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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 “법치 수준 높아져야 선진국 갈 수 있어”

[인터뷰]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 “법치 수준 높아져야 선진국 갈 수 있어”

기사승인 2017. 04.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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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에 사회 각 분야 관계 돼…사회 차원의 점검 필요"
"효율이 능사가 아니고 절차가 중요"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인터뷰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전 헌법재판관) /사진=정재훈 기자
지난해 말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는 결국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고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은 저마다 ‘사법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제54회 법의 날을 맞아 법원행정처 차장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한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에게 한국의 ‘법치주의’를 물었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지켜보신 소감은.
“우리나라가 1945년부터 70년 넘게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평가했는데 아직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아마 대다수 국민들도 비슷한 자괴감을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거 같다. 권력이 법에 따라 행사되는 것이 우리가 만든 민주공화국의 이념이었는데, 권력이 사람에 의해 행사되면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선출직이 법에 따라 자리를 내려놓게 된 것은 법치국가의 모습이지만 그 과정이 아쉽다. 또 분립된 국가권력이나 언론이 제대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안타깝다.”

-이번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 과정에서 느낀 안타까움이랄까, 문제점을 꼽는다면.
“우리나라 탄핵심판은 국회에 의한 소추 결의와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가 혼합된 시스템이다. 하지만 일단 사법절차로 넘어온 뒤에는 증거가 제시되고 평가가 이뤄져야 되는데 정치적 문제와 혼동된 느낌을 받았다. 헌법상 탄핵사유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그 위반이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집중돼야 했는데 마치 형사재판처럼 범죄의 고의가 있었는지 등이 다퉈지는 게 안타까웠다.”

-대선을 앞두고 헌법 개정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헌법이 과연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헌법에는 3권 분립이 분명하게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주요 조약을 체결하려 해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주요 정책 결정 시에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다 국회가 제동을 걸면 ‘발목잡기’라고 하는데, 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 맘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한 거다. 사드나 위안부 문제도 국무회의에서 심의를 거쳤는지 의문이다.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된다면 문제될 게 없다. 결국은 법이나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헌법 개정의 시기와 방식에 대한 생각은.
“1987년 개정한 헌법이 30년 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의사 합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실상 헌법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헌법을 개정한다면 사실상 거의 모든 조항에 각 분야의 이익단체를 비롯한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격이다. 개인적으로는 국민의 개헌 요구가 있다면 필요한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바꿔가는 수정헌법의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검찰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데.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헌법 12조의 신체의 자유를 어떻게 보다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40년 넘게 법조 생활하면서 보면 ‘검찰은 없는 죄도 만들어내고 있는 죄도 덮어버린다’는 게 국민들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까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어서 두 기관이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한다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인터뷰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전 헌법재판관) /사진=정재훈 기자
-지난해 유독 현직 법원, 검찰 간부의 비리 사건이 많이 터졌다.
“법원 검찰의 비리가 터졌다는 것은 절차가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판사나 검사가 영향을 받았다는 건데 결국 (다른) 사람이 개입했다는 얘기다. 아담 스미스도 결국 ‘그 사회의 법률제도가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좌우한다’고 썼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법치 수준이 하위권이다. 법치 수준과 부패 수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극단적인 예가 이번 최순실 사태인데 기업하는 사람들이 경영에 전념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의지해야 기업이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최근 사법부에서 불미스런 일로 고위 간부가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장 중요한 건 ‘법관의 독립’이다. 사법부의 기능이나 조직, 사법행정도 모두 법관의 독립을 확보하는 쪽으로 운영돼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부) 내부에서의 독립’인데 그것이 보장이 안됐다면 근본적인 문제로 봐야한다. ‘사법 위기’로 볼 수 있다. 유럽평의회 산하 베니스 위원회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할 때 ‘법관의 독립’에 대한 통합보고서에 ‘승진제도와 인사이동이 있는 대륙법계에서 법관에 대한 평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한 평가라도 법관의 독립을 해친다면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변호사단체에서 법관과 검사를 평가하는 것과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등 고위직 출신 법조인들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민주국가에서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현 제도는 평가 주체가 변호사라는 점에서 재판의 독립성이나 수사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평가하는 측의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그 결과를 받는 인사권자가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원래 법조인의 자격은 변호사 자격뿐이다. 변호사 자격을 갖고 판사를 하고 검사를 하는 것이다. 그 분들에겐 이게 천직이다. 법조 직역에 있는 분들이나 일반 국민들이 ‘사법부나 검찰에서 고위직에 있었으면 사회에 공헌을 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는 건 이해한다. 다만 수명을 생각할 때 임기가 짧고 정년이 빠른 상황에서 과연 그분들이 사회에 나와서 공헌할 길이 열려 있느냐, 또 생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해결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그분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냐의 문제가 같이 논의돼야 한다.”

-‘법의 날’을 맞아 한국의 법치주의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사람들이 보통 정치·경제·사회·문화가 각각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 사태만 봐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보면 문화와 법이 따로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있는데, 법치 수준이 높아져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라도 나서서 이번 최순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행 경과가 어떻게 됐는지 등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언론·경제·문화계 모두가 국정농단에 관여돼 있다. 무엇이 잘못 됐는지, 왜 방치됐는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사회 차원의 점검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한 수준 높아지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헌법 이념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사회가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란법’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국가권력이 공정하게 행사되는지, 삼권이 정확하게 나눠져서 상호 견제를 하고 있는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법절차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효율이 능사가 아니고 절차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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