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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박사, 순천향대 특강서 ‘아산이 비류백제 발원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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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학 기자

승인 : 2017. 09. 0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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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박사 아산학연구소 특강
이덕일 박사가 순천향대 교양강좌에서 ‘아산’의 역사적 지리적 우수성과 사도세자와 연관된 영괴대를 중심으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제공=아산시
순천향대학교는 지난 5일 아산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아산의 역사문화’ 특강에서 강사로 나선 이덕일 박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가 아산(牙山)이 ‘비류백제’의 발원지라는 주장을 제기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번 특강에서 이덕일 소장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온조백제’와 ‘비류백제’를 근거로 비류백제의 수도 미추홀에 대해 역사사료와 지역적 근거를 토대로 해 강의내용으로 다뤘다.

이날 이 소장은 아산의 역사적 중심에는 비류백제의 도읍지 문제와 조선왕조 사도세자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적, 역사적 가치에 대해 키워드 중심의 강연으로 진행됐다.

비류백제의 핵심은, 아산의 인주가 미추홀(비류백제 도읍지)인데, 지금의 인천이 인주가 된 것은 12세기 고려 인종 때이고, 지금의 아산인 아주(牙州)는 10세기 고려 초였다는 것이다.

이덕일 소장은 아산이 인주로 불렸던 것은 고려 초기로 “아주(牙州)는 본래 백제의 아술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음봉(陰峯)으로 고치고, 탕정군(湯井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고려(高麗) 초에 인주(仁州)로 고쳤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아산에는 곡교천 양쪽으로 무수히 많은 고대 산성이 있는 반면 인천에는 관방시설이 거의 없어 이를 비교할 때 지금의 아산인 아주(牙州)가 비류백제의 도읍지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 소장은 “온양관광호텔에 현존하는 ‘영괴대(靈槐臺)’는 전국에서 두개 남아 있는 사도세자 관련 시설인데, 그중 하나는 수원 화성이고 다른 하나가 영괴대”라며 “온궁은 사도세자가 즉위했으면 펼치려고 했던 개혁정치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으로 이 자체만으로도 시급히 복원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괴대는 정조가 재위 19년(1795) 온양 수령으로부터 무인기질의 사도세자가 영조 36년(1760)에 활을 쏘는 사대(射臺)에 ‘품(品)’자 형태로 심은 홰나무 세 그루가 좋은 그늘을 만들었다는 보고를 받고 대를 세우고 비를 세우게 했던 것으로 현재 온양관광호텔 정원 내에 있다.

이덕일 박사는 “아산의 곡교천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산성이 즐비한 것은 천혜의 자원으로 이것이 역사적 배경이 됐고, 사도세자와 정조 관련 역사유적은 전국에서 수원의 화성과 온양행궁, 영괴대 뿐이다”라며 “온궁에 대한 복원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관심을 갖고 역사스토리를 만들어 전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는 물론 문화에 이르기까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매국사관의 허위적 이론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 뜻 있는 학자들을 모아 1998년 동 연구소를 설립했다.

저서로는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왔나(만권당출판사 2015)’, ‘칼날위의 역사(인문서원 2016)’, ‘사도세자가 꿈꾼나라(위즈덤하우스 2011)’ 등 다수가 있다.
이신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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