사업을 시작해 제법 이름을 알리게 된 진 감독은 12년 전 불의의 사고로 두개골을 크게 다쳤다. 이후로는 폐의 절반이 없어지고 골반이 뒤틀려 지팡이 없이 걷기 힘든 상태로 3년을 보냈고,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가 보니 뇌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고 대학 시절 찾았던 산을 다시 오르며 재기에 힘썼지만, 이후 메니에르병 판정을 받고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나마 뇌종양이 완치됐나 싶더니, 강직성 척추염까지 앓게 됐다.
“난치성 질병을 수차례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산에 올랐어요. 그러다가 다시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더라고요. 늘 ‘지금처럼 살면 매달 몇 백 만원은 안전하게 받겠지만, 그래서 내게 남는 게 뭘까’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20대 청년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결심했어요. 설령 10년 후에 노숙자가 된다 하더라도 팔자대로 살아야겠더라고요. 3년 전에 결심을 내렸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해 피아노&아이스크림을 만든 거예요.”
이번 히말라야에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진 감독이 들인 돈만 해도 웬만한 집 한 채 가격은 된다고 한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후회는 없느냐”고 묻자, 진 감독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모두 버리니 오히려 자신감이 증폭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어도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됐다고 할까요. 마치 제 안에 슈바이처나 오드리 헵번의 영혼이 깊숙이 파고 든 느낌이에요. 히말라야 연주회 이후, 네팔에서 가는 곳마다 저희를 알아보고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현지 신문 1면에도 났고, 네팔 수상도 직접 저희를 응원해줬고요. 네팔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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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이들이 이 같은 진 감독의 행보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그 돈으로 기부를 하는 게 낫겠다’ ‘왜 피아노를 직접 나르지 않고 네팔 포터들을 고생시키냐’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기부단체나 NGO에 돈을 낸 후에 그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사실 그 기부금 중 상당수가 활동 경비로 쓰이고, 힘든 이웃들에게 전액이 전달되진 않는다고 들었어요. 피아노를 헬리콥터로 옮겼으면 훨씬 간단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네팔에서 돈이 필요한 사람은 헬리콥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트랙킹 가이드나 포터 같은 서민들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고 싶었던 거죠.”
실제로 네팔 대지진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가이드나 포터들은 생활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진 감독은 그들을 돕기 위해 일부러 트랙킹 기간을 두 배로 길게 잡았고, 지불 비용도 두 배로 계산했다고 한다.
또 히말라야 산맥에서 피아노를 연주함으로써, 네팔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네팔 정부나 국민들을 위해 홍보 대행을 자처한 셈이다.
“물론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분들의 심정도 이해해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피아노&아이스크림의 행보를 보면 저희들에 대한 신뢰가 생길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부끄럽거나 비열한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당장은 저희가 못 미덥더라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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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아이스크림의 다음 목적지는 최근 테러 사건으로 큰 슬픔에 잠겨 있는 프랑스 파리다. 네팔에서처럼 피아노 연주를 할 것인지, 혹은 그 외 다른 퍼포먼스를 할 것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이후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에서 또 다른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광복 75주년이 되는 2020년 남극에서 피아노&아이스크림의 제1막을 내리는 마지막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파리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과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단독 클래식 혹은 앙상블 공연일 수도 있고, 무용이나 춤이 가미될 수도 있고, 작은 전시회 형태가 될 수도 있겠죠. 우선 제가 먼저 가서 공연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여건들을 알아보고 올 생각이에요. 최종적으로는 남극에서,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기획을 구상하고 있어요. 기대해 주세요.”
진 감독은 피아노&아이스크림이 히말라야 연주회 이후로 네팔 국민들은 물론 프랑스·독일·폴란드·미국 등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만큼, 국내에서도 더 널리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더불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고,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피아노&아이스크림과 같은 나눔 활동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표했다.
“저희가 다들 대출을 받아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만간 다음 퍼포먼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할 계획인데요. 단 돈 500원이라도 도움을 주시면 저희가 빛나게 써드릴 수 있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선 500원이면 작은 돈이지만, 네팔에선 5~6명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일 수 있는 큰돈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