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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로 쓰러져도 직접 원인 입증해야…어불성설 산재 적용

‘과로’로 쓰러져도 직접 원인 입증해야…어불성설 산재 적용

기사승인 2016. 03. 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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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규 노무사 "현 시스템 비정상…국가 차원에서 조사 나서야"
자료사진2
지나친 격무에 시달리던 끝에 죽음에 이르러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일고 있다.

평소 아무런 지병도 없었던 은행원 박모씨(32)는 지난 1일 직장 야유회에 참석해 산행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박씨의 동료들은 그가 전날 자정 무렵까지 야근을 했으며,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인한 부담감과 과로가 쌓인 상태에서 강제로 야유회해 참가해 과로사한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은행 측은 사망 원인을 과로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자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지난해 말에는 한 달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건축사무소 직원 A씨(29·여)의 사망 원인을 업무상 스트레스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가 비록 한 달간 하루도 쉬지 못했지만 보통 오후 8시 전에는 퇴근해 쉴 수 있었기에 과로사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근로복지공단 규정상 뇌혈관 질환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일 평균 60시간 이상 근로했거나, 4주 동안 1주일 평균 64시간 이상 일했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1주당 법정근로시간 연장 한도인 12시간을 합하고도 8시간 이상을 더 일했어야만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과로로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근로자가 이처럼 장시간 노동, 정신적 스트레스, 열악한 작업 환경 등에 시달렸음을 본인 혹은 가족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시간이나 환경 등을 기록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족들이 휴대전화나 출퇴근 교통 기록 등을 통해 과로사의 근거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6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4년간 과로사(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 산재 승인율은 23.8%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노동시간이 입증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과거에는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일부 과로성 질환에 대해 근로자나 가족이 직접 원인을 입증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오히려 산재로 인정하지 않으려면 사용자가 과로가 없었음을 반증해야만 했다”며 “그러나 2008년 7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되고 산재 인정 기준이 엄격해진 이후 승인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유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규정한 산재 인정 노동 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통상 노동 수준을 초과한다. 불법을 저질러야만 과로가 인정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 시간이 같아도 업무 강도에 따라 노동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다른 것이 당연한데, 수치만 갖고 획일적으로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며 “법의 취지를 생각하면 이 기준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유 노무사는 “산재는 사회보험인데, 과로 사실을 일상생활조차 힘든 노동자나 가족들에게 입증하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예산과 인력을 확대해 국가 차원에서 직접 나서 과로 여부에 대해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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