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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는 마을동네에는 ‘우정’을 나누는 ‘이웃’이 있나요?

당신이 사는 마을동네에는 ‘우정’을 나누는 ‘이웃’이 있나요?

기사승인 2018. 04. 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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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이웃에 대한 다른 관점, 사회적 우정으로 맺어진 이웃들 <마을무지개>, <성현프랜즈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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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우정을 쌓아나가며 갈등과 단절, 고립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있다. 바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세대를 초월해 모인 성현동 마을합창단과 결혼이주여성들과의 상생을 고민하는 마을무지개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웃공동체이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2기 사업의 핵심 가치는 ‘사회적우정’, ‘주민자치’, ‘지속가능’, ‘분권·자치’다. 그중에서 ‘사회적우정’은 마을공동체를 통해 연대와 협력 같은 긍정적 체험을 나눠 신뢰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에 비해 거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 최근 공동체적 사회기조 속에, 유의미하게 들여다 볼만 한 두가지 사례를 공유한다.    



▲ 사례 1. 이웃으로 만난 '결혼이주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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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전통의상을 갖춰 입은 마을무지개 일원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결혼이민자는 15만 명 정도. 결혼이민자의 대다수는 베트남, 중국,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들로, 이중 서울에만 2만 7천여 명이 있다.


 은평구 마을기업 ‘마을무지개’(https://vrainbow.modoo.at)는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하는 마을공동체를 지향하며 공생을 실천하는 곳이다. 마을무지개는 2012년부터 은평구의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2007년 동사무소의 한국어수업 프로그램의 교사로 자원봉사를 했던 전명순 씨와 결혼이주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명순 씨가 대표로, 당시 학생이었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원이자 다문화 교육 선생님으로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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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평구 사회적기업 '마을무지개' 전명순 대표, 결혼이주여성의 다정한 이웃으로 사회적 우정을 나누고 있다.  


 첫 만남은 평범했다. 전명순 대표는 “우연히 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한국어교실을 보게 되었어요. 전업주부였지만 국문학을 전공했고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을 때라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중국인이 있다면 중국어를 배워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참여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수업을 함께 하며 야유회를 갖는 등 만남이 이어졌다. 친분이 쌓이면서 속 깊은 대화가 오갔다. 전대표는 “슬프고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신을 한 채 4살 아이를 데려와 언제나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었던 중국 출신 여성은 남편에게 “중국으로 가버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었고, “파 한 단 주세요”를 백 번 연습해 시장에 나갔으나 차가운 시선만 받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는 베트남 여성, 아이 친구 엄마들로부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하의 말을 들었던 여성 등 가슴 아픈 사연이 한둘이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이분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는 거였어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그에 따라 하루하루 작은 교실을 열었다. 누군가 한국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얘기하면 다음 주에 요리교실이 열렸고, 노래가 배우고 싶다고 하면 음악교실이 생겼다.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해 강사를 구했고 공간은 직접 찾아 대여했다.


 1년의 시간이 지나자 두터운 친분이 쌓였다. 서로 언니, 동생이 되고 친구가 되면서 전대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진짜 원하는 것,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일자리’라는 걸 알게 됐다. 

 “노래를 하고 문화활동을 해보고자 생각했던 게 미안할 정도였어요. 결혼이주여성들의 일하고 싶은 욕구를 외면한 채 엉뚱한 걸 권유하는 한국 사회가 어쩌면 작은 폭력을 행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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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무지개 회원들은 해당 국가에 대한 문화적 정보를 전달하는 다문화 교육 강사로 활약한다.   


 그렇게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제대로 된 활동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바로 마을무지개다. 마을무지개는 결혼이주여성들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다문화 강사 양성을 통한 교육 사업,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제공하는 케이터링, 식당 타파스, 공연 등 건강하고 안전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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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전통 떡만들기 체험 수업      

 

 마을무지개의 대표 사업이라 할 다문화 교육 사업은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서 인기가 많다.  ‘오감만족 아시아 여행’이라는 모토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러시아 등 여러 국가의 문화수업을 열고 있는데, 결혼이주여성이 전통 의상을 입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 음식, 역사, 지리 등의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기에 아이들의 수업 만족도가 높다. 전 대표는 “해당 국가만큼은 한국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이분들이 전문가”라며 엄지를 지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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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터링 사업은 어쩌다 각 나라 음식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함께 먹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요리는 강의와는 또 다른 에너지가 있었다. “모국 음식을 만들면서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환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공유주방, 교회 식당 등 조리 공간을 빌려가며 힘들게 진행했던 케이터링 사업은 이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 정식 조리공간도 마련했다.


