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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도의 예술에 온몸으로 취한, 멋진 가을!

[여행] 남도의 예술에 온몸으로 취한, 멋진 가을!

기사승인 2017. 10. 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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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광주에서 체험한 전통문화체험관광 프로그램
녹우당
해남 윤씨 종가 ‘녹우당’의 초가을 풍경이 고즈넉하다. 바람이 우람한 은행나무를 흔들면 ‘초록의 비’가 내린다.
평범한 일상이 광대한 풍경보다 끌릴 때가 있다. 시간이 축적된 노래, 그림, 언어,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때론 여행의 목적이 된다. 그래서 전통과 문화는 고품격 관광자원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전국 5곳의 전통문화체험관광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이를 지원했다. 전국의 숨겨진 인물 이야기, 역사·유적지, 생활전통, 건축물 등을 문화관광콘텐츠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3만1000여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올해는 그 수를 10곳으로 늘렸다. 이 가운데 전남 해남과 광주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천년 고찰은 우아한 미술관이 됐다. 오래된 고택은 차(茶)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사랑방이 됐다. 유서 깊은 서원에서는 선비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녹우당
처마를 이중으로 댄 겹처마가 인상적인 녹우당(사랑채).
녹우당 윤형식
해남 윤씨 14대 종손 윤형식씨는 지금도 녹우당에 산다.
◇ 해남에서 즐기는 남도 예술여행

해남의 전통문화체험관광 프로그램의 테마는 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 기행이다. 해남 윤씨 종가집 ‘녹우당’에서 차를 마셨고, 고찰 미황사에서 예술품을 감상했다. 오래된 주조장에서는 막걸리 사발에 고단한 세상사를 풀어 훌쩍 들이켰다. 판화작가 김억 화백, 한국화가 김선두 화백이 동참하며 남도의 정서와 수묵화에 대해 들려줬다. 이병채 명창은 판소리를 공연했다. 직접 듣고, 놀고, 마셔보니 여정이 풍성해졌다. 풍경만 훑고 지날 때보다 감흥이 컸다. 여운은 오래 갔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았다.

공재 자화상
고산유물전시관에 보관된 공재의 ‘자화상’
해남읍에 있는 녹우당은 해남 윤씨 종가다. 정확히는 종가의 사랑채 당호가 녹우당인데, 종가를 그냥 녹우당으로 부른다. 조선 중기의 학자 고산 윤선도, ‘자화상’으로 잘 알려진 공재 윤두서 등이 이 가문 출신이다. 녹우당 앞에 고산유물전시관이 있다. 공재의 ‘자화상’(국보 240호)과 고산 관련 자료 등 약 2500점의 고문서와 유품 등이 보존, 전시 중이다. 종가가 이 자리에 지어진 지 600년이 넘었다. 해남 윤씨 14대 종손 윤형식씨는 지금도 녹우당에 산다. 사랑채, 안채, 행랑채, 고산사당 등이 종가를 이룬다. 뒷산에는 비자나무 숲이 있다.
사랑채는 수원에서 옮겨왔다. 고산은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었다. 왕이 된 효종은 당쟁에 휘말려 해남으로 유배 가는 스승을 애처롭게 여겨 수원에 집을 하사했다. 이 집의 원재료들을 뱃길로 가져와 이곳에 다시 지었다. 고산의 나이 82세(1668년)의 일이다. 현판은 공재와 ‘절친’이었던 옥동 이서가 썼다. 종가 앞에 우람한 은행나무가 있다. 바람이 불면 잎이 날리는데 ‘초록의 비(綠雨)’가 내리는 듯 했단다. 그래서 녹우당이다. 선비의 기상과 절개를 표현했다고도 전한다. 사랑채는 또 처마 위에 처마를 덧댄, 한옥에서 흔치 않은 겹처마 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여기까지는 흔한 여행이다.
그런데 차 한잔이 가을 풍경을 참 많이 바꾼다. 차를 앞에 두고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이파리 하나가 애틋하고, 갈라진 처마 기둥에 박힌 시간의 흔적이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미황사
빛 바랜 단청이 아름다운 미황사 대웅보전. 달마산이 병풍처럼 에둘렀다.
천불
자하루미술관 한쪽 벽면에 상설 전시 중인 조병연 작가의 ‘천불’. 1000개의 돌멩이에 부처를 그렸다.
미황사는 송지면 달마산 아래 있다. 통일신라 때 지어졌고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불 탔다.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됐다.
미황사는 두 가지가 유명하다. 하나는 단청 빛깔 바랜 대웅보전(보물 947호)이다. 1754년 마지막으로 단청이 칠해졌고 시간이 흐르며 모두 바랬다. 게와 거북이 새겨진 대웅보전의 주춧돌도 눈여겨 본다. 보통 주춧돌 문양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 용의 문양. 게와 거북은 드물다. 이는 창건설화와 관련있다. 인도의 왕자가 직접 배에 경전과 부처상을 싣고 이곳으로 왔는데 대웅보전은 그가 타고 온 배, 주춧돌은 바다의 상징이란다.
두 번째는 괘불이다. 괘불은 야외 법회 등을 할 때 걸어 놓는 탱화(부처 등 불교를 나타내는 그림)다. 미황사 괘불은 3~4층 건물 높이와 맞먹는 11.9m(너비 4.8m)나 된다. 매년 10월 3째주 또는 4째주에 진행되는 괘불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올해 괘불재는 오는 28일 오후 1시부터 열린다.
하나 더 추가한다 자하루 미술관이다. 대웅보전 앞에 있는 누각 자하루가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다양한 주제의 전시, 문화행사 등이 이곳에서 열린다. 한쪽 벽면 전체에 영구 전시 중인 조병연 작가의 ‘천불’이 유명하다. 1000개의 돌조각에 각각 부처를 그려 넣었다. 돌멩이처럼 하찮은 것에도, 제각각인 삶 속에도 부처는 있다. 예술은 종교를 초월한다. 이를 깨닫고 나면 곰삭은 절집은 그 자체로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화산면의 해창주조장은 1927년부터 막걸리를 주조했다. 지금은 찹쌀로 빚은, 걸쭉한 막걸리로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작은 정원이 있는데 참 정갈하게 꾸며놓았다. 오래된 건물과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프로그램 대로라면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판소리 공연을 감상한다. 마침 비가 내려 판소리는 자하루미술관에서 들었다. 예쁜 정원에서 가을 달빛 받은 막걸리 한 사발, 소리 한 자락 곁들이면 마음 편안해지고 세상 걱정은 시나브로 잊힌다. ‘힐링’은 이런 거다.

