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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중이야' 박민국 감독 |
첫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여러 해외 영화제의 러브콜까지 받으며 충무로를 이끌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있다. '녹화중이야'의 박민국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중학교 때 배우를 꿈꾸며 극단에 들어간 박민국 감독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연극 연출을 거쳐 독학으로 영화까지 섭렵해 '녹화중이야'를 세상에 내놨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슬레이트도 모르던 영화의 초짜 중에 초짜였던 그가, 해외 사이트를 통해 편집 기술을 익히고 독학으로 영화연출을 공부해 이뤄낸 성과라는 점이다.
"연출을 시작한 건 '지평선 끝에서다'라는 영화예요. 처음에 저는 배우로 참여했는데 감독이 촬영 중 군대에 갔어요. 누군가는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돼 제가 연출을 맡게 된 거죠. 6개월 촬영하고 1년 편집한 것 까지, 총 2년 동안 독학을 했어요. 해외 사이트에서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서 편집하는 방법을 독학했고 영화 찍는 방법이나 조명 잡는 법은 PD형한테 배웠어요. 다른 단편 독립 현장들을 돌아다니면서 본 것도 있었고요."
박민국 감독은 그렇게 ‘지평선 끝에서다’를 계기로 용기를 얻어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 ‘녹화중이야’를 연출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용감했어요. 지금은 영화 만들 때 기본적으로 20~30명 정도의 스태프들이 움직여요. 그런데 그때는 다섯 명이 전부였어요. 슬레이트가 뭔지도 몰랐고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를 만들었지만 힘든 게 없었어요. 한여름이었는데도 좋았고, 서울 안국동을 돌아다니면서 이친구들과 영상을 찍는 다는 게 자랑스러웠어요. 영화를 만든다는 느낌보다 그땐 다 같이 정말 즐겁게 살았어요. 그 여름에 편집해놓고도 이 영화로 1%라도 무언가 바란 적이 없어요. 정말 즐거웠고,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녹화중이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여주인공 연희(김혜연)와 그녀의 남자친구 민철(최현우)이 그들의 모든 순간을 셀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며 펼쳐지는 로맨스 영화다.
시한부 소재를 다뤘지만 눈물을 강요하는 최루탄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20대 남녀주인공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이는 박민국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기억과 경험들이 묻어난 결과였다.
"어려서 부터 어머니를 따라 형과 함께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보니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많이 보게 됐는데 시한부라 하더라도 일상적인 건 똑같더라고요. 어릴 적 친한 친구의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었는데 항상 밝게 대해주셨고요. 시한부라고 하면 왜 힘들게만 표현할까 의구심도 들었고, 불행하게만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녹화중이야’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연희가 죽기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페이크다큐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점도 기발하다.
"페이크다큐가 공포물에서 사용되는 기법인데, 처음 페이크다큐로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보고 멜로에 도입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내 친구를 찍고 있는 느낌이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어요. 독립영화 특성상 제작비도 아껴야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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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된 박민국 감독(왼쪽) |
'녹화중이야'의 성공적인 데뷔 덕에 박민국 감독은 투자를 받아 차기작 '고철들의 중심'과 '만남의 장소'을 연달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녹화중이야' 때는 몰랐던 책임감과 무게감도 느낀다는 그다.
"'녹화중이야' 할 때만 해도 부담 없이 글을 썼어요. 연극할 때는 2주면 장편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을 걸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녹화중이야' 이후 독립이지만 투자도 받고 하다 보니 또 다른 책임감이 생겨요. 부담감 때문에 수정도 30~40번씩 하기도 하고요. 저는 수정할 때 시나리오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거든요. 부담이 크지만, 글 쓰는 건 여전히 재밌어요. 제가 쓰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하는데 까지 계속 하고 싶고, 1년에 한편씩 영화 찍는 게 목표예요."
박민국 감독은 좋아하는 영화가 생기면 백번이고 다시 보는 영화광이었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그는 위안을 얻었고 꿈도 찾았다. 이제 자신이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녹화중이야’ GV 때 많은 관객들을 만났는데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어떤 분은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행복하게 가셨을 거라는 안심을 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부산에서 한 감독님이 제게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제 영화로 누군가의 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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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중이야' 스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