 1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전대표와 결혼이주여성들간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전대표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언니이고 엄마이고 선생님이다. 그 긴 세월 동안 갈등도 위기도 없었다. “우리는 애초에 이웃으로 만났잖아요. 누가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는 이웃인 걸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것들은 사업이 아니라 이웃 사람끼리 만나서 뭔가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었고 성취감도 더 컸던 것 같아요.”
 독특하다면 조금 독특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결혼이주여성과의 이웃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데에 별다른 비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뿐. 전대표는 주변에서 “단점 같은 건 안 보여? 어려운 점은 없어?”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웃이란 뭘까?‘ 한 번씩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보통의 이웃과 같아요. 문화 차이가 있지만 그 정도는 당연히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같이 살아가야죠. 저는 결혼이주여성들이야말로 다문화사회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선입견, 닫힌 마음을 열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마을무지개의 결혼이주여성들은 이제 이방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나 시부모, 그리고 자식에게도 자신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과 엄마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나가는 걸 보면서, 새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걸 느끼게 돼요.” 
 다문화가정의 여성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전명순 대표. 그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이웃으로 오래도록 지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 사례 2. 주민들의 하나된 목소리, 성현동 마을합창단 ‘성현프랜즈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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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목요일 저녁 한자리에 모여서 연습 중인 마을합창단 '성현프랜즈패밀리'      


 2017년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의 일환으로 관악구 성현동에 마을계획단이 출범하면서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조용한 동네에 퍼지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그 중 하나다. 노래의 근원지는 성현동 주민센터. 이곳에서 성현동 마을합창단 ‘성현프랜즈패밀리’가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준다.


 다른 지역들처럼 성현동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주민들이 모인 마을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한쪽에는 크고 작은 주택가가 있다. 아파트 지역에는 임대 아파트 주민들과 일반 아파트 주민들간의 대립이 있고, 주택가도 재개발 지역과 비재개발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있다.


“마을계획단이 만들어지고 마을의제를 정할 때 우리 지역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기반으로 하되 문화적이고 정서적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활동에 집중해보자는 얘기가 나온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 마을사업전문가 정화영 씨의 설명이다.


 마을합창단은 최종 선정된 6개 마을 의제 중 하나였다. 합창단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자 역할은 마을주민이자 경희대 음대 겸임교수이고 히어로즈앙상블의 단장을 맡고 있는 박수정 씨가 맡았다. 이태리 L.perosi 국립음악원 A.I.D.M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다수의 오페라 주역과 수백 회의 연주를 기획하고 출연한 경력자인 그는 마을합창단이 생기기 전부터 마을 아이들과 복지관을 빌려 합창 연습을 해왔으니 적임자 중 적임자였다.


“두 딸도 함께 활동 중입니다. 합창단원 모두가 아이의 친구들이자 친구 엄마이고 이웃 주민이라서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성현동 주민으로서 제가 가진 재능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싶었고, 나아가 딸들에게 공동체 생활의 소중함을 직접 알게 해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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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마을 주민인 박수정 경희대 음대 겸임교수가 합창단 지휘를 맡고 있다.
       (오른쪽) 초등학생들부터 엄마, 어르신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연습에 참여한다.  
  


 지휘자뿐만 아니라 반주자, 총무도 모두 이웃 엄마들이 맡고 있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약속도 만들고 규칙도 정하며 체계적으로 연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성현프랜즈패밀리’는 45명의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단원들의 특징을 그대로 담은 이름이다. “마을주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합창단 모집 공지를 관악구 소식지에 실었어요. 초반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많이 모였어요. 자기 친구들을 데려오기도 했고 여기에서 친구가 되기도 해서 처음에는 ‘프랜즈’란 이름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학부모님들도 신청하면서 가족단위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성현프랜즈패밀리’가 되었죠.”

초등학생부터 주부, 그리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인 합창단. 연령층이 다양하니 부르는 곡도 동요, 가곡, 가요 등 다양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대로 부르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정화영 씨는 마을합창단을 ‘마을계획단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세대 간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연습에 참여하고 어르신들도 친손주를 대하는 것 마냥 흐뭇해하시거든요. 서로 배려해가면서 합을 맞춰가는 모습을 보면 합창만큼 멋진 주민활동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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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현프랜즈패밀리는 오는 5월 4일에 있는 서울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준비에 한창이다.  


 2017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1년간 크고 작은 무대에도 많이 올랐다. 관악구 강감찬축제에도 참여했다. 이들은 오는 5월 4일 서울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 현재 합창 연습에 매진중이다. 이장선 할머니는 손자 같은 아이들과 함께 큰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제 나이가 69세인데요. 늙은 나이에도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어머님,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한편으로는 혹시 제가 짐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모두가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니야,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마음을 다잡게 돼요. 제 나이에 언제 또 이런 큰 무대에 서보겠어요? 정말 설렙니다.”


마을에서 다 함께 즐겁게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마을합창단. 각자의 바쁜 일상, 힘든 생활 속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쪼개 한 목소리로 화합을 만들어내는 단원들의 표정에서는 힘든 기색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합창단원들은 저마다 또 다른 삶의 활력소를 얻어가기 때문이다.


“모두가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원 모두가 이 활동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합창단이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고 박수정 지휘자는 전했다.


 <해당 기사는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뉴스레터 65호의 "[특집3] 이웃에 대한 다른 관점, 사회적 우정으로 맺어진 이웃들"콘텐츠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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