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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햇빛, 촛불, 달빛

[칼럼] 햇빛, 촛불, 달빛

기사승인 2017. 06. 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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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숙명여대 석좌교수)
“빛이 있어라!” 천지창조의 장엄한 첫 선포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빛을 창조하는 신의 선언으로 시작된다. 태양보다 먼저 창조된 이 빛은 암흑과 공허의 무질서를 일거에 뒤엎어 광명과 충만의 질서를 빚어내는 창조의 근원이다. 빛의 창조에서 생명과 역사의 문이 열렸다. 창조의 빛만이 아니다. 종말에도 빛이 요구된다. “더 많은 빛을!” 괴테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이 빛은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신비한 빛이기에 감각적 인식이 불가능하다. 그 의미는 다만 햇빛과 달빛으로부터 유추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빛과 열을 발산하는 태양은 생명에너지의 원천이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이 햇빛과 햇볕에 삶을 의존하고 있다. 달에는 열이 없다. 달은 오직 햇빛을 반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의 변화는 지상의 삶에 생명력 넘치는 다양성을 제공한다. 달은 지구의 자전축(自轉軸)과 농사, 항해에 결정적 조건을 부여할 뿐 아니라 동물의 정서와 혈액순환, 생리주기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신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달빛정책(moonshine policy)이라고 명명했다. 문샤인은 대통령의 성(姓)인 문(Moon)에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을 꿰맞춘 작명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무장을 햇볕 같은 유화책으로 해체시키려는 노력이었지만 북핵은 남녘의 햇볕에도 불구하고 해체되기는커녕 오히려 날로 고도화됐고, 초강대국 미국을 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영토를 덮치는 사태는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종 탄착지로 대한민국을 겨냥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북핵은 햇볕정책을 퍼주기 논란으로 몰아넣었다.

달빛은 영어로 문라이트(moonlight)이지 문샤인이 아니다. 문샤인은 ‘밤에 몰래 빚은 밀주(密酒)’ 또는 ‘허튼 소리’를 뜻한다. 외신의 달빛정책 작명에는 어떤 의구심이 숨어있는 듯하다. 햇볕정책의 둥지에서 멀지 않은 문 정부가 햇빛을 충실히 반사하는 달의 역할에 몰두하지 않을까, 대북 강경노선의 보수정권을 무너뜨린 탄핵 촛불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현 정권이 몰래 밀주를 빚듯 비밀스런 퍼주기의 통로를 뚫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청와대 외교안보 특보의 ‘한미 연합훈련 축소’ 운운 발언은 이런 우려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달빛 이름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초승에서 보름을 거쳐 그믐에 이르는 달빛은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신비한 빛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는 언제나 이글거리는 모습 그대로이지만, 달은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지구의 삶을 다채롭게 한다. 대북정책도 강경책이나 햇볕정책 일변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선택으로 균형을 잡아야한다. 뜨거운 햇빛은 열정을, 차가운 달빛은 성찰을 품고 있다. ‘우리 민족끼리’의 뜨거운 열정보다 이성과 역사 앞에서의 냉철한 성찰이 더욱 절실하다.

나룻배에 촛불을 켜고 책 읽기를 즐기던 명상의 시인 타고르는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촛불을 끄자 신성한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쌌다. 촛불의 빛이 사라지는 순간, 달빛이 춤추며 흘러들어와 나룻배 안을 가득 채웠다. 켜놓은 작은 촛불의 빛 때문에 아름다운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자루의 작은 촛불이 달빛의 아름다움을 막고 있었다면, 드넓은 광장의 촛불군단이 뿜어내는 불빛다발은 달빛을 아예 삼켜버릴 수 있다. 촛불을 켜들었던 일부 세력들은 문 대통령이 촛불 특혜로 당선됐다면서 촛불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마치 그들만이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대가를 요구하는 촛불은 달빛의 아름다움을 가로막는다. 그 촛불이 꺼질 때 달빛이 흘러든다.

해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달은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고 이미 사람의 발길이 닿은 친근한 존재다. 햇볕은 옷을 벗게 만들고, 달빛은 마음을 열게 한다. 남쪽의 달빛에 북한 독재자의 마음이 열릴 수 있을까. 베토벤과 드뷔시가 쓴 달빛 주제의 피아노곡들은 태양을 노래한 어떤 곡보다도 울림이 크다. 북녘에 비출 것은 햇빛도 아니고 촛불도 아니다. 달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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