월봉서원
월봉서원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택견을 배우고 있다.
월봉서원 백우산 산책로
백우산을 에두르는 산책로(철학자의 길). 고봉이 산책하며 명상하던 길이다.
◇ 광주에서 만나는 호남의 정신문화

광주에서는 선비들의 정신문화를 체험했다.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이 무대다.
월봉서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 고봉 기대승을 기리는 서원이다. 고봉은 퇴계 이황과 성리학에서 인간 본성의 근간인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해석을 두고 무려 8년간이나 서신을 주고 받으며 논쟁을 벌인 인물이다. 두 사람의 논쟁은 조선의 성리학 발전의 기틀이 됐다. 훗날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기호유학과 영남유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고 율곡 성리학 완성의 시발점이 됐다. 고봉은 퇴계 이황의 제자다. 논쟁이 한창이던 당시 두 사람의 나이차는 26살이었다. 논쟁 중에도 두 사람은 상대의 학식과 인격을 존중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선 성리학을 꽃피게 했다. 월봉서원에서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유생복 입기, 서책 만들기 등을 체험하게 된다. 명상하며 숲길도 걸을 수 있다. 서원을 에두른 백우산에는 산책로(철학자의 길)가 조성돼 있다. 고봉은 이 마을에 머물 때 이 길을 따라 산 중턱 귀전암까지 명상하며 걸었단다. 귀전암은 터만 남았고 암자 가는 길에는 고봉의 묘가 있다. 주변으로 해송과 편백나무 등이 울창하다.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면 기분이 절로 맑아진다. 서원이 있는 너브실마을은 사위 고요한 농촌마을이다. ‘너브실’은 넓은 들판이라는 뜻인데 지금은 넓은 들판은 볼 수 없다. 그래도 정겨운 돌담이 이어지고 ‘칠송정’ 정자가 운치가 있다. 감나무의 감은 발갛게 익어 돌담 위에서 계절을 알린다.

너브실 마을
월봉서원이 위치한 너브실 마을의 정겨운 돌담길.
◇ 여행메모

2017년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 기행(전남 해남·행촌문화재단) △비밀의 월봉서원에서 만나는 호남의 정신문화(광주 광산·광주 광산구청) △동래민속체험(부산 동래·부산민속예술 보존협회 ) △고인돌 밀당 강화도 여행(인천 강화·우리문화재보호회) △외고산 옹기마을 전통가마(울산 울주·울산옹기축제추진위) △강릉 한류문학 힐링스토리(강원 강릉·강릉문화재단릉) △한옥마을에서 만나는 한국의 미(전북 전주·전북 전통문화연구소) △옛 선비를 만나다(경북 영주·한국선비연구원) △신라타임머신(경북 경주·신라문화원) △산청 한방테마파크 체험(경남 산청·큰들문화센터). 각 프로그램은 10, 11월말까지 운영된다. 관련 문의 및 참가신청은 각 단체